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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마스무라를 보러 가자

<아내는 고백한다>

오랫동안 금기였던 탓에 일본 영화사엔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감독들이 많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마스무라 야스조도 그중 하나다. 그는 오랫동안 스튜디오의 고용감독으로 일했고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재평가받은 거장이다. 이번 회고전에서 그의 영화 몇편을 보면서 마스무라를 보러 가자고 선동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오랜만에 발견의 기쁨을 만끽한 영화들이었으므로.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애정없는 결혼이긴 남편쪽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아내를 가정부 겸 비서로 부려먹었고, 아내는 남편을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도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남편의 일을 도와주는 청년에게 마음을 뺏긴다. 애타는 마음을 누르려 애쓰지만 남편은 아내의 마음이 딴 데 있다는 걸 눈치챈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남편은 아내와 청년에게 함께 산에 가자고 제안한다. 남편의 속셈은 아내와 청년을 산속에 버려두는 것이었으나 그만 일을 그르친다. 청년과 아내와 남편은 같은 로프에 묶여 암벽에 매달린다. 청년은 대롱대롱 매달린 아내와 남편의 체중을 감당하느라 죽을 지경이고 여자 역시 맨 아래 매달린 남편 때문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자, 어찌할 것인가? 마스무라의 1961년작 <아내는 고백한다>는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여자가 법정에 도착하는 장면이 오프닝이고 법정 증언이 플래시백과 교차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보여진다. 낯익은 할리우드 법정스릴러처럼 문을 열지만 마스무라의 관심이 미스터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법정을 무대로 삼아 한 여자의 초상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전근대적 가치로 무장한 순종적 여인상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만든 지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봐도 가슴이 서늘하다. <아내는 고백한다>에서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인을 연기한 배우 와카오 아야코는 <만지>에선 더 도발적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먼 여인은 남편을 버리고 그녀와 살고 싶어한다(이 영화에서 동성애는 숨길 이유가 전혀 없는 자연스런 욕망이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새로운 비밀이 드러나고 결국 여자의 남편마저 와카오 아야코에게 엎드려 발을 핥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마스무라의 영화를 보면서 팜므파탈의 정의를 다시 돌이켜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국영화에 필름누아르의 팜므파탈이 있고 한국영화에 김기영 영화의 팜므파탈이 있다면 일본영화엔 마스무라 영화의 팜므파탈이 있다.

물론 마스무라 영화가 팜므파탈의 영화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1958년작 <거인과 완구>는 일본식 자본주의 시스템의 해부도 같다. 경품을 내세운 특판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캐러멜 회사 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만화 <시마과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상적인 대목 하나. 회사에서 촉망받는 선전부 과장은 판매율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며 최선을 다한다. 회사는 그런 과장을 칭찬하고 다음 인사에선 부장이 될 것이란 암시를 준다. 당근의 힘은 강해서 과장은 미치광이처럼 일에 매달린다.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일을 밀어붙이는 추진력, 어딜 가나 이런 사람들은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그로 인해 성공의 열매를 음미할 시간과 체력이 사라졌다는 점은 항상 뒤늦게 깨닫게 마련이다. <거인과 완구>는 성공신화가 되어버린 <시마과장>의 현실적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스무라 야스조 회고전은 11월30일까지다. 서두르면 몇편은 챙겨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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