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트>로 동성애 문제를 다소 논쟁적으로 다루었던 여성 감독 안토니아 버드가 일급 범죄자에게 눈을 돌렸다. 당연히 좀도둑들을 다룬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영화 속에는 주인공 레이가 꿈꾸듯 상상하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시민들이 경찰 앞에서 시위하는 대목들이다. 레이가 놓인 현실 공간도 여러 문제로 데모중이다. 그는 위기에 처하자 석탄사용 반대시위 현장에 있는 어머니에게 찾아간다. 결국 세상에 대한 분노와 폭력이 레이를 범죄자로 만든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충고하듯 한마디 던진다. “네가 무슨 로빈후드라도 되는 줄 아니?” 장르적 완성도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레이 역은 <프리스트>에서 인연을 맺은 로버트 칼라일이 맡았다. 그는 <트레인스포팅>에서 야비한 갱 역할을, <풀몬티>에서는 스트립쇼를 벌이는 따뜻한 아버지를, <칼라송>에서는 낭만주의적인 혁명가를 열연한 바 있는 영국의 명배우다. 이 작품에서도 지적이면서 분노를 간직한 비범한 범죄 두목 레이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이 영화가 흥미롭다면 몫의 절반은 그에게 있다. 문제는 안토니아 버드 감독의 연출 의도다. “갱스터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란 없다. 사람들은 단지 못본 척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 탓인지 돈 때문에 배반하는 동료의 행위도, 경찰에 대한 이유있는 저항도, 연인과의 사랑도 지극히 상식적이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숨은 진실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레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안개낀 도시를 떠나는 이유는 찾을 수 없다. 그의 분노의 총구는 세상을 향해서도, 자신을 향해서도 제대로 겨누어지지 않았다. 아니면, 이 무정부주의적 허무감이 ‘갱스터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라는 뜻일까. 이제 총구는 관객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