LJ필름(대표 이승재)이 거래소 상장기업인 ㈜이노츠(대표 백종진)와 합병하면서 충무로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나섰다. 투자-제작-배급-극장-매니지먼트 등 토털 엔터테인먼트 체제와 대규모 자본운용 계획, 그리고 ‘글로벌 프로젝트’의 가시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노츠는 강변 테크노마트, 명동 아바타, 한글과컴퓨터 등을 소유한 프라임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으며, 프라임이 내년 상반기 완공예정인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25개 스크린을 가진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프라임시네마’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3년 내 극장 점유율 20%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 정도의 자금력을 지닌 그룹이 이노츠의 물적 토대라면, LJ필름이 계열사로 안고 들어간 나무액터스, 블루드래곤 엔터테인먼트, 별모아엔터테인먼트, 열음엔터테인먼트 등 4개 매니지먼트사는 이번 합병의 ‘얼굴’이 되고 있다. 이들 4개사에는 송강호, 문소리, 문근영, 류승범, 김주혁, 김지수, 김태희, 김래원, 남상미, 박희순, 김민정, 온주완 등 50여명의 배우가 소속돼 있다. 합병 발표 이후 매니지먼트사와 이노츠 사이에 불협화음이 노출되기도 했으나, 매니지먼트사의 기존 우회상장 붐과는 상황이 달라 영화계보다 증권가가 더 술렁이고 있다.
법인은 사라지지만 LJ필름이란 브랜드를 유지한다는 이승재 대표의 목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튜디오다. 더불어 이 방향의 선두주자인 CJ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쇼박스, 롯데 등과 3년 뒤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줄리아>로 출발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각별한 열정을 쏟고 있다. 이르면 2월 초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줄리아>는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으로 알려진 이구의 부인인 줄리아의 생애를 다루며, <브로크백 마운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등을 제작한 유니버설 산하 포커스와 공동제작할 예정이다.
-모회사 프라임산업은 어떤 기업인가. =프라임산업은 80년대 말 건설업으로 시작해 90년대 중반 강변역 부근에 프라임현대 아파트 단지를 지으면서 기반을 닦았고, 강변 테크노마트를 지으면서 크게 성공했다. 상장기업이 아니어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내부적으로는 자산규모가 2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룹은 크게 건설, 금융, IT·문화 등 세 분야로 나뉘고 IT·문화쪽에서 대표적인 기업은 한글과컴퓨터다.
-파트너였던 CJ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CJ와 겨루는 큰 그림을 그려서 여러 관전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혼당한 것에 대한 선물치고는 굉장히 세다. CJ의 터줏대감이었던 신상한 전 영화사업본부장도 영입했고. =오해가 오해를 낳아 괴로운데 지금도 CJ하고는 퍼스트룩(작품에 대한 투자우선권을 주는) 관계다. 의도적으로 단절하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 지난 1년간 CJ와 동거하다가 어느 순간 내 의도와 무관하게 결별한 채 파트너십을 유지하게 됐다. 내 나름대로 생존의 방식을 찾다가 프라임 그룹을 만났고, 그쪽이 가진 하드웨어와 자본이라면 늘 꿈꿨던 글로벌 스튜디오가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단순하다.
-우회상장 붐도 있고 대단히 야심찬 구도여서 의구심어린 눈초리도 있다. =그룹에 제안한 건, 단일 제작 기능이나 단일 매니지먼트만으로는 수익구조를 창출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플랫폼과 콘텐츠의 결합으로 선순환 구조를 이뤄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기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미국영화 역사를 보면 생산과 배급, 유통이 하나의 라인으로 발전해왔는데 우리도 영화산업의 토대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과 유통이 하나의 체계를 이뤄야 기업으로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본다. 이건 스튜디오 시스템을 뜻한다. 그 핵심은 영화제작·배급이고, 토대는 플랫폼인 극장사업이며, 좌우로 보면 투자펀드가 있어야 한다. 또 크리에이티브에 필수적인 연기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봐야지 시스템의 편입으로 보면 안된다. 매니지먼트의 특성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매니지먼트에 독립성을 준다? IHQ나 팬텀과 어떻게 다른 건가. =기본적으로 다른 게 그쪽은 매니지먼트를 하다가 영화제작으로 넘어온 거고, 나는 처음부터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출발시켰다. 배우가 특정 영화사하고만 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작품 따라가는 것이 배우의 특성이고, 때문에 그런 구조를 만든 거다. 그래서 내부에 하나의 사업체처럼 두는 것보다 독립적으로 하는 게 서로에게 발전적이라고 보는 거다.
