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낙원상가 꼭대기에 문을 연 예술영화전용관 필름포럼(구 허리우드극장)에서 <씨네21> 10주년 기념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3개관 중 중앙에는 필름포럼 개관영화제, 오른쪽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씨네필의 향연’, 그리고 왼쪽에 자리한 470석의 레드관에서 <씨네21> 10주년 기념영화제가 상영되는 중. 나루세 미키오의 유작 <흩어진 구름>이 상영될 시간.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지난해에 발표했던 김종관 감독이 표표히 걸어온다. 김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10주년을 맞은 <씨네21>이 “앞으로도 꾸준하길 바란다”고 담백한 축하인사를 남겼다. 그는 “어제는 <아비정전>을 봤다”며 극장 안으로 사라졌다. 머리를 맞대고 <씨네21>을 살피던 신현주(31)씨는 “이런 영화제가 지속되었으면 한다. 현실적으로 입장권 가격이 인상되어도 보러 올 것”이라고 격려했고, 동행한 이석준(27)씨는 “내가 정기구독을 할 때는 이런 행사가 왜 없었나”라고 농담을 던지며 “요즘은 가판에서만 사는데 영화제라고 해서 왔다”며 소감을 밝혔다. 극장에 들어서자, 이연호 <키노> 전 편집장의 <흩어진 구름>에 대한 작품 설명이 한창이다. 아시아영화 중 인기작은 <아비정전>과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한국영화 베스트10’에선 감독과 관객의 대면이 가장 즐거운 풍경을 연출했다. 이창동 감독은 “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내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그 표현을 썼다. 배태곤(문성근)이 막동이(한석규)에게 그렇게 묻는데 그 정도 나이 먹은 사람한테는 그런 말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 그런데 그 대목을 가족이 온전하게 가게를 차려 먹고살기를 바라는 한 청년의 꿈이라고 관객이 해석하기도 해서 약간 당황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내 꿈이 무엇이다’라고 답하는 일은 어렵다. 그것은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있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40여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40대의 한 여성관객은 “이 질문을 안 하면 집에 가서 잠을 못 잘 것 같다”며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질문하기도. 이 감독은 “너무 아름다워 울 수도, 닥쳐올 사건을 예감해서 흘리는 눈물일 수도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장준환 감독은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 “개봉은 아직 안 잡혔다”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긴 뒤, “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좀더 강하고 한발 나아가는 영화를 원하고, 산업쪽에서는 봉준호 감독처럼 큰 히트를 내기를 바라는 것 같아 둘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군대 있을 때 개봉해서 이날 처음 <지구를 지켜라!>를 봤다는 남자관객은 강 사장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했다. 장 감독은 “강 사장은 처음에는 창조자 입장에서 피조물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병구의 삶을 들여다본 뒤 병구가 실험대상이 아닌 인격이라는 느낌을 얻고 인물이 변해간다”고 설명했다. 환호와 비명이 터져나온 장준환 감독과의 대화도 40여분간 진행되었다. 영화제는 오는 5월5일 밤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