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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의 모든 것 [1]

짐 자무시는 우리에게 이름에 비해 영화의 실체가 덜 알려져 있는 감독이다. 그것은 아마 <브로큰 플라워> 이전까지 만든 8편의 장편영화 중 한국에서 개봉한 그의 영화가 <천국보다 낯선> <데드맨> <고스트 독> 세편뿐이라는 단순하고도 안타까운 사실 때문일 거다. 그러니 그동안 간과되어왔던 그의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나서야, 간명하면서도 유쾌하고, 유쾌하면서도 탄식어린 자무시의 세계가 좀더 친절히 열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무시에게서 <브로큰 플라워>라는 영화편지 한통을 받았다. 자무시의 전작(과거)을 되돌아보기를 독촉받는 이상한 영화의 아홉 번째 편지를. 그걸 계기로 ‘짐 자무시의 모든 것’을 살펴본다.

니콜라스 레이에게는 그를 따르는 많은 후대 감독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두명의 후배가 있었다. 그의 마지막 생전의 모습을 담은 영화 <물 위의 번개>(1980)를 만들었던 빔 벤더스가 그 한명이고, 니콜라스 레이가 뉴욕대에서 강의할 무렵 그의 조교였으며, 그 인연으로 <물 위의 번개>의 스탭으로까지 참여한 짐 자무시가 나머지 한명이다. 자무시와 벤더스가 서로 알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사실, 자무시의 첫 번째 장편영화 <영원한 휴가>(1980)도 니콜라스 레이 덕택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어떤 이들은 <천국보다 낯선>을 자무시의 첫 번째 장편영화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엄밀히 말해 <천국보다 낯선>은 자무시의 ‘첫 번째 35mm 장편영화’다. 대학 시절 학기 제출용으로 작심하고 만든 77분짜리 16mm 작품 <영원한 휴가>가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자무시가 파리 시네마테크에 묻혀 일년 내내 영화를 본 뒤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는 학비가 없었다. 하지만 능력있는 그에게 학교는 니콜라스 레이의 조교로 일하라고 추천했고, 그 대가로 졸업 단편을 만들 수 있도록 학비 장학금을 지불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자무시는 냉큼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학교는 그가 학비를 내기로 약속하고 받은 장학금을 장편영화를 만드는 데에 유용(?)한 죄로, 게다가 “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죄”로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 그의 졸업장은 몇년 뒤에야 우송됐다.

<영원한 휴가>

<브로큰 플라워>

벤더스가 졸업 작품으로 단편 대신 127분짜리 장편 <도시의 여름>을 만든 것처럼, 자무시도 10년 뒤 그런 사고를 똑같이 친 것이다. 여하간 그 이후 자무시는 수없이 많은 인터뷰에서 벤더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질문받았고, 그때마다 그는 “그와 나는 친구이고, 그의 초창기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에게서 받은 영향은 크게 없다”고 잘라 말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벤더스가 영화적 정점을 구가하고 있던 시절, <사물의 상태>를 만들고 나서 남은 40분 정도의 필름을 짐 자무시에게 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천국보다 낯선>(1984)의 첫 번째 에피소드 ‘신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무엇보다도 그들의 계보를 규정하는 증거로 작용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쨌거나, 그뒤 짐 자무시는 보란 듯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중요한 건 결코 ‘로드무비’라는 틀만큼은 벗어나질 않았다는 거다.

2005년 자무시와 벤더스는 <브로큰 플라워>와 <돈 컴 노킹>이라는 로드무비를 들고 똑같이 칸영화제를 찾았다. 그러나 여기서 자무시는 벤더스와 거의 반대의 결론에 도달해 있다. <돈 컴 노킹>에서 벤더스의 길은 자아를 찾는 길이고, 복구의 길이고, 의미의 길이다. 거기에 비해 자무시의 길은 방기의 길이고, 대상만이 있는 길이고, 해답이 없는 길이다. 의미가 끼어들 수도 없고, 그런다고 해봤자 뭔가 바뀔 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미정의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의 영화적 길 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지판들을 물끄러미 보며 그 무의미성과 미결(未決)을 넉넉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순서대로 가보자.

자무시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여행자이거나, 유랑자이거나, 아웃사이더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이민자이거나, 실제 외국인이다. 짐을 꾸려 여행하는 사람들이고, 정서의 처소를 찾지 못해서 이질적으로 떠도는 사람들이고, 중심 문화로 들어서기를 거부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고, 내 땅이 아닌 남의 땅에서 남의 언어로 사는 사람들이고, 그래서인지 이제 막 어딘가에 도착했거나 지금 막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이다. 특히, 초창기 두편의 작품 <영원한 휴가>와 <천국보다 낯선>에서 그들의 모습은 황량함으로 그려져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방랑자예요.” 자무시는 <영원한 휴가>의 주인공 앨리를 그렇게 소개한다. 영화의 내용은 별 게 없다. 찰리 파커를 좋아하는 뉴욕 청년 앨리 파커가 빈민촌을 돌아다니며 별별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대화하며 다니는 게 전부다. 고다르식 구성을 염두에 두거나, 오즈를 경외하거나, 브레송 영화의 한 장면을 대놓고 인용하거나 하면서, 아직 시네필의 혈기를 매끈하게 내성화하지 못한 티가 역력하지만, 결국에는 떠돌던 앨리가 마지막 장면에서 무작정 배를 타고 뉴욕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천국보다 낯선>

