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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정지우의 도약 [1]
김혜리 2005-10-04

치밀하고 명료한 인생예찬 <사랑니>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장편 데뷔작 <해피엔드> 이후 6년 만에 정지우 감독이 복귀했다. 30살 교사와 17살 제자의 대담한 연애담으로 알려진 <사랑니>는, 생의 한가운데 선 도도한 한 여성과 치밀히 조직된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섭리를 성찰하는 수작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니>의 성취를 살피고, 감독의 연출론과 배우로서 큰 전환을 시도한 김정은의 모험담을 직접 듣는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17살 조인영)

도대체 이런 게 언제부터 내 살 속에 들어와 있었을까? 서른살의 어느 날, 내 안에서 희고 날선 것이 불쑥 돋아나더니 몸과 마음을 들볶는다. 유능한 학원 수학강사 조인영(김정은)에게 사랑은 사랑니와 같은 양상으로 찾아온다. 첫사랑의 소년과 이름도 얼굴도 똑같은 열일곱살 제자 이석(이태성)은 인영에게 격심한 매혹이다. “아야!” 여자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다 슬그머니 미소짓는다. 아프지만, 황홀하다.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는 첫사랑의 트라우마로 장기투병한 여자의 갱생기도 아니고, 미성년자와의 연애에 대한 ‘편견’을 돌파하는 활극도 아니다. 사실인즉 인영은 첫사랑을 잊고 살아왔다. 그것도 아주 잘. 비타민과 달리기를 거르지 않고 패스트푸드도 멀리하며. 인영은 속깊은 이성친구 정우(김영재)와 즐겁게 동거한다. 고교 동창 정우는 한번 그녀를 떠났다가 이혼남이 돼 다시 돌아온 남자다. 산전수전 겪은 정우는 인영의 새로운 연애를 관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초췌한 여고생(정유미)이 학원으로 이석을 찾아온다. 첫사랑을 잃을까봐 울먹이며. 소녀의 교복 명찰에는 ‘조인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수놓여 있다. 애인 앞에서 미안해진 이석은 소녀를 밀쳐낸다. 네가 사랑한 건 내가 아니라 죽은 쌍둥이 형이라고 소리친다. “아니야, 너야. 너 때문에 아픈 거야. 너를 사랑해.” 오열하는 소녀와 난처한 소년을, 인영은 관객이 돼 바라본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결국 소년은 서른살 인영을 선택하고, 그녀로부터 사랑의 규칙을 습득한다. 등 돌리고 눕지 말기, 과거를 질투하지 말기 등등. 그런데 꽃이 필 무렵 의연한 척하던 정우가 서른이 된 ‘진짜 이석’을 찾아서 데려온다. 타이밍도 참.

사랑의 개념에 한해, <사랑니>는 순정을 기리는 <너는 내 운명>의 대극에 서 있다. <사랑니>가 그리는 사랑은 현실을 초극할 만큼 특별하지만 영원하지는 않은, 살면서 몇번씩 치르는 제의이고 파트너가 바뀌는 윤무다. 사랑뿐 아니라 뭐든 불변하고 유일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나면 더 할말이 없어지는데 <사랑니>는 사랑을 누구나 갖는 인생의 무늬 같은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패턴을 드러내는 일에 몰두한다. 정지우 감독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핵심, 즉 영화 <사랑니>의 테마를 17살 인영의 대사로 요약한다. 열병을 치러낸 소녀는 봄꽃이 분분한 병원 마당에서 민들레가 바람에 홀씨를 날리듯이 중얼거린다.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 이 간절하고도 (당연히) 불가능한 소녀의 소망은, 사랑의 요체가 대상과 하나가 되려는 욕망이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라는 깨달음을 전한다. 그러나 정지우의 연출은 영화 내내 이 궁극적 깨달음이 못내 서러운 절망이 되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한다.

“니가 사랑한 게 나야? 아니잖아! 우리 형이잖아!”(17살 이석)

정지우의 전작 <해피엔드>는 최종 편집 단계에서, 배신당한 남편의 백일몽이 현실의 살인으로 뒤바뀌고, 그것이 결국 바람난 여자의 처형으로 비쳐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용감하고 건강한 여성을 시선의 주체로 세우고 이야기 구성을 치밀하게 고안한 <사랑니>는 그래서, 6년 전 논란에 대한 감독의 대답으로 보이기도 한다. 17살 인영과 30살 인영의 이야기를 평행으로 오가며 정지우 감독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시간을 이어붙인다. 그는 영화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시간의 벽을 뚫는다.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의 머릿속에는 회상, 다른 현실, 데자뷰, 시간여행, 도플갱어 등의 단어가 차례로 지나간다. 17살 인영의 시간과 30살 인영의 시간은 서로 다른 메트로놈에 맞춰 흘러간다. 30살 인영의 세계가 지닌 리듬의 배속으로 흘러가는 17살 인영의 시간은, 한순간 30살 인영의 현실과 조우했다가 다시 자기의 길을 간다. 결과적으로 <해피엔드>에 비해 <사랑니>의 이야기는 소박하되 농밀하다.

