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콜렉터>는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의 영화다. 연쇄살인범의 초상은 <양들의 침묵> <쎄븐> 이후 할리우드의 단골로 급부상했고, 범죄를 일종의 예술처럼 여기는 기묘한 사디즘은 정교한 내러티브 속에서 관객과 게임을 벌인다. 물론 <본 콜렉터>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양념들을 듬뿍 쳐놓았다. 머리를 제공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흑인배우 덴젤 워싱턴이며, 그의 수족이 되어 몸을 아끼지 않는 일은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다. 할리우드영화에서 남성의 두뇌와 여성의 몸의 결합은 요즘의 한 경향이고 그것도 다른 인종간의 결합이면 금상첨화다. 범인이 제시하는 단서를 따라 뉴욕의 과거를 훑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낡은 도살장, 한권의 추리소설, 뉴욕의 어두운 지하도 등.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강과 결말로 이끈다.
하지만 범인의 등장은 빛이 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긴급명령> <패트리어트 게임>을 만든 호주 출신의 필립 노이스 감독은 항상 일정 수준의 오락 영화를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그 이상을 넘지는 못한다. <매드 맥스> 시리즈의 조지 밀러 감독이 제작한 초기작 <죽음의 항해>는 여러모로 괜찮은 스릴러물이었는데, 이후 스펙터클과 스릴러를 혼합한 장르 영화들을 만들면서 기력이 소진된 인상이다. 다행인 점은 <매드 맥스>의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딘 세믈러가 <죽음의 항해> 이후 오랜만에 필립 노이스와 손을 잡았다. 화면에서 역동적인 힘이 느껴진다면 절반이 그의 몫이다.
<본 콜렉터>는 잘 빠진 장르 영화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장르의 관습과는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모방한다는 것인데, 도나위는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링컨을 욕망하고 모방하며, 범인은 연쇄살인의 수법을 추리 소설 속에서 찾는다. 이 점은 <양들의 침묵>을 고스란히 베낀 것이다. 조디 포스터와 감옥에 갇힌 렉터 박사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것은 <본 콜렉터>조차 할리우드가 세운 장르의 모방 욕망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사실이다. 도대체 누가 ‘카피 캣’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