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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소영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인터뷰

“영화인이라면 자신의 관점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14일, 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심사위원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타이의 영화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한국의 영화학자 김소영 교수. 허우샤오시엔을 좋아하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카페 뤼미에르>를 보느라 하루 미뤄 성사된 인터뷰지만, 친근한 웃음속에서 이뤄진 편안한 만남이었다. 아마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를 진지하게 소개하는 첫 번째 문답일 것이다.

<아이언 푸씨의 모험>(The Adventure of Iron Pussy)은 2004년 베를린과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마이클 쇼와나사이의 비디오 연작의 제목이다. 한때 남자였으나 이제는 방콕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로 통하는 아이언 푸씨가 오늘도 매매춘 여성들을 괴롭히는 범죄자들 소탕으로 밤을 밝힌다는 영화다. 이제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타이 카로 스튜디오의 구태의연한 영웅담을 퀴어 모험 액션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제목은 한글제목으로 번역하면 “강철 여성성기의 모험” 정도가 될 것이다(물론 더 나은 번역을 모르는 바 아니나 혹시 내가 어디 나가 실수할까 걱정하는 학생들을 생각해 참는다).

70년생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4편의 장편영화의 서사는 위 제목처럼 어디쯤에선가 황당무계해진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도시와 열대림에 종횡무진 출몰한다. 중국 5세대의 등장이 중국 오지의 황토나 붉은 수수밭과 같은 풍경과 더불어 왔다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2개의 정글을 오간다. 도시의 콘크리트 정글과 열대 정글이다. 그리하여 그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손가락질로부터 가볍게 빠져나갈 뿐 아니라 전설과 신화와 해충과 욕망이 버글대는 열대의 정글을 자신의 심리적, 사회적 무대로 다시 창안해낸다. <친애하는 당신>(Blissfully Yours)에서 미얀마와 타이 접경지대의 열대림과 강은 초현실적 무대가 되어준다. 버마에서 온 이주노동자 남자와 타이의 여자 노동자는 사랑을 나누고 오수를 즐기고 열매를 따먹는다. 그러나 정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신체의 수상 부유, 남자의 병든 붉은 피부는 이런 열대의 행복의 순간을 시름시름 폭풍전야의 전조로 느끼게 만든다. 마침내, 이 불길한 전조는 2004년 <열대병>에 오면 사건으로 바뀐다. 사라진 연인을 찾아 정글을 헤매던 게이 주인공이 이제 바로 그 사라진 연인의 몸에 깃든 귀신 호랑이의 추적을 받을 때, 우리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2개의 정글을 자신의 영화에 새겨넣었을 뿐만 아니라, 타이의 민담과 퀴어영화의 정념 그리고 타이 호러영화 장르를 전유한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구나. 한편으로 파스빈더와 차이밍량의 세계에 접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폴 샤리츠, 브루스 베일리와 같은 미국의 실험영화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미지인 타이의 B급영화로 뻗어가고 있는 그의 영화적 정글은 <열대병> 속 호랑이의 인광처럼 번쩍이고 오싹하다. 인광은 물질을 자극하여 들뜨게 했을 때 그 들뜸이 중지된 뒤 상당히 오랜 시간 발광하는 현상이다. 영화의 쾌락은 바로 인광이다.

김소영 어떻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하 위라세타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다니면서 1994년에 16mm영화로 시작했다. 시카고 가기 전에는 필름을 만져본 적도 없었다. 나중에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두 가지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내가 타이로 돌아갔을 때, 영화를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제작을 뒷받침하는 시설도 없었고 펀딩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비디오로 옮겨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다. 그뒤 펀딩을 받아 장편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김소영 어떤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위라세타쿤 마이클 스노와 피터 쿠벨카, 폴 샤리츠.

김소영 <친애하는 당신>을 보면 영화가 감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인을 캐스팅한 것도 마찬가지 같은데, 언어보다는 감각을 우선시한다.

위라세타쿤 비평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면은 참 좋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영화를 해석해준다. (웃음) 나는 내 경험과 세트의 분위기에 따라 영화를 만든다. 의도적이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찍고 나면 비평가들은 나름의 해석을 하느라 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웃음) 나는 촬영 순간의 느낌에 집중해서 영화를 찍는다. 약간 편집증적인 데가 있어서 무엇이든 언제나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 사람들을, 동물들을 세세하게 보고 항상 필기를 해둔다. 나는 디테일에 집착한다. 주인공이 소변을 보면서 성기를 만지는 장면도 그런 디테일 중 하나다. 하지만 상징주의적인 측면에서 그 장면이 가지는 의미는 촬영 당시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김소영 <친애하는 당신>의 타이틀은 영화가 절반이나 지난 뒤에 나오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의 기대를 뒤집는다. 시간에 관한 실험을 하려는 당신의 집착에서 나온 시도인가.

위라세타쿤 타이틀 시퀀스는 미리 계획한 게 아니라 편집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튀어나온 생각이다. 그게 옳은 것 같아 보였고, ‘당신이 보는 것은 영화’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할까. 관객이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하다가 갑자기 평면적인 화면이 튀어나오면,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김소영 <열대병>에 대해 묻겠다. 병사와 소년은 무척 긴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었는데, 정글 속으로 정작 소년이 사라지자 병사는 별 감정적 영향을 받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정글장면은 병사의 마음 여행인 것 같아 보였다.

위라세타쿤 칸영화제에 어떻게 시놉시스를 제출할 것인가 고민했었다. <열대병>이 두개의 이야기라는 것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영화에는 따로 타이틀까지 있지 않았나. 두 영화는 마지막에 통합되지만 완전히 다른 영화다. 첫 번째 부분은 다큐에 가깝고, 두 번째 부분은 좀더 초자연적이다. 혹 첫 이야기는 병사가 회상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기자도 있었다. 관계의 좋은 측면만 기억하고자 하는 병사의 판타지가 아니냐고. <열대병>은 ‘응시’에 관한 영화이다. 관객을 바라보는 남자의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둠이 찾아오면 보이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눈이 머는 것 같은 화면이 된다. 시각보다 감각이 우선한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밀림으로의 여행은 마음으로의 여행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1시간이나 어둠 속에서 촬영을 하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음악도 넣고 빛도 좀 넣어야 하지 않을까 했었다.

김소영 앤디 워홀이라니까. (웃음) 정말 대담했다. 한국에 몇번 와본 것으로 아는데, 한국의 관객이나 젊은 영화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위라세타쿤 관객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했다. 타이에서는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영화를 찍을 때, 나는 내가 그때 느끼는 것을 많이 반영한다. <열대병>을 찍을 때, 나는 가족, 사랑, 자금문제 등 모든 문제에 대해 우울했고, 영화의 모든 것이 다운된 분위기로 표현했다. 그래서 <열대병>을 보는 당신의 시각과 나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열대병>의 대화나 로케이션은 모두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다큐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일기 같다. 10년 전을 돌이켜보는 나의 기분을 반영하는. 영화인이라면 자신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 관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관점은 무엇인가? 젊은 영화감독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관점이 아닐까. 나처럼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파이낸싱 측면에서도 희생이 필요한 게 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는 타이에서 다른 일들을 하기 때문에 운이 좋은 편이다. 나는 디자인 컨설팅, 뮤직비디오 제작 같은 일들도 한다. 처음에는 눈치를 봐야 할 일도 많지만 일단 크게 성공을 거두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 않나. 그때는 치사하게 굴어도 된다. 이런 게 해피엔딩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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