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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3부작 완결편, <숨결>
이유란 2000-03-14

<낮은 목소리> 3부작 완결편인 <숨결>은 ‘앎의 의지’와 ‘알림의 의지’가 조화롭게 맞닿은 다큐멘터리다. <낮은 목소리>엔 앎의 의지가 앞섰고 <낮은 목소리2>엔 알림의 의지가 카메라를 장악했다면, <숨결>에서는 두 의지가 합의를 이루어 박제된 역사를 망각의 유령으로부터 풀어놓는다. 그것이 역사의 복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짓밟힌 채 질뻔했던 들꽃들이 이름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2편이 ‘나눔의 집’ 언저리를 맴돌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을 중심에 놓았던 것과는 달리 <숨결>은 그들의 과거를 채록하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1,2편의 등장인물이 비슷했던 것과는 달리 <숨결>에는 겹치는 인물이 거의 없다. <숨결>과 전편들을 연결하는 인물은 이용수 할머니인데, 흥미로운 건 이 할머니가 인터뷰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는 사실이다. 이미 자기의 존재를 드러냈던 이용수 할머니는 감독 대신 다른 할머니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몇살에 간노.” “잘 기억도 안 난다.” 하는 식이다. 61년 만에 고향을 찾은 김분선과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장난을 치면서 나즈막히 수다를 떨 듯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속에서 잊혀진, 아니 잊기를 강요당했던 역사가 제 얼굴을 내민다. 이로써 할머니들은 스스로 그들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반면 후반부에서는 감독이 나서서 할머니들의 증언을 주워섬긴다. 이들의 증언은 극도의 회한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 자기의 이름조차 잃어버렸다던 심달연 할머니의 고백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김윤심 할머니 얘기에 이르러 제작진은 기막힌 진실을 길어올린다. 그와 청각장애자인 딸 사이에 숨겨진 눈물겨운 비밀이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밝혀지는 거다. 오래 기다린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명장면이다. 98년 7월 첫 촬영을 시작한 <숨결>은 지난해 9월 완성되었으며, 지난해 일본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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