어린 인영과 서른살 인영의 이야기는 물리적 현실에서 마주치는 한편, 각자의 세계에 들어앉은 채 감정을 충돌시켜 응어리를 빚어내기도 한다. 예컨대 이 시퀀스. 실연으로 탈진한 17살의 조인영은 양호실을 찾는다. 한쌍의 병든 강아지마냥 놓인 소녀의 신발 옆에서 가혹하게도 양호 교사는 저녁의 데이트를 채비하듯 새 구두를 신어본다. 이 장면의 음악이 다음 신으로 흘러들면 서른살 인영은 서른살 이석을 만나기 위해 외출한다. 그러나 이석은 그녀의 성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돌아오는 길, 구두를 벗은 인영의 맨발에는 새 구두를 신느라 덧댄 반창고가 붙어 있다. 이처럼 <사랑니>의 이야기는 종횡으로 확장되는 사방연속문양이다. 남자친구에게 어린 인영이 지구본을 선물했음을 아는 관객은, 서른살 정우의 방 귀퉁이에 있는 낡은 지구본에서 정우에게도 있을 옛사랑의 사연을 상상한다(그러니까 사랑은 상대에게 세계를 선물하는 일이다!). <사랑니>는 이처럼 대구를 이루는 이미지를 촘촘히 배치해 사랑의 추상적 패턴을 그린다. 이석은 점검 중인 엘리베이터 승강구의 입 벌린 암흑을 내려다보고 인영은 옥상에서 추락을 상상한다. 두 사람의 인영은 똑같이 이석과의 첫 정사 뒤 세탁기 앞에서 명상에 빠진다. 이 모든 사물과 일화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주관으로 인해 중요성을 획득한다. 이사한 이석의 교실로 달려간 인영의 눈에는 창가에 걸린 누구 것인지 모를 교복 와이셔츠가 보인다. 그것은 이석의 옷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카메라는 그 셔츠를 지그시 응시한다. 실제로 그것이 누구의 옷이든, 그 하얀 셔츠는 인영에게 이석의 부재를 상징하는 ‘손수건’이기 때문이다.

“너 어젯밤에 비 내린 거 알아? 잠자는 사람은 그걸 모르는 거야.”(30살 조인영)

한편 <사랑니>는 연기연출에서 비범함을 과시한다. 긴장하면 어딘가 가면처럼 보이는 김정은 특유의 이목구비와 낭랑한 음성은, 똑 부러지는 수학 강사 인영에게 제격이다. 그녀는 출근을 할 때면 갑옷을 입듯 화장을 하고, 퇴근 뒤에는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을 푸는 이 도시 여자들의 얼굴이다. 그동안 철없고 귀여운 이미지에 가려 있던 그녀의 길고 갸름한 실루엣을 <사랑니>는 십분 활용한다. 김정은 스타 이미지의 전복도 흥미롭다. 그간 김정은은 스크린과 드라마 속에서 김선아와 더불어 적당히 세상에 지친 20대 후반 미혼여성의 아이콘이었지만, 반드시 극중에서 남자와 짝짓기를 해야 여정을 끝낸다는 점에서 김선아와 달랐다. 그런데 <사랑니>의 인영은 멜로드라마의 ‘커플링’ 관습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캐릭터다. <사랑니>의 김정은이 낯선 까닭은 그녀가 코미디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래서다.

무엇보다 <사랑니>는, 귀를 막고 인물의 움직임과 시각적 정보만으로도 내러티브의 흐름은 물론, 세세한 플롯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찍힌 영화다. 허문영 영화평론가는 “대사가 없어도 동작만으로 긴장과 재미가 생긴다”고 <사랑니>의 미덕을 표현한다. <사랑니>의 형식은 뽐내지 않는다. 촬영과 조명과 미술 등의 요소는 인물과 그의 정서에 전적으로 봉사한다. 정지우 감독이 손수 해낸 편집은 감정의 법칙과 연상의 논리를 충실하고 과감하게 따른다. 17살 인영과 30살 인영의 장면은 종종 두 여자가 상대가 처한 상황을 지켜보는 것처럼 연결된다. <사랑니>가 이룬 무성영화적 아름다움의 비결에 대한 정지우 감독의 설명은 이러하다. “카메라뿐 아니라 조명도 중요하다. 조명 범위를 좁히면 배우의 동선이 좁고 딱딱해진다. 물론 두 시간을 세팅해 빛 좋은 지점을 마련했는데 그늘에 들어가서 고개를 돌리면 섭섭하다. 그래도 인물을 중심에 두는 원칙은 고수했다. 17살 인영과 30살 인영을 찍는 방식의 차이도 배우의 동선을 존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정우와 인영, 두명의 이석이 만나 보내는 특별한 저녁신은 시선의 분할만으로도 인물의 관계를 종합하고 클라이맥스의 정서를 전한다. 정지우 감독은 이질적인 두개의 시간대를 교차시킨 트릭을 반전으로 소진하고 내버리지 않는다. 끝까지 밀어붙여 두명의 이석을 통해 인영의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을 대면시킨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이 장면을 두고 “시간 구조의 트릭이 마지막 순간도 속임수로 끝나면 역겨웠을 텐데 그것이 결국 이야기의 필연성과 어우러졌다. <사랑니>는 실재와 환상을 끝내 대면케 하고 거기서 따뜻한 일종의 해피엔딩을 기어이 끌어냈다. 이는 <해피엔드>보다 정지우다운, <생강>과 잇닿는 정서다”라고 말한다.

