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잔인하고 성급한 에밀(카렐 로든)과 영화감독을 꿈꾸는 올렉(올렉 타크타로프)은 출옥하자마자 옛 동료로부터 제몫의 돈을 챙기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온다. 에밀은 돈이 없다는 옛 공범 부부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불을 지르고 올렉은 그 광경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다. 범행 뒤 호텔에서 모든 이가 희생자를 자처하는 미국 TV토크쇼를 본 둘은 자신들의 살인현장을 계속 촬영하면 일부러 증거를 남긴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아 면죄부를 얻는 것은 물론, 방송사에 테이프를 팔아넘기고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에밀과 올렉 사건의 수사를 맡은 사람은 검거현장을 다루는 타블로이드 TV쇼 <톱 스토리>로 스타가 된 베테랑 형사 에디(로버트 드 니로)와 젊은 방화 수사관 조디(에드워드 번즈). 둘은 에밀과 올렉의 정체를 더듬으며 우정과 파트너십을 키워가지만 에밀과 올렉은 유명인 에디를 스너프필름의 다음 표적으로 삼는다.
Review
은 왠지 만만해(?) 보이는 간단한 제목과 딴판으로, 야심이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당돌한 영화다. 전작 (1996)에서 다수의 인물과 플롯 사이를 바삐 움직였던 존 허츠펠드 감독은 에서 더 넓은 그라운드를 주름잡는다. 은 형사버디무비인 동시에 <올리버 스톤의 킬러>를 연상시키는 가차없는 연쇄살인극이고, 피와 명성에 대한 식욕으로 침흘리는 미디어문화를 조롱한 풍자극이며, 이따금은 한없이 부드러운 드라마로 돌변하기도 한다. 영화는 잔가지 플롯들 사이를 지그재그의 잰걸음으로 움직여가고, 대결의 중심인 두 수사관과 두 범인을 빙 에워싼 꽤 많은 머릿수의 인물들은 당구공처럼 서로에게 부딪혀 튕겨져 나가면서 시시각각 흥미로운 궤적을 그린다. 예컨대 로버트 드 니로가 분한 에디는 처음에는 방송의 스포트라이트에 도취된 속물처럼 보이지만, 방화수사관 조디와 만나면서 현명한 프로페셔널의 면모를 비친다. 그런가 하면 언뜻 실리를 위한 ‘영업’처럼 보이던 에디와 TV리포터의 만남은 진짜배기 사랑으로 판명되면서 에디의 온화한 마음 안자락을 드러낸다. 존 허츠펠드 감독은 영화도 캐릭터도 쉼없이 운동하도록 자극을 멈추지 않는다. 이같은 감독의 조바심은, 형식적 야망과 그것을 성취하는 솜씨에서 을 많이 닮은 영화 <너스 베티>를 촬영한 장 이브 에스코피에의 카메라에 잘 반영됐다.
은 “앞으로는 모든 사람이 15분 안에 유명해질 수 있다”는 매스미디어시대에 대한 앤디 워홀의 예언에서 작명의 힌트를 얻었다. 동유럽에서 온 에밀과 올렉은 뉴욕에 발을 딛자마자 재빨리 적응한다.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사회, 유년기에 학대받은 경험이나 정신이상을 내세우면 감동의 눈물까지 뽑아내며 면책받을 수 있는 사회. 에밀과 올렉은 “우린 미쳤어! 으하하!”라고 어느 음료수 광고처럼 웃어대며 TV를 통해 파악한 미국사회의 우스꽝스러운 메커니즘을 착취하러 나선다. 급기야는 자기들이 팔아넘긴 스너프필름이 방송되는 플래넷 할리우드에 앉아 체포를 기다리는 배짱까지 부린다. <양들의 침묵>의 지하실 장면을 상기시키는 올렉의 비디오카메라 화면은, 단순함과 맹목성이 지능적 범죄보다 얼마나 더 진저리처지는 흉기인지 실감케 한다.
