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는 조니 뎁 옆에서 100번 복제된 딥 로이가 눈길을 끈다. 이 척추장애인 배우는 혼자서 모든 움파 룸파족의 역을 해내는데, 초콜릿 공장의 종업원인 이 작은 종족은 영화 틈틈이 열광적인 뮤지컬 장기로 자리매김한다. 여러분은 아마도 이 배우를 이미 <빅 피쉬> <혹성탈출> 혹은 <다크 크리스탈>이나 <네버 엔딩 스토리> 등에서 보았을 것이다. 본인에겐 한 열정적인 영화광이 자비로 파리에서 출간한 <영화 속 난쟁이들>이란 책을 다시 들춰볼 계기가 되었다.
영화 속 척추장애인 배우들의 역사에서 1939년은 중요한 해로 남을 것이다. 역마차 습격, 싸움질 등으로 볼 때 <작은 마을의 공포>는 모든 출연 배우가 척추장애인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전통적인 서부극이었다. 배우들은 무척 심각하게 연기를 하지만, 촬영 세트와 소품들은 실물 크기여서 결과적으로 난쟁이 여배우가 엄청나게 큰 콜트 자동소총을 휘두르거나 카우보이들이 주점의 여닫이문 아래로 지나가는 등… 만약 모든 배우들이 몇주 뒤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 촬영장에 다시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은 하나의 일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으로 스튜디오의 대작 영화를 위해 40명의 척추장애인 배우가 모였다. 컬버 호텔에 묵은 그들은 필연적으로 매스컴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술잔치, 난교파티 등의 온갖 종류의 기만적인 풍문이 촬영 기간 내내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사람은 할리우드에 머물며 배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역사적 재구성에서 봤을 때 척추장애인들은 그들이 회화에서 맡았던 왕의 어릿광대, 신비로운 조언자와 같은 역할을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루이스 브뉘엘 감독도 이 전통에 맞닿아 있다. 그는 <나자린>과 <사막의 시몽>에서 척추장애인 헤수스 페르난데즈를 캐스팅했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서는 피에랄에게 한 역을 맡겼다. 프랑스 출신의 이 뛰어난 척추장애인 배우는 특히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저녁의 방문객들>과 장 들라노이 감독의 <영원한 귀환>에서 연기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체로 척추장애인 배우들은 질이 떨어지는 작품에서 사디스트적인 역을 맡았다. 조세희의 걸작을 각색해 이원세 감독이 1981년 영화화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아주 예외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척추장애인은 한 개인으로서의 위상을 뛰어넘어 비천한 상태로 머물러 있게끔 강요당하고 억압받는 민중을 상징하게 된다.
필리핀에는 척추장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국가적으로 유명한 왱왱이 있다. 그 나라의 대스타로서 ‘007 ½’ 요원 역을 맡은 그는 가라테를 하고,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내릴 땐 이불보를 낙하산으로 이용하기도 하며…. 이 간략한 개관에 포르노영화도 빠지지 않는다. 나폴레옹이란 척추장애인은 콧수염을 기른 포르노 배우로 <결코 저항할 수 없는>(1991) 등으로 1990년대 초반 전성기를 누렸고, 미젯은 <마이크로슬럿>(1996) 등으로 1990년대 후반 포르노계의 여주인공이었다.
척추장애인 배우들은 종종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 텔레비전 시리즈인 <마법사>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라파포트는 산 페르난도의 한 공원에서 심장에 총을 쏴 자살했다. 마이클 던은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넌 이젠 어른이야>(You are a big boy now, 1966)에도 출연하고, 돈 시겔 감독의 <마디간>(헨리 폰다 주연, 1967), 조셉 로지 감독의 <붐!>(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1968), 조지 쿠커 감독의 <져스틴>(1968)에도 출연했고, 텔레비전 컬트 시리즈인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나 <스타트랙> 같은 작품에도 출연했다. 그는 1973년 런던에서 자살했다. 브로드웨이에서 한동안 활동한 뒤, 프랑스인 에르베 빌쉐즈는 1973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첫 작품인 <강탈>에 출연했고,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선 악한을 연기했다. 그는 1993년에 자살했는데, 자신의 시신을 전문의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의학용으로 기부했다. 묘하게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촬영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자신의 마지막 역을 통해 빌쉐즈는 영화의 실패를 기록한 것일까? 영화예술은 그가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자신의 다른 점을 표현의 방법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해주지 않았다. 스크린은 한 사회의 비천한 시선을 비춰줄 뿐이었다. 카메라는 단지 차가운 도구로서 감독의 시선에 종속될 뿐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자기에게 맞는 역을 찾기 위해 남은 것이라곤 홀로 죽어가는 자신을 찍는 것 외엔 없었던 것이다.