“사는 게 어때?” “좋아.” “뭐가?” “사는 거.” (30살 이석과 30살 조인영의 대화)

<사랑니>는 <극장전>만큼 구성이 튼튼하고, <외출>보다 사랑의 역설에 관해 명료하며, <형사 Duelist>보다 무성영화적 (여기서 방점은 ‘무성’이 아니라 ‘영화’에 있다) 미감이 탁월한 영화다. 허문영 영화평론가는 <사랑니>에서 정지우가 도달한 지점을 이렇게 묘사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일군의 젊은 감독들은 지금 장르적인 것에 대한 매혹과 게임을 벌이고 있다. 정지우는 그런 매혹 바깥에서 순전히 자기만의 동선과 리듬을, 또 다른 영역을 만들어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사랑니>의 정지우는, 동시대 한국영화에 결핍된 이야기할 줄 아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그래서 한국영화의 작은 희망으로 보인다”고 평한다.

<사랑니>는 느리게 숨쉬지만, 일상을 관조하는 영화도 삶의 단면을 통해 전체를 환유하려는 사실주의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환상적 구도의 추상화에 가까운 <사랑니>는 인생과 사랑을 편협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향한 단호한 비판이고 고통과 희열이 뒤섞인 삶의 복잡한 감흥을 노래하는 인생예찬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첫사랑도 그중 하나다. 불가피한 상실에 대해 씁쓸하게 냉소한 유럽영화들을, 원숙하게 체념한 아시아의 거장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랑니>의 정서는 맑고 명랑하다. 과장하거나 엄살 떨지 않고 상실을 이야기하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황홀하게 음미한다. <사랑니>는 우리의 귓전에 속삭인다. 그러니 어여쁜 흉터를 지닌 그대여, 편히 잠들라. 다만 당신이 잠든 사이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사실만 기억하라.

정지우 감독의 단편 <배낭을 멘 소년>

탈북 소년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

<사랑니>를 준비하는 도중에 최현기 촬영감독을 비롯한 <사랑니> 스탭 일부와 함께 찍은 단편 <배낭을 멘 소년>(국가인권위원회 지원, 흑백 HD, 2004)은 이 땅에 연고가 없는 탈북 청소년의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되면 중국에서 타이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정착한 소녀가 남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김정일 봤어?” “인육 먹어봤냐?”는 질문이 그녀를 위협한다. 소녀의 눈에 비친 세계가 기우뚱해진다. 사투리가 마음에 걸려서인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노래방에서 일하는 그녀. 집에 돌아오면 울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쓴다. 제목이 ‘배낭을 멘 소녀’였나 의아해질 무렵, 소녀는 역시 탈북한 폭주족 소년을 만난다. 약간의 모험을 함께한 둘은 동무가 된다. 소녀는 “오토바이 천천히 타십시오. 고향에는 가야지”라고 정을 담아 당부하지만, 이어진 자막은 소년이 “남한 애들보다 유일하게 잘하는 일”인 폭주를 멈추지 않았음을, 그래서 영원히 고향에 가지 못하게 됐음을 통보한다. 정지우 감독은 소녀에서 소년으로 툭 옮아가는 이 영화의 서사를 “낯선 세계에서는 남자들의 부적응이 훨씬 심하다. 내가 인터뷰한 탈북 소년들도 자기 상황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년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이 HD영화는 필름으로 환산하면 “김기덕 감독의 장편 분량에 해당하는” 5만 피트 분량을 촬영했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자존을 갖고 살자고 말하는 영화의 의도는 단순명쾌하지만, 뒤에 남는 생각과 감정의 그림자는 길다. “<사랑니>처럼 구조로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 위태로운 소재에 대한 나의 결론을 자신있게 낸 영화”라고 정지우 감독은 자평한다. <사랑니>보다 늦게 시나리오가 씌어진 <배낭을 멘 소년>은 장차 구사할 화법에 대한 정지우의 고민을 잘 드러내는 소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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