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에서 어른거리는 하얀 소복과 함께,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는 처녀귀신의 강력한 무기라 불릴 만하다. 선혈이 낭자하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끔찍한 사지절단도, 귀를 찢는 살벌한 비명도 대신할 수 없는 머리카락의 어두운 공포는 여성적이고 동양적인 한의 정서를 담는다. 밖으로 내보이지 않고, 자꾸만 안으로 삼키게 되는 한, 혹은 어떤 과거는 슬플 수밖에 없다. 안이 보이지 않는 구멍처럼, 머리카락 속에 감춰진 귀신의 얼굴은 상상력을 자극하여 더없이 무섭기만 하다. 은근함과 익숙함에서 유발되는 낯선 공포를 호러장르의 신종 규칙으로 자리잡게 만든 J호러와 함께, 기분 나쁘게 휘감기는 길고도 검은 머리카락은 일찍이 이 장르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한올한올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누군가의 머리카락에서 시작하는 영화, <가발>의 주인공은 그 머리카락이 품고 있는 기억 그 자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지난한 투병 때문에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버린 동생 수현(채민서)에게 가발을 선물한 지현(유선)은 어릴 때 부모를 잃은 뒤 극진하게 동생을 보살펴왔다. 한때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 기석(문수)과의 삐걱대는 관계를 청산하는 일까지도 수현의 임박한 죽음 이후로 미뤄둔 수현은 남다른 상처를 지니고 있다. 끔찍한 사고로 목을 다친 뒤 그는 목소리를 잃었다. 서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인 이들의 관계는, 가발을 쓰면서부터 이상할 정도로 활기를 띠게 된 지현이 노골적으로 기석에게 접근하면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망이 없다던 수현의 병세를 호전시키고, 파리한 수현의 안색을 몰라볼 만큼 환하게 만들며, 순종적인 수현의 성격까지 도발적으로 바꾼 것은 바로, 소름끼치게 생기있는 가발. 그 가발에 머리카락을 제공한 주인공이 애절하고 억울하며 슬픈 사연을 간직한 채 죽어갔다는 것은 사실 이젠 반전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진부하다. 그러나 감독 역시 미스터리를 해명하는 과거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미스터리의 원인을 밝히다보면, 그로 인해 이야기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그저 특정한 장치에 그치게 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는 설명처럼 모든 아귀를 설명하는 가발에 얽힌 일련의 과거장면은, 피하고 싶은 통과의례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내내 강조됐던 수현의 어떤 달라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 생경한 섬뜩함이 스쳐간다. 까다로운 배역을 성실하게 자신의 깜냥 안에서 소화한 배우, 그리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특수분장의 힘이다.
반면 지현과 수현의 자매애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면면이 이어지며 변주된다. 목소리와 머리카락을 잃고, 즉 치명적인 결핍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이들 자매의 빛나는 과거와 암울한 현재가 언뜻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조되는 것. 이는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더해지는 이들의 불신과 증오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장치다. 돌이킬 수 없도록 깊어진 자매의 애증은, 가발이 드리운 저주보다도 고약하고 치명적인 살의를 선사한다. 진의를 짐작할 수 없는 표정에 담긴 이들의 감정은 때로 모호하지만, 그 모호함은 아름답고 슬픈 공포라는 최근 한국 공포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제법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호러 장르의 얄팍한 법칙, 혹은 이제는 익숙해진 변칙을 끝내 피하려는 노력은 <가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장된 사운드와 맥락없이 등장하는 꿈 혹은 회상장면이 만들어내는 깜짝쇼는 여기 없다. 제작진이 말하는 ‘클래식한 공포’는, 비명도 지를 수 없도록 설정된 지현, 최근 한국 공포영화의 인장과도 같은 꽃무늬 벽지를 초반부에 하얗게 칠해버리는 수현의 캐릭터, 충분히 과장되게 표현될 수 있었음에도 표현수위를 낮춘 듯한 살해장면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여학생들의 뒷모습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함, 뚫린 지현의 목과 피투성이가 되어버리는 수현의 맨머리처럼 훼손된 신체가 불러일으키는 아찔한 감각은, 공포가 비롯되는 지점을 깊이있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탐스럽고 음산한 가발 못지않게 공들여 표현한 파리하고 이질적인 맨머리의 질감은, 관객에게 좀더 다양한 종류와 수위의 공포를 경험하게 해준다.
<가발>이라는 직접적이고 솔직한 제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일련의 동양적인, 혹은 한국적인 공포영화와 맥을 같이함에 대한 인정이면서, 막상 그처럼 머리카락을 직접적으로 내세운 영화는 없었다는 식의 미묘한 차별화의 의지를 내비친다. 그러나 스스로 만든 함정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장르영화의 법칙을 피하가겠다는 <가발>의 목표는 일종의 소화불량상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감독의 의도와 관객과의 소통을 둘러싼 함수를 정교하게 계산하지 못한 결과, 영화의 후반부는 전반부의 치밀함을 상쇄할만큼 불균형해진다. 그토록 피하고자 한 공포영화의 장르법칙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장편영화 데뷔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책이 <가발>처럼 차곡차곡 감정과 논리를 쌓아가는 영화에서는 다소 치명적이다. 그래도 공들여 만든 섬세하고 신선한 이미지의 힘만큼은 최근 공포영화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원신연 감독의 전작들
하나의 아이디어에 담긴 묵직한 주제의식
무술감독 출신 독립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원신연 감독의 독립단편영화 대부분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중 공포영화라고 분류할 만한 영화는 한편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엔딩 크레딧까지 꼼꼼히 챙겨보면 <가발>까지 이어지는 희미한 몇 가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함께 작업한 스탭의 리스트,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주인공을 대하는 애틋한 진심, 그리고 특정 소품, 형식, 사건 등 하나의 아이디어 속에 담긴 묵직한 주제의식 등이 그것이다.
“나 오늘은 못 나갈 것 같아. 하지만 내일은 꼭 볼 수 있을 거야” 친구에게 남긴 한 주인공의 무심한 음성메시지와 의미심장한 세탁기 소리로 시작하는 <세탁기>(2001년, 16mm)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 상습적인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고생의 마지막 하루를 담았다. 직접적인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 외면일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영화에는 무언가에 찔린 사람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 상처입은 소녀의 알몸, 섬뜩하게 벗겨지는 가발 등 독립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수분장이 등장한다. <범죄의 재구성>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가발> 등에서 특수분장을 맡았던 이창만씨가 원신연 감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작품으로 이후 이창만씨는 원신연 감독의 모든 단편에 참여했다. 불안에 떠는 한 청년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에서 시작해, 존속살해범을 사살한 분주한 현장의 롱숏까지 이어지는 한컷으로 영화 한편을 갈무리한 <자장가>(2002년, 35mm)는 마지막에 흐르는 여자의 허밍 돌림노래가 애잔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세탁기>에서 원신연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췄고, <말아톤>으로 장편 데뷔한 김준성 음악감독의 이름을 크레딧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포보다는 애틋한 감정을 우선시하는 <가발>의 음악 역시 그의 작품. 어디선가 굴러떨어진 바윗덩어리가 해직 철도노동자의 자살소동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과정을 담은 <빵과 우유>(2003, 35mm)는 <B형 남자친구> <가발>의 김동은 촬영감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