<천국보다 낯선>

세편의 에피소드로 나눠져 있는 <천국보다 낯선>에서 그들의 모습은 더 황량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에바와 이미 그전에 도착하여 반(半)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촌 윌리의 며칠간의 동거가 이 첫 번째 에피소드 ‘신세계’의 내용 전부다. 원래 단편은 에바가 클리블랜드로 떠나면서 끝난다. 그런데 자무시는 두편의 에피소드 ‘일년 후’와 ‘천국’을 덧붙여 장편으로 만든 것이다. 내용은 윌리와 그의 친구 에디가 에바를 찾아 클리블랜드로 향하고, 거기서 다시 셋이 플로리다로 충동적인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무위도식하는 삶의 내용을 무미건조한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적으로 본다면 다소 과대평가받은 면이 있고, 벤더스의 영향을 의심할 만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미 자무시의 표지판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영화의 첫 장면에 뉴욕에 도착한 에바는 황량한 비행장에 홀로 서 있다. <지상의 밤>에서도 영화는 비행장에서 시작하고, <미스테리 트레인> <데드 맨>에서는 기차가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브로큰 플라워>에 이르러서 에피소드 사이를 잇는 교량 역할로 이륙하는 하늘의 비행기를 연신 보여주는 것은 이런 일관성의 연장이다. 자무시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런 끊임없이 오고가는 임시성의 장면들을 거쳐야만 한다.

“내 집은 미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에요”, “나는 외국인이고, 또한 미국인이에요”, “내 자리는 언제나 주변이에요. 만약 내가 어쩌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될지도 몰라요”라고 자무시는 말한다(실제로 그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브로큰 플라워>에 쏟아진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에 적잖이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주인공들의 입지는 자무시의 개인적 성향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의 생각에 집은 하나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정착이 고착이 되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나 사이-공간을 맴돈다.

<영원한 휴가>의 주인공 앨리는 파리행 배를 타기 직전 항구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지금 막 파리에서 뉴욕으로 온 젊은이다. 꼭 파리에서 뉴욕의 앨리처럼 살았을 것 같은 인물이다. 그러니까 한명이 그 자리를 떠나는 ‘그 시각’, 다른 한명이 그 자리로 들어온다. <천국보다 낯선>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에바가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를 탔다고 착각한 윌리가 표를 끊고 출국장 너머로 그녀를 찾으러 들어간다. ‘그 시각’, 에바는 부다페스트는 고사하고 그냥 플로리다 해변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모텔로 돌아온다. 영화는 거기서 끝나기 때문에 그뒤로 그들이 서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여기서도 중심은 ‘그 시각’이다. 그들이 같은 시각에 그 행위를 우연히도 교차했다는 사실뿐이다. 자무시의 영화에 도시의 지명이 곧잘 지정되는 것은 그 자체로 로드무비의 요소인 탓도 있지만, 이런 우연의 행동이 시간적 필연성 안에서 어떻게 동시에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시각, 여러 곳에서 그들은 뭔가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제각각이다.’ 그게 바로 동시적인 삶에 대한 자무시의 관심이 표명되는 방식이다. 특히나 그 관심사를 풀어냄에 있어 자무시가 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에피소드의 선택이다. <다운 바이 로>(1986), <미스테리 트레인>(1989), <지상의 밤>(1991)에서 바로 그 방식이 두드러져 드러난다.

<지상의 밤>

<다운 바이 로>

자무시 스스로 “네오-비트-누아르-코미디”, 또는 “동화 같은 상상의 이야기”라고 말한 <다운 바이 로>에서는 이름이 비슷한 두 주인공 잭(Jack)과 잭(Zack)의 각각 따로 흘러가던 동시간대 에피소드가 그들이 함정에 빠져 죄를 뒤집어쓰고 루이지애나 감옥 같은 방으로 들어오면서 하나로 합쳐지고, 여기에 로베르토가 등장하면서 다시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것이 유연하게 에피소드를 합친 예라면, <미스테리 트레인>과 <지상의 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에피소드 형식이다. <미스테리 트레인>은 멤피스의 어느 허름한 모텔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혼 아래 접혀진 동시간대 세개의 이야기다. 엘비스를 찾아서 일본에서 건너온 남녀 한쌍, 비행기 사고로 어쩔 수 없이 하룻밤 묵어가야 하는 이탈리아 여자, 술김에 사고를 치고 모텔로 숨어든 세명의 남자가 그들이다. 영화는 같은 모텔을 빌려 이 세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준다. 게다가 자무시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재치있는 몇 가지 요소, 특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블루 문>으로 이것이 같은 시각에 겹쳐 일어난 사건임을 알려준다.

다음 영화 <지상의 밤>에서 그 시각, 그 장소의 그 행위는 다섯개로 나뉜다. LA,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에서 같은 시각 각각 승객들이 택시를 타고 택시 기사와 벌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LA에서는 나이든 연예인 매니저와 나이 어린 소녀 기사가 만나고, 뉴욕에서는 운전에 미숙한 이민자 기사를 대신해 흑인 손님이 대신 운전하고, 파리에서는 맹인 여자와 흑인 기사의 짧은 교감이 오가고, 로마에서는 신부가 떠버리 기사의 차 안에서 숨지고, 헬싱키에서는 직장에서 쫓겨난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며 함께 술을 퍼마신 승객들에게 그보다 훨씬 더 슬픈 일은 얼마든지 있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자신의 절절한 이야기를 기사가 들려준다.

<미스테리 트레인>

<미스테리 트레인>과 <지상의 밤>을 만들고 난 뒤의 인터뷰에서 자무시는 한때 문학도였던 그 기질을 발휘해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종려나무>와 제프리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등에서 이런 형식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건 질문을 위한 대답이다. 사이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자로서, 동시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관심은 당연해 보이고, 그들이 서로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이기 위해서라도 각각의 에피소드는 적절해 보인다. 이쯤에서 자무시는 극중 인물이 한명이라면, 어떻게 그 에피소드 방식을 인물의 삶의 방향에 어울리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데드 맨>과 <고스트 독>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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