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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와 한 남자의 은밀하고 발칙한 욕망론, <누구나 비밀은 있다>
박은영 2004-07-27

동생의 애인에게 필 꽂힌 언니들, 그와의 비밀을 가슴에 품고 비로소 행복해지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발칙한 영화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지지고 볶다가 결국 인연으로 맺어지는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이 이 영화에선 여러 번 틀어진다. 우선 여자 셋에 남자가 하나다. 여자 셋은 심지어 우애 좋은 친자매간이다. 그들 모두가 한 남자와 은밀하게 연애를 한다. 그러다 결국 그중 누구 하나와 맺어질까? 글쎄다. “세상에 한 가지 사랑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남자는 말한다. 여자들도 그 말에 공감한다. 동방예의지국, 많이 컸다, 싶다.

그 남자 수현(이병헌)은 <왓 위민 원트>의 멜 깁슨처럼 여자의 속마음을 훤히 읽어낸다. 한술 더 떠, 여자의 억눌린 욕망과 무의식까지 흔들어 깨운다. ‘사랑은 쇼핑’이라고 생각하는 자유분방한 셋째 미영(김효진)에겐 순진한 듯 무심한 듯 다가가, 밀고당기는 기술로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아버린다. 경험으로 알아야 할 세상사의 이모저모를 책에서 구하는 학구파 둘째 선영(최지우)에겐 인문학적 교양을 과시해 접근한 뒤에 ‘남 몰래 흘리는 눈물’로 모성에 결정타를 날린다. 유부녀인 첫째 진영(추상미)이라고 의연할 수는 없다. “가족끼리의 섹스는 근친상간”이라고 주장하는 무덤덤한 남편의 그늘에서 자기가 ‘여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고 살던 그는 ‘섹시하다’거나 ‘목선이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수현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는 걸 느낀다.

수현의 복잡한 연애 행각은 <라쇼몽>식의 오버랩을 통해 드러난다. 영화의 초반, 막내 미영과 수현은 연인으로 맺어지고 부부가 되기로 한다. 동생의 결혼 발표 자리에서 선영은 울음을 터뜨리고, 진영은 과장된 웃음을 짓는다. 이때부터 관객이 알지 못한 선영과 진영의 이야기가 연달아 소개된다. 미영과 수현뿐이었던 것 같은 시공간 한켠에 선영이 있었고, 또 선영과 수현만이 존재했던 것 같은 시공간 한켠에서 진영과 수현의 밀애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세 자매와 남동생은 거의 동시에 수현과 얽히게 된 사연을 1인칭 시점에서, 각자가 보고 듣고 느낀 만큼 보여준다. 수현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갈수록 그의 실체와 본심은 점점 알 수 없게 돼버린다. 수현은 끝내 입을 열지 않고 수수께끼 같은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다. 그는 완전 범죄의 스릴을 즐기는 ‘바람둥이’일까, 아님 세상 모든 여성을 사랑하겠다는 선의를 가진 ‘박애주의자’일까, 그것도 아님 사랑의 욕망과 기술을 전파하는 ‘사랑의 천사’일까. 그를 어떤 캐릭터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랑 놀던 날라리고, 신데렐라는 가진 건 쥐뿔도 없는 주제에 몰래 파티 갔다가 왕자 만난 거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멀쩡한 집 놔두고 공연히 숲에서 자다가 왕자 만난 거잖아.” 백마 탄 왕자 기다리는 건 미친 짓이라는 미영의 전복적인 발언이 예고하듯, 영화는 여자들의 내숭 혹은 억눌린 욕망을 흔들어 보인다. 행동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 특히 남자 경험이 없던 선영의 ‘학습과 실천, 그리고 응용’ 과정에서는 ‘여성판 <몽정기>’라 부를 만한 성적 상상력이 두드러지게 묘사된다. 남동생의 도색잡지와 포르노를 밤새 보고나서 세상 모든 먹을거리가 음란해 보여 식사도 못하던 그는 어설픈 사극 톤으로 “불 끄세요”, “힘 빼세요” 하며 잠자리를 주도하는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영국 독립영화 <어바웃 아담>을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원작의 기본 설정과 많은 장면들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국민 정서’를 의식한 듯 코미디와 판타지 색채를 가미해놓았다. 이를 테면 세 자매의 캐릭터를 타입화해 나열하면서 다소 과장된 듯한 리액션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나, 걸어다니는 ‘연애 바이블’ 수현을 너무 완벽하고 너무 노련해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인물로 묘사한 것이 그런 증거들. 폭풍 같은 연애를 경험한 세 자매에게 굳이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것도 일말의 불쾌함이나 불편함을 남기지 않으려는 배려 혹은 강박으로 비친다. 그런 장치들 덕에 ‘비윤리적 소재’를 접하는 부담은 훨씬 덜었지만, 인물들간의 밸런스가 맞지 않게 돼버린 듯한 느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내에서 개봉되기도 전에 일본에 고가로 수출될 수 있었던 배경에 주연배우들의 이름값이 크게 작용했듯이 배우들의 변신과 앙상블이 돋보이는 영화다.

:: 원작 <어바웃 아담>은 어떤 영화인가

아담을 추억하는 네 남매들

원작영화 <어바웃 아담>(2001)의 배경은 흑맥주로 유명한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아름다운 세 자매 앞에 ‘아담’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의 매력적인 남자가 나타난다. 자유분방한 셋째 루시에겐 “먼저 유혹해오지 않은 남자라서”, 고지식한 둘째 로라에겐 “뭔가 아픔이 있는 남자 같아서”, 권태로운 첫째 앨리스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라서”, 자신감 없는 남동생에겐 “물건을 서게 한 남자라서” 아담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세 자매와 남동생이 아담을 추억하는 ‘한마디’로 각자의 챕터를 여는 식의 구성이다. 세 자매의 캐릭터가 명확한 ‘타입’으로 나뉘거나 대별되지 않고, 아담과의 관계에서 훨씬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 그리고 은근슬쩍 아담의 거짓말을 드러내 그의 위선을 고발하는 점 등이 한국판과 다르다. 영국 개봉 당시 ‘세 자매를 동시에 유혹하는 남자’라는 설정이 비윤리적이라는 질타와 함께, ‘왜 엄마는 유혹하지 않느냐’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지만, 배우들의 매력이 돋보이고 만듦새가 뛰어난 독립영화로서 각종 독립영화제에서 화제를 몰고다녔고, 영국과 미국에서 상영관을 늘려가며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TV에서도 활동하는 제라드 스템브리지가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신비로운 남자 아담을 연기한 배우는 샤를리즈 테론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스튜어트 타운젠드. 마이클 윈터보텀의 런던 이야기 <원더랜드>에서 주목받았고, 알리야의 유작 <퀸 오브 뱀파이어>에 출연했으며, <젠틀맨 리그>에서 세월과 악행의 흔적을 초상화에 남길 뿐 그 자신은 늙지도 추해지지도 않는 도리언 그레이를 연기한 바 있다. <어바웃 아담>은 스튜어트 타운젠드에게 초현실적인 느낌의 ‘옴므 파탈’의 이미지를 심어준 결정적인 작품. 할리우드에서 <올모스트 훼이모스>로 유명해지기 전의 케이트 허드슨이 셋째딸 루시를, 프랜시스 오코너가 둘째딸 로라를 연기했다. 일부에 워킹 타이틀 영화로 보도됐으나, 영국 BBC사와 아일랜드 프로덕션의 공동제작 영화다. 태원엔터테인먼트는 <어바웃 아담>의 판권을 산 뒤에, 리메이크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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