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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눈으로 그린 정물의 고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특별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특별전, 부산·서울에서 열려

이탈리아 모더니즘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만든 19편의 대표작이 한국을 찾는다. 9월9일부터 25일까지(월요일과 추석연휴 휴관) 부산의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10월5일부터 19일까지는 서울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리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특별전에서는 첫 다큐멘터리인 <포강의 사람들>(1943)과 첫 장편영화 <어느 사랑의 연대기>(1950)에서 <여인의 정체>(1982)까지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보여주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영화평론가 한창호씨가 안토니오니의 작품세계를 짧지만 인상적으로 묘사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공간의 수사학

안토니오니는 알려져 있듯 ‘소외의 감독’으로 소개된다. 60년대의 대표작인 <정사> <밤> 그리고 <일식>은 특별히 ‘소외 삼부작’으로 분류되며, 지금도 감독의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산업화된 사회 속의 고립된 존재들, 이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상처를 건조하게, 그러나 너무나 예리하게 관찰해냈기 때문이다.

펠리니가 부유하는 인물들의 존재의 불안을 시끌벅적한 풍속화처럼 그려냈다면, 안토니오니는 그들의 외로움을 ‘죽은 공간’ 속에 풀어놓는다. 앞에서 함께 본 <일식>의 첫 시퀀스처럼 안토니오니 영화는 정물화의 세계와 닮아 있다. 이 영화의 12분간 이어지는 도입부는 두 남녀의 이별 시퀀스인데, ‘사랑이 죽어 있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감독이 이용하는 게 정물이다. 정물(靜物, Still Life), 말 그대로 물건이, 혹은 생명이 정지돼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죽음의 완곡한 표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정물은 ‘바니타스’(삶의 헛됨)를 상징하는 그림이 됐다. 우리도 정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자연, 곧 운명적인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식>의 두 남녀가 이별하는 이유는 사랑이 죽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랑’, 이런 추상적인 개념을 묘사하는 데 안토니오니가 상투적으로 이용하는 수법이 ‘공간의 수사학’이다. 다시 말해, 장소가 테마를 설명하는 식이다. 바싹 마른 정물의 공간 같은 실내에서, 두 남녀가 죽은 사랑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게 <일식>의 도입부이다. 그림은 정물처럼 바싹 말라 있지만, 그 그림이 담고 있는 심리는 피흘리고 있는 중이다.

<일식>

약 7분간 이어지는 <일식>의 종결부도 이별 시퀀스다. 이번에는 실내가 아니라 바깥이다. 우리는 당시 안토니오니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모니카 비티와 알랭 들롱이 자기들이 늘 만나던 장소로 나올 것인지 의문을 품고 기다린다. 카메라는 먼지만 풀풀 이는, 사막과 같은 로마의 신도시 거리를 비춘다. ‘죽은 땅’ 사막을 연상시키는, 생명이 없는 공사판의 거리만을 계속 보여주는 것으로 안토니오니는 두 남녀의 ‘죽은 사랑’을 상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식>은 ‘죽은 사랑’으로 시작하여 ‘죽은 사랑’으로 끝나는, 두개의 정물화가 마주 보고 있는 형식의 영화다.

이렇게 공간으로 심리를 대신 묘사하는 수법은 다른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고,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최근 <에로스>를 함께 만들었던 왕가위가 꼽힌다. 이를테면, 사랑했던 사람이 떠난 뒤의 텅 빈 골목길을 비추는 것으로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은 이제 왕가위 영화의 클리셰가 됐다.

정물의 공간, 사막에 대한 집착

‘정물의 공간’, 다시 말해 생명이 없는 죽은 공간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대신 나타내는 수법은 <정사>의 시칠리아 근처 바위섬, <밤>의 한적한 밀라노 거리 등에도 잘 드러나 있다. 사람 사이를 소통하지 못하는 <정사>의 인물들이 휴양지로 찾아간 장소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사막처럼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섬이다. 사막에서 생명이 싹트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이런 바위섬에서 사람들이 소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또 <밤>의 여주인공 역으로 나오는 잔느 모로는 언제나 바싹 말라 있는 밀라노의 텅 빈 거리를 혼자 방황하고 다닌다. 두 영화 모두 ‘정물의 고독’에 갇힌 여자주인공들의 외로운 심리를 따라가는 드라마인 것이다.

죽은 공간 중에 가장 상징적인 장소는 사막이다. 생명이 없는 사막은 죽음에 대한 강렬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붉은 사막>은 제목 자체에 ‘사막’이라는 공간이 암시돼 있다. 산업화 속의, 감정이 죽어 있는 공간을 감독은 ‘붉은 사막’이라고 명명했다. 이 영화에 사막이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주인공 역을 맡은 모니카 비티가 돌아다니는 공간은 ‘회색 사막’에 다름 아니다. 생명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상태, 다시 말해 ‘검은’ 죽음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상태의 색깔로 감독은 ‘회색’을 꼽았고, 모니카 비티는 회색의 공간에 갇혀 있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다시 말해 죽음으로 점차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사막이 아예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가 <자브리스키 포인트>이다. 제목은 미국 서부의 ‘죽음의 계곡’에 있는 장소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막 한복판에서 주인공인 두 남녀는 사랑을 나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충돌하는 순간인 것이다. 두 젊은이의 사랑(에로스)이 사막(타나토스)에서 불타오르지만,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승부에서 누가 이기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죽음을 이기는 자 아무도 없듯, 두 사람의 사랑은 잉태되지 못한다.

<붉은 사막>

<자브리스키 포인트>

잉태되지 못할 사랑을 암시하는 ‘사막에서의 사랑’ 시퀀스도 안토니오니 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다. 비교적 초기작인 <여자친구들>에서도 주인공들은 해변의 모래사장 위에서 헛된 사랑의 즐거움을 잠시 맛보고, 비관주의 영화의 극치인 <외침>에서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늘 사막 같은 맨땅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을 갈구한다. 사막에서의 사랑과 죽음은 <여행객>에서도 반복되는 모티브이고, 4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중국>에 나오는 풍경은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사막의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안토니오니는 화가다. 그래서인지 공간에 대한 관찰이 남달리 세밀하다. 이는 초기의 <포강의 사람들>같은 다큐멘터리 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초기작에서도 그런 특징은 발견된다. 장편 데뷔작인 <어느 사랑의 연대기>에 나오는 밀라노의 비내리는 풍경, <동백꽃 없는 여인>의 로마의 밤풍경 등 안토니오니의 영화에서는 이탈리아의 도시에 대한 화가의 빼어난 관찰을 확인할 수 있는 게 또 다른 매력이다.

하지만 그런 풍경들은 화면의 화려함을 강조하려고 등장하는 게 아니다. 풍경은, 다시 말해 공간은 늘 그 공간 속에 들어 있는 인물들의 갈등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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