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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 돌아온 배창호 감독
2004-09-06

광주영화제 폐막작으로 관객에게 인사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 담았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중에서) 스스로의 설명처럼 배창호(51) 감독은 남들이 덜 밟은 길로 자주 들어서곤 했다. 80년 조감독으로 영화판에 뛰어들기 전 그의 직업은 아프리카 케냐의 종합상사 해외 주재원. 이후 흥행감독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배감독은 86년 <황진이>부터 제작방식과 형식, 주제 면에서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갔다.

94년 <젊은 남자>로 대중영화로 복귀한 뒤 만든 <러브스토리>(96년)나 <>(99년)도 당시의 주된 흐름과 달리 독립영화 시스템에서 만든 영화. 그리고 40여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흑수선>(2001년) 이후 그는 또다시 4억여원으로 독립영화 <길>을 완성했다. 그가 직접 주연까지 맡은 영화 <길>은 전국을 떠돌며 생활하는 대장장이 태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이 교수로 몸담고 있는 건국대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시사회를 통해 상영된 바 있는 <길>은 11일까지 열리는 제4회 광주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관객을 만난다.

영화제를 앞두고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배창호 감독은 "스스로 겸손하게 낮춰서 시작한 영화"라며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길>이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지만 그는 자신이 대중영화와 결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10만명이 드는 영화도 꾸준히 제작되고 제작비를 거둬들이는 시스템이 확립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만들고 싶은 것들이 항상 있으니 그때그때 토해내는 것일 뿐 대중영화와 결별한 것은 아니다"고 얘기했다.

국내에서 배급사가 잡히기 전에 일본에 먼저 수출이 됐다.

반갑고 고맙게 생각한다. (일본 수입사가) 예술을 보는 눈이 신선해서 그런 것 같다. <집으로…>를 수입했던 트윈사가 1천만원대의 가격에 구입했다. 국내 배급사는 아직 접촉 중이다. 10억원 정도의 수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길>이라는 제목을 원래 좋아하고 로드무비도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예전부터 나중에 감독되면 <길>을 제목으로 한 영화를 꼭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래사냥>이나 <안녕하세요 하나님>도 로드무비의 형식의 영화다. (내가) 센티멘털리스트 아닌가. 인생을 나그네로 보는 시선이 좋다. 사라져가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대장장이나 장돌뱅이 같은 직업도 그렇고 주막이나 여인숙, 이발소도 그렇다. 길만 해도 흙길, 황톳길, 둑길, 오솔길, 산길 등 얼마나 많은 길들이 없어지고 있나. 영화는 이런 것들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직접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제작비 때문인가.

원래는 기성배우를 쓰려고 했지만 어긋났다. 물론 그전부터 대안으로 직접 연기하는 것도 고려를 하기는 했지만. 배우로서 (나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제작사에 선택하라고 했다. 감독이 연기를 한다는 선입관을 빼면 (직접 연기하는 게) 장점도 많이 있다.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를 배우에게 설명하려는 노력도 필요가 없어지고 캐릭터의 진정성을 잘 표현할 수 있다.

연기는 이번이 세번째인가.

조감독 시절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에 출연한 것까지 하면 네번째다. 감독이 되기 전에 명계남씨나 문성근씨와 함께 연극을 하기도 했다. <개그맨>에서는 캐릭터 자체가 나와 잘 맞았다. 머리도 좀 벗겨지고 배도 나왔으니…. 이후에는 <러브스토리>에 집사람과 함께 출연했다.

예산은 얼마 정도가 들었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한 4억원쯤 들어갔나? 그때그때 돈이 되는 대로 찍었다. 제작비가 적게 들어갔지만 중급 규모의 영화쯤은 된다. 스태프들이나 연기자들이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제작비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겸손하게 낮춰서 시작한 영화지만 절대 쉬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한 것은 아니다. 굉장히 힘들게 찍었다.

광주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영화가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촬영이 됐고 또 목포에서 시사회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관객 반응이 좋았고 그 분위기가 퍼져나간 끝에 폐막작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

올해 영화제에 볼 만한 영화가 많다. 특히 프린트로 보기 힘든 서부영화들을 와이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대가 된다. 10살된 딸이 광주영화제 홍보대사인 문근영 양에게 관심이 많다. 폐막식 때 딸과 같이 광주에 가서 사인도 받을 생각이다.

지나간 일이지만 사실 전작 <흑수선>은 흥행에서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관객에게 서운한 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

전국 140만 명 정도 들었으니 내 영화 중에서는 사실 가장 많이 본 셈이다. 어느 시대나 관객은 항상 중요하다. 그리스 시대나 르네상스 때도 그 시대에 위대한 감시관이 있어서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겠나. 매스컴도 관객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요즘 관객은 관찰력은 뛰어나지만 그만큼 떨어진게 이해력과 미적 수용력인 것 같다. 그러니 디테일에서의 단점이 눈에 띄었을 수도 있겠다.

젊은 감독들 둘 중 하나는 배감독의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하더라. 최근 나온 한국영화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부적인 묘사력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다. 자기 것을 지키는 능력도 좋고. 개인적으로 정석대로 가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젊은 감독들은 장르를 버무려 왜곡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요즘 젊은 감독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때는 정말 편하게 만들었다. 한 편 성공하면 두세 편은 편하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요즘은 스타나 자본을 끌어들이는게 사람을 지치게 한다. <남극일기>를 준비하고 있는 임필성이라는 친구한테 내가 그랬다. 당신 영화 준비하는 5년간 나는 <길>까지 세 편을 만들었다고.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고 할 얘기가 있으면 무조건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제작비가 1억이 됐건 2억이 됐건 투자자도 찾아나서고 배우도 적극적으로 섭외하고….

차기작으로는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나.

아프리카에 있는 한국인 의사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케냐에서 근무할 때부터 20년 넘게 생각했던 작품으로 대중영화가 될 것이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