한편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 에드워드 번즈는 을 매우 볼 만한 형사영화로 완성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짝이 만나 애정에 가까운 우정을 발전시킨다는 스토리는 백년 묵은 공식 그대로다. 그러나 그 얼개 안을 메운 에피소드의 사실성은 범상치 않다. 수사과정의 디테일은 솔깃하고 행정부서 사이의 밥그릇 싸움은 생생하며 형사 직분에 대한 두 남자의 깊은 진심은 을 닳고닳은 중견형사와 순진한 루키의 전형적인 듀엣 이상의 무엇으로 격상시킨다. 액션장면에서도 리얼리티는 살아 있다. 시가전 시퀀스의 카메라 움직임은 요즘 영화답게 현란하지만 내용은 사뭇 색다르다. 차도에 뛰어들어 범인을 추격하던 형사들은 흔히 스크린에서 보던 바와는 달리 택시에 치어 다리를 절기도 하고 병으로 얼굴을 맞아 총을 뺏기는 망신도 당한다. 가장 ‘멋진’ 형사 드 니로도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누어지면 어린애처럼 솔직한 공포로 안면 근육을 실룩거린다.
시종 급격한 기어 변속으로 영화를 몰고 가는 에는 사실 구멍도 많다. 말이 안 되는 설정도 있고 그리스 비극의 ‘기계신’처럼 만사를 톱니바퀴 맞물리듯 해결해 치우는 결말 15분도 작위적이라는 인상이 짙다. 이제는 구문이 된 미디어 비판이라는 소재에서 신선한 결론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불을 끄려는 안간힘이 더 큰 불길을 일으키는 ‘설상가상’식 상황설정의 방화장면은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까워서 억지로 눌러담은 시퀀스가 아닌가 의심이 간다.
하지만 은 안주를 모르는 젊은 영화다. 이야기를 푸는 순서만 해도 밑그림을 그리고 넓은 면을 칠하고 세부로 들어가는 식이 아니라 옆구리부터 치고 들어와 천방지축 붓을 휘둘러댄다. 아마도 은 내용과 형식의 훌륭한 합일에 이른 수작이라기보다 종국에는 그런 수작을 만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간쯤 있을 법한 흥미진진한 미완의 영화라는 편이 옳다. 넘치는 에너지로 지느러미를 퍼덕거리며 관객을 기분좋은 ‘좌불안석’ 상태에 빠뜨리는. 그래서일까. 체감 상영시간은 15분까지는 아니더라도, 1시간 반 밖에 안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달콤한 로맨스에 젖은 이스트우드의 후예...배우 에드워드 번즈
카메라 뒤에만 서 있기에는 너무 멋진 남자? 에서 소방대 소속의 방화수사관 조디로 분한 에드워드 번즈(33)는 사랑에 대한 콤플렉스에 가위눌리는 아일랜드계 삼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선댄스 수상작 <맥밀런가의 형제들>을 비롯해 <그녀를 위하여> <치즈 케이크 블랙 커피> 등의 생각 많은 로맨틱코미디로 주목받아온 작가 겸 감독이다.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의 스탭으로 일하면서 받은 월급과 여가를 이용해 틈틈히 만든 첫 영화 <맥멀런가의 형제들>을 로버트 레드퍼드에게 보인 이후 행복하게 영화계로 적을 옮겼다. 스스로 나고 자란 뉴욕의 브루클린 풍경이 영화마다 빠지지 않는 것도 특징. 자신의 모든 연출작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한 배우인 그는 자존심과 망설임이 깃든 쉰 듯한 목소리, 수줍음을 권태로운 표정으로 감추려 애쓰는 눈빛이 트레이드 마크다. 애초 연기에 진지한 관심이 없었던 그는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자신의 영화의 제작비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배우 일을 수락했으나 톰 행크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보고 배울 수 있었던 <라이언 일병…>과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난 을 찍고 나서는 대가들로부터 얻은 레슨이 자기 영화에 큰 도움이 돼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모델 크리스티 털링턴의 피앙세이기도 한 그는 현재 형제인 브라이언과 함께 ‘아이리시 트윈즈’라는 프로덕션을 직접 경영하고 있으며 예의 1인3역을 맡은 신작 <뉴욕의 보도>를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