-4개 매니지먼트사가 계열사로 편입됐다는 발표와 다른, 오해의 여지가 생기는 건 아닌가. =콘텐츠와 결합하는 방식을 말하는 거다. 프라임 안에서만 선순환 구조를 갖는 건 문제다. 이전과 이후에 내용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사실 지금까지 이들 매니지먼트사의 스타 중 내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누가 있나. 개인적 비전은 국내보다 글로벌에 있다. 글로벌 사업은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국내 배우 중 영어를 능숙하게 하면서 세계적 배우가 될 만한 경우가 당장 없기 때문에 서서히 만들어가자는 게 주목적이다. 국내 기반의 한국영화에선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다만 글로벌 프로젝트 같은 전략을 가지고 가보자는 거다.
-<줄리아>를 비롯한 글로벌 프로젝트에 자사 배우를 캐스팅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배우라는 콘텐츠는 수익성으로 접근하면 망가지기 때문에 투자의 개념으로 해왔다. 경영권 독립도 고려한다. 다만 글로벌은 같은 전략으로 가고 싶다. 처음부터 국내영화에선 투자자로서, 대주주로서 권리행사를 하지 않고 영화의 논리로 가겠다고 했다.
-충무로에서 이승재 대표가 매니지먼트에 투자하고, 소유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 =처음은 단순히 사람에 대한 투자였다. 영화를 10년 이상 해오면서 이 사람 괜찮다는 판단으로 배우가 아닌, 배우를 잘 키울 수 있는 매니저 개인에게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작자로 클 테니까 너는 매니저로 커라, 그러면 어느 순간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겠냐고 한 거다. 이번 일을 보면서 ‘결국 이거 하려고 그런 거 아니었냐’고 오해할 수 있는데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나무액터스를 갖고 있다는 건 그나마 좀 알려졌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두어개가 더 있다. 지난해 CJ의 자본으로 확장했던 게 아닌가. =CJ와 함께하려고 했던 가장 큰 축은 새로운 땅을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글로벌 스튜디오로 가보자는 거였다. 그때는 합병 같은 방식이 아니라 사업의 내용을 공유해서 가는 파트너십이었고, 국내 기반을 다지기 위해 LJ필름이 더 커질 필요가 있어서 CJ로부터 개발비를 받았다. 그때 대기업이 매니지먼트를 갖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했고, 다만 리더 기업으로서 배우를 키워야 하며 그걸 LJ필름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무액터스나 블루드래곤은 CJ와의 관계 훨씬 이전에 내가 만든 회사였고, 그 뒤에 확장한 곳이 별모아와 열음이다. 나무액터스와 블루드래곤도 이미 만들어진 회사에 투자한 게 아니라 김종도라는 매니저 개인에게, 전재순이란 매니저 개인에게 투자해 회사를 만든 형태였다.
-이노츠 안에서 이 대표의 위상과 역할은. =당연히 대주주가 대표이사를 맡고 나는 이사로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한다. 내가 극장이나 배급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최근까지 CJ엔터테인먼트의 영화사업본부장을 지냈던 신상한씨가 맡게 될 거고. 나는 크리에이티브에 주력하는 일종의 대표 프로듀서 일을 한다.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25개 스크린 말고, 강변 CGV와 명동 CGV를 CJ와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회수할 수도 있나. =내가 세운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반복해 말하지만, 토털 엔터테인먼트이자 글로벌 스튜디오로 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영화 지형도 안에서 현재 유효한, 극장이란 플랫폼을 갖자는 것이고 유통을 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니까 자체 자본 최소 500억원, 또 이것과 상관없는 펀드가 500억원 이상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영화 산업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은 하되 남의 것을 뺏는 식은 곤란하다는 거다. 그래야 우리도 연착륙할 수 있다. 임대를 주고 있는 CGV는 그냥 놔두고 대신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멀티플렉스를 강북의 랜드마크로 가져갈 계획이다. 강변 CGV가 뜨거운 감자일 텐데 기존 것은 놔두고 새로운 확장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건의했다. 1500개 스크린 가운데 멀티플렉스 비율이 아직 절반이 안된다. 스크린 맥시멈이 2천개라면, 인구수 대비 적정수는 지금의 1천5백개로 본다. 그래서 나머지 50%의 극장들 중 일부를 멀티플렉스화하면서 사이트를 확장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도 오해의 여지는 분명히 있을 텐데 어찌 보면 이건 내 문제라기보다 모회사와의 문제가 될 거다.
-투자, 배급에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나. =이미 발표한 유상증자 때 나는 내 지분만큼, 모회사는 그 지분만큼 투자를 할 것이고, 여기에 일반인 투자까지 받을 계획이다. 목표는 1천억원이다. 이번에 프라임쪽에서 이렇게 저렇게 투자하게 될 규모가 5백억원 정도다. 이게 내가 요구했던 합병의 몇 가지 조건 중 하나였다. 대주주가 크게 내놔야 외부에서도 비전을 보고 따라오지 않겠냐고. 또 이와 별도로 투자, 제작, 배급용 펀드를 최소 5백억원 규모로 만들어 운용한다. 우호적인 펀드를 활용할지 새로 조성할지 좀더 봐야 하는데 이미 추진 중이다.