Breves et tragiques histoires de nains
Dans Charlie et la Chocolaterie, on remarque a cote de Johnny Depp la presence de Deep Roy, multiplie par cent. Cet acteur nain interprete a lui seul tous les Woompa Loompas, ces petits employes de la chocolaterie qui ponctuent le film de delirants numeros musicaux. Vous l’aviez peut-etre deja vu dans Big Fish, La planete des singes ou encore Dark Cristal, L’histoire sans fin... L’occasion de relire un livre de chevet : Les nains au cinema publie a Paris et a compte d’auteur par un cinephile passionne.
Dans l’histoire des nains au cinema, 1939 restera une annee clef. Attaque de diligence, bagarres… The terror of Tiny Town est un western conventionnel sauf qu’il est entierement interprete par des nains. Les acteurs jouent tres serieusement mais les decors et accessoires sont a taille reelle : une naine brandit donc un colt demesure, les cow-boys passent sous les portes battantes du saloon… The terror of Tiny Town serait une anecdote si toute la distribution ne s’etait retrouvee quelques semaines plus tard sur le tournage du Magicien d’Oz de Victor Flemming. Pour la premiere fois, un grand film de studio reunissait 40 nains. Loges au Culver Hotel, ils attirerent inevitablement l’attention des medias. Beuveries, orgies… toutes sortes de rumeurs fallacieuses ont circules pendant le tournage. Certains nains resterent neanmoins a Hollywood et y firent carriere.
Dans les reconstitutions historiques, les nains ont repris le role qu’ils ont dans la peinture : fous du roi, mysterieux conseillers… Luis Bunuel se rattache a cette tradition. Il employa le nain Jesus Fernandez dans Nazarin et Simon du desert. Pour Cet Obscur Objet du desir, il fit tourner Pieral. Ce superbe acteur nain francais joua notamment dans Les Visiteurs du soir de Marcel Carne et L’eternel Retour de Jean Delannoy. De telles occasions sont rares. Globalement, les nains ont plutot droit aux roles de sadiques dans des films bas de gamme. La petite balle lancee par un nain, adaptation du chef-d’œuvre de Cho Sehui tourne par Yi Wonse en 1981, est bien une exception, mais le nain depasse alors son statut de personnage pour devenir un symbole : celui du peuple opprime, condamne a rester petit. Aux Philippines emergea le seul heros national nain : Weng Weng. Immense vedette en son pays, l’agent 007½ pratique le karate, utilise un drap comme parachute pour sauter du toit d’un immeuble… Ce bref panorama ne saurait oublier le X : Napoleon, hardeur moustachu, connut son heure de gloire au debut des annees 90 (A little irresistible 1991…) puis Midget fut l’heroine de pornos a la fin des annees 90 (Microslut 1996…).
Les acteurs nains eurent souvent de tristes destins : David Rappaport, heros de la serie The Wizard, se tira une balle en plein cœur dans un parc de San Fernando. Michael Dunn tourna avec Francis Coppola (You are a big boy now - 1966), Don Siegel (Madigan - 1967 avec Henry Fonda), Joseph Losey (Boom ! - 1968 avec Elizabeth Taylor), George Cukor (Justine - 1968) et dans des series tele cultes comme Wild Wild West ou Star Trek. Il se suicida a Londres en 1973. Apres une carriere a Broadway, le francais Herve Villechaize avait joue dans Seizure (premier film d’Oliver Stone tourne en 1973) et interprete le mechant dans le James Bond L’homme au pistolet d’or. Il se suicida en 1993, leguant son corps a la medecine pour qu’un specialiste puisse l’etudier. Etrangement, il avait pris soin de filmer sa propre mort. Dans son dernier role, Villechaize pointait-il l’echec du cinema ? Cet art ne lui avait pas permis de transcender son handicap, de porter sa difference au rang de moyen d’expression. L’ecran n’avait fait que renvoyer le regard lamentable de la societe. La camera n’etait qu’un outil froid, qui dependait de l’oeil du realisateur. Alors il ne lui restait plus qu’a se filmer tout seul et mourir, pour enfin trouver un role a sa haute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