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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래스와 그로밋의 새옹지마
김혜리 2005-10-19

전미 박스오피스 1위 데뷔 직후 스튜디오 화재로 과거 작품 자료 잿더미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

“불이 나면 대박난다”는 충무로 속설이 있지만, 거꾸로 “대박나고 불난” 아드만 스튜디오에는 위로가 될 것 같지 않다. 스타 캐릭터 월래스와 그로밋의 첫 번째 장편영화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가 개봉 첫주 전미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해 자축 무드에 취해 있던 아드만 스튜디오가 지난 10월10일 월요일 새벽 5시30분(현지시각) 브리스틀 스튜디오에서 발생한 화재로 귀중한 자료들을 잃었다. 30m까지 솟구친 화염으로 창고는 내부 3층이 모두 무너졌지만 요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아드만의 대변인 아서 셰리프는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축연을 벌여야 할 시간에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렸다”고 슬픔을 표했다.

<BBC> <버라이어티> <CNN>에 따르면, 1986년 아드만 스튜디오에 합류한 닉 파크 감독의 초기작 <동물원 인터뷰>와 <월래스와 그로밋> 단편 삼부작 <화려한 외출> <전자바지 소동> <양털 도둑>의 피규어, 세트, 소도구와 오리지널 스토리보드 일부가 화재로 소실됐다. 아드만의 첫 아이로 불리는 <모프>와 최초 장편 <치킨 런>의 자료들도 함께 불탔다. 특히 <월레스와 그로밋> 컬렉션은 최근 일본 전시를 마치고 얼마 전 고향으로 돌아온 터라 아쉬움을 더했다. 극도로 노동집약적인 클레이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을 대중에 알리는 데 적극적이던 아드만 스튜디오 스탭들은 스케치와 스토리보드의 소실을 가장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버라이어티>는 전했다.

불행 중 다행은 런던 히스로공항 부근 창고에 따로 보관한 아드만 작품의 오리지널 프린트들이 화마를 피했다는 것. 최신작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도 프로모션 여행 중이던 닉 파크 감독과 브리스틀의 다른 전시장이 피규어와 세트를 보관하고 있던 덕택에 피해를 면했다. 한편 닉 파크 감독은 클레이애니메이터다운 낙천성과 침착한 태도로 비극을 받아들여 눈길을 끌었다. “아드만에는 더없이 가치있는 소중하고 추억어린 컬렉션이 타버렸지만 남아시아의 지진에 비하면 우리의 상실은 상대적으로 큰 비극이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반응. 영국의 <더 선>은 이번 화재의 원인으로 방화를 추정했으나 브리스틀 소방서는 공식적으로 화인을 발표하지 않았다. <버라이어티>는 영국 언론의 화재 대서특필이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의 영국 내 흥행을 북돋울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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