-실제로 그 정도가 되면 CJ나 쇼박스를 능가하지 않나. =비슷하거나 넘어서거나. 내가 알기로 CJ가 운용하는 펀드가 7백억원, 쇼박스가 6백억원 정도다. 회사 내부의 운용자금이 어떤 규모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부 운용자금과 펀드가 이 정도 돼야 연간 한국영화 15편 정도를 무리없이 굴릴 수 있다.
-투자 시기는. =올해부터 바로. 공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고 일단 공동배급이든 뭐든 같이 하는 출발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제작가협회를 중심으로 한 충무로의 정책대안 그룹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 앞으로 여기서 빠지는 건가. 제협과 극장, 제협과 매니지먼트 등 서로 갈등이 되는 기능이 하나로 뭉치는데. =내 자신이 훨씬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 내가 매니지먼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구 역할을 해서 협력 원칙을 찾는 순기능을 했다.
-제작가협회의 중요한 현안인 극장과의 부율 개선 문제는. =내가 오너가 아니니까 결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해 당사자이면서 내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영화 산업 전체를 위해서 이쪽(제협)이 맞는다고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거다. 앞서서 가지는 않더라도 부율을 개선하는 방향이 맞다고 설득할 거다.
-글로벌을 거듭 강조했는데. =우리의 크리에이티브를 가지고 들어가되 언어는 영어로 해서 세계 시장에 나간다는 전략이다. 전세계 배급이 가능한 2백억원대 프로젝트가 중심이다. 실제로 제작에 들어가는 시점은 올 하반기다. <줄리아>를 시작으로 매년 한편씩 들어갈 계획이며 <줄리아> 후속작도 구체적으로 준비 중이다. 글로벌을 위한 감독과 프로듀서도 키워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3백만달러 이하의 저예산 영화를 만들면서 인재를 발굴, 육성할 계획이다.
-해외 프로젝트와 관련해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첫 출발이라며 세 작품을 발표했는데, 한 작품은 제작이 무산됐고, 한 작품은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이윤기 감독의 <러브 토크>만 선을 보였는데. =그게 글로벌 프로젝트는 아니었고.
-그래서 의구심어린 눈길도 있다. =올해 안에 모든 게 가시화하기 때문에 뭐라 더 말할 게 없다. <줄리아>만 있는 게 아니니까.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여자, 정혜> <피터팬의 공식> <방문자> 등 저예산 예술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왔는데 앞으로는. =저예산영화를 하는 것에 오해가 있다. 그건 내가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감독을 키워내는 전략의 일환이다. 감독마다 성향과 특징이 있어서 누구는 아트영화로 브랜드화하는 게, 또 누구는 웰메이드 상업영화가 더 잘 맞는다. 더구나 색깔있는 상업영화를 하려다보니 준비하고 투자했던 기간이 길었다. 그 결과, 올해 6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그중 4편이 일반적인 상업영화다. 다만 그 영화들도 자기 색깔이 분명히 있다. 감독을 길러내는 전략이 맞다고 보기 때문에 저예산영화는 당연히 계속한다. <여자, 정혜> <러브토크>의 이윤기 감독이 올해 80억원짜리 영화를 만드는데 재능있는 사람이 재료 따라 가는 거라고 본다.
-영화제작의 아웃소싱 전략은. =50%는 자체 제작, 50%는 외부에서 투자해서 배급하는 구도다. 서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3년 단위 정도로 네트워크를 가져갈 계획이다.
-제작과 관련해 새롭게 도입하는 시스템이 있나. =프로듀서 한명이 몇 억원 가지고 자기 회사를 가지고 생존하는 건 이미 어려워졌다. 때문에 우리와 손잡고 크리에이티브를 제대로 발휘하는 프로듀서에게 충분히 보상하는 PD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자기 이름을 걸고 영화를 만드는 일종의 유닛 개념이다. 프로듀서가 수익에 대한 지분을 가질 거냐, 그냥 높은 개런티를 받을 거냐는 이야기하면서 정하면 된다. 다양한 모델이 나올 거다.
-프라임과의 결합에 대해 내부의 반대도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십여명의 프로듀서들은 다 자기 색깔이 있다. 큰 자본의 대기업과 결합하다보면 순기능도 있지만, 색깔 유지에 장애를 일으키는 역기능도 있지 않겠냐고 일부 이견이 있었다. 중요한 건 프라임과 LJ가 서로에게 큰 투자를 했는데 누군가 그냥 접고 나갈 우려에 대비한 계약서를 썼다는 사실이다. 서로 동의없이 자기 지분을 팔 수 없게끔. 일이 중심이라는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