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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무기상 미국의 정체, <로드 오브 워>

구소련에서 탈출, 뉴욕 브루클린에 정착하면서 유대인보다 더 유대인스러운 생존방식을 훈계받던 유리 올로프(니콜라스 케이지)가 계시처럼 비즈니스에 눈을 뜬다. 기관총과 소총이 주고받던 총격전을 지켜보던 유리가 총을 직접 쥔 마피아보다 총을 건네주는 무기상의 이문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그의 시작은 ‘보따리장수’에 불과했으나 곧 구세군을 뺀 모든 군에 무기를 팔아치우는 세계적 무역가로 발돋움한다. ‘인간은 다리 둘 달린 개’라는 격한 인류애와 코카인 중독과 총거래 중에 어느 것이 더 빨리 수명을 단축시킬지 알 수 없다는 동물적인 현실감각이 그의 유효 자본이다.

<가타카>와 <트루먼 쇼>의 앤드루 니콜은 살짝 트릭을 구사한다. 부도덕한 유리에게 자전적 내레이션을 맡겨 무기상의 시점에 동승하도록 했다. 앤드루 니콜의 진짜 타깃은 무기상들의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진정한 무기상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니콜의 왼편 조력자는 무력한 이데올로기의 잔여물이다. 유리는 냉전이 끝나자마자 우크라이나의 군 장성으로 출세했던 삼촌을 부추겨 칼리시니코프 자동소총부터 무장 헬기까지 거침없이 컨테이너에 선적해 세계 곳곳의 분쟁지대를 누빈다. 덕분에 한동안 침체상태에 머물던 유리는 ‘전쟁의 제왕’(Lord of War)이란 칭호를 얻기에 이른다.

오른편 조력자는 유리의 뒤를 세계 곳곳에서 따라붙는 인터폴 잭(에단 호크)과 아프리카 소국을 지배하는 살인광 대통령이다. 코카인 중독에 빠진 난봉꾼이지만 친구이자 동료인 동생과 안락하고 사치스런 뉴요커의 삶을 지탱해주던 멋진 아내가 차례로 그의 곁을 떠나게 된 것도, 법으로 맞대응하며 따돌려온 수사망에 마침내 걸려든 것도 모두 이들 덕택이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유리를 지켜주는 건 미국 그리고 부시다. 어차피 같은 편이니까.

거대한 무기상 미국의 정체를 암시하고 드러내는 과정이나, 전세계에 팔려나간 5억5천만개의 총이 어떤 비극들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은 유리의 허망한 표정만큼 맥이 없다. 실화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지만 책상 위에서 펜만 굴려 만든 것 같은 표정없는 디테일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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