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2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가 열렸다. ‘환경영화’라는 이름 아래 때론 낯익고 때론 낯선 다양한 영화들이 운집했다. 필름을 환경운동의 수단으로 채택한 ‘계몽영화’들도 있었지만, 그 자체로 뛰어난 명품인 저강도의 ‘환경영화’들도 눈에 띄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헤비급 영화제와도 다른, 개봉관에 간판을 올리는 상업영화들과도 다른, 조금은 특별한 영화들의 맛을 시식해 보인다.
우도의 힘 - 송일곤 감독의 <깃>
이 영화는 공해나 수질오염 문제를 다루지도, 환경운동가가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올려졌다. 장진 감독의 <소나기는 그쳤나요>, 이영재 감독의 <뫼비우스의 띠-생각의 속도>와 함께 환경재단이 ‘주문제작’한 옴니버스 시리즈 3편 가운데 하나다. 굳이 장르를 붙이자면 <깃>은 멜로영화다.
영화감독인 한 남자가 우도라는 섬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겪는 어떤 마음의 파동을 그렸다. 이 영화를 이끄는 주인공은 화자인 영화감독도, 상대역인 모텔 주인아가씨도 아닌, 우도라는 섬 자체다. 스크린은 주연배우 얼굴보다 더 자주 우도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햇볕이 쨍 났다가 잿빛 하늘이 되었다가 바람이 몹시 불다가 폭풍우가 휘몰아치다가 성난 파도의 습격을 받기도 하는 이 섬의 변화무쌍한 표정은 관객의 심금을 건들며 하이소프라노의 아리아가 되었다가 물결 타고 흐르는 왈츠가 되었다가 광란의 랩소디가 되기도 한다. ‘섬처녀’인 주인공 여자는 우도라는 섬의 성질을 구현하는 페르소나다. 맑고 싱싱한 것이 천연 그대로다. 십년 뒤 우도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 옛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건, 풀리지 않는 시나리오 작업의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려고 이곳에 왔건, 그 누구라도 우도 같은 섬에서 우도 같은 여자와 며칠을 지내다보면 속세의 질서가 기분 좋게 어긋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도는 제주도 성산포에서 건너다 보이는 작은 섬이다. 이 섬엔 수국의 군락지가 있고 국내에서 하나뿐인 산호해변이 있다. <인어공주>라는 영화를 봤더니 이 섬 어느 곳엔 병을 낫게 하는 신비의 바닷물도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우도는 이질적이고도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강원도의 힘과 쌍벽을 이루는 우도의 힘이랄까.
마지막 유목민 -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의 <우르가>
우아한 레이스 뒤에서 면도날이 튀어나오듯 섬뜩한 이미지로 스탈린 체제의 출현을 그린 <위선의 태양>(1994)에 매료됐던 사람이라면, 러시아식 블록버스터 <시베리아의 이발사>(1999)가 개봉했을 때 엄청 들떴다가 약간 실망을 했을 수도 있지만, 여하간 국내에는 공개되지 않은 그의 필모그래피의 나머지 부분이 궁금해질 것이다. 환경영화제에서 미할코프의 91년작 <우르가>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조용히 노래 불렀다. “나는 보았네.”습도와 온도 조절이 잘 안 되는 러시아의 어느 창고에서 13년을 묵었는지 스크린에 이따금 비가 내리고 심지어 번개가 치는 일도 있었지만 이 마술적인 영화의 기(氣)를 누르기엔 턱도 없었다. 뱀처럼 구불구불 강이 흐르고 사방을 둘러봐도 집 한채 보이지 않는 몽골의 대초원에 이동식 천막 파오를 짓고 사는 일가족 이야기다. 현대문명은 60마일(약 100km) 떨어진 도시까지 들어와 있고, 이들 가족은 양을 치고 말을 타면서 누대의 조상들처럼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다. ‘우르가’는, 깃발이 매달린 기다란 장대를 뜻하는데, 대개 말이나 양떼를 부릴 때 사용하지만 가끔 남녀가 수풀 속에서 정사를 할 때 접근하지 말라는 표시로 꽂아둔다. 아이 셋과 부부와 노모까지 여섯 식구가 밥 짓고 먹고 놀고 잠도 자는 원룸 천막은 성욕 같은 건 끼어들 틈도 없다.
어느 날 포장도로 건설공사장으로 가던 중년의 러시아인 노동자가 트럭을 몰고 초원의 흙길을 가로질러 가면서 깜빡 졸다가 개울에 처박히는 바람에 졸지에 이 몽골인 가족의 손님이 된다. 이쯤에서 손님과 주인 여자 사이의 섬싱을 예측한다면(나 역시 그랬지만) 상업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여기는 환경영화제이고 미할코프는 관습 따라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러시아 남자의 등에 그려진 문신이다. 그가 이 집에 온 첫날 웃통을 훌렁 벗었을 때 등에 온통 어지럽게 그려진 문신을 보고 서너살짜리 사내아이가 입을 쩍 벌린다. “누나. 저것 좀 봐. 등에 책처럼 글씨가 쓰여 있어.” 그는 군대생활 할 때 객기로 문신을 새겼다고 해명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문신은 <만주의 밤>이라는 러시아 노래의 악보다. 애잔한 왈츠곡인데, 그에겐 전쟁 때 죽은 할아버지와 우울한 가족사의 기억이 스며 있는 노래다. 나이트클럽에서 이 남자가 윗도리를 벗자 밴드 연주자들이 그 등 뒤에 모여 연주를 하며 홀의 손님들은 이 왈츠에 맞춰 춤을 춘다. 몽골인 일가에서 일곱살쯤 된 딸은 자기 몸통의 세배는 되는 아코디언을 안고서 귀신 같은 솜씨로 연주하는데, 나중에 이 딸도 러시아 남자 등의 악보를 보면서 신나게 아코디언을 친다.
엔딩타이틀이 오르기 직전, 이 초원에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커다란 굴뚝이 세워지고 어디선가 끊임없이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몽골인 남자와 아내가 벌판에 우르가를 꽂아놓고 만든 네 번째 아이가 어른이 된 다음의 일이다. 이 에필로그는, 이미 손색없이 훌륭한 텍스트에 붙여놓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큰 상관없을, 감독 나름의 주석이다.
나무에 관한 명상 - 빅토르 에리스 감독의 <멤브리요의 해>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는 ‘나무’를 테마로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쯤에 있는 스페인영화 <멤브리요의 해>는 그중 하나다.노년의 화가 안토니오 로페즈는 자기 집 뒤뜰에 있는 마르멜로(모과)나무를 그린다. 가을이면 노랗고 탐스런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 채 햇살을 받아 화사하게 빛나는데 그는 이 가을철의 마르멜로나무에 매혹을 느낀다. 그는 10월 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나무가 있는 공간을 모눈종이처럼 잘게 분할해서 그대로 화폭에 옮겨내려 한다. 하지만 하늘은 변덕을 부리고 똑같은 햇살을 만나는 건 하루에 몇 시간 되지 않는다. 11월로 접어들고 캔버스가 절반쯤 마르멜로나무로 채워졌을 때 그는 캔버스를 창고에 치워버린다. 무거운 열매를 매단 나뭇가지들이 점점 처지면서 처음과는 너무 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새 캔버스를 갖다놓고 데생부터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역시 미완의 상태로 창고로 향한다. 그는 또다시 새 캔버스를 이젤 위에 놓는다. 12월이 되어 쭈글쭈글해진 열매들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지고 이파리들이 단풍 들 때 그는 여전히 미완성인 캔버스와 이젤을 들고 뒷마당에서 철수한다. “그림을 뒀다가 내년에 완성하면 되지 않겠냐”는 친지의 말에 그는 “내년엔 나무가 영 다를 것”이라고 일축한다.
러닝타임 2시간19분 가운데 2시간쯤이 이 화가가 나무 앞에서 똑같은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다. 잠시 졸고 깨어나도 화가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림엔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다면 여러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후딱후딱 그려치울 수도 있고 사진을 찍어다 두고 방 안에서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노년의 화가는 탐스럽게 열매 맺는 젊은 마르멜로나무와 연애를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업, 아기사슴 밤비와 고질라의 두 얼굴 - 모건 스펄록 감독의 <슈퍼 사이즈 미>, 마크 아흐바·제니퍼 에보트 감독의 <기업>
<슈퍼 사이즈 미><기업>(왼쪽부터)
<슈퍼 사이즈 미>는 잘 알려진 대로 감독이 자신을 모르모트 삼아 맥도널드에 도전해서 마이클 무어에 이어 ‘앙가주망’ 코믹 다큐의 히트작이 되었다. 14살에 147cm 117kg, 19살에 168cm 122kg의 두 미국 소녀가 패스트푸드 업체들을 고소했고 법원은 패스트푸드와 비만이 직접 관계있다는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스펄록 감독은 ‘근거’를 제출하기 위해 한달간의 ‘맥도널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원칙은, 하루 세끼 꼬박 맥도널드 음식을 사먹으며 맥도널드에서 안 파는 건 먹지 않고 점원이 “슈퍼사이즈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예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맥도널드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3일째 ‘슈퍼사이즈’가 걸렸을 때 그는 슈퍼사이즈 햄버거와 슈퍼사이즈 코카콜라를 먹다가 위장의 내용물을 다 올려버린다. 한달 뒤 체중은 12kg 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상승했으며 심장이상을 겪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 국가는 다 못 불러도 맥도널드 CM송은 줄줄 욀 정도로 이미 패스트푸드는 개개인의 선택을 넘어 생활환경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오늘은 아기사슴 밤비였다가 내일은 고질라가 되는” 기업들의 생태를 보고한다. 노동자 인건비가 제품가격의 0.03%에 불과한 나이키의 원가계산표도 공개된다. 14달러99센트짜리 캐시리 핸드백을 만드는 중국 공장의 노동자 급료는 시간당 3센트다. IMF가 나치독일 수용소에 포로색인용 펀치카드 시스템을 제공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거대 기업을 비판하는 내 영화를 거대 영화사가 배급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들로선 순전히 수익이 남으니까. 나는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탐욕이라는 약점을. 기업인은 돈 벌게 해준다면 자기 목에 밧줄도 건다는 말이 있다. 내가 그 밧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