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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영화감독 최양일 인터뷰
2004-02-09

흥미로운 소재와 독특한 스타일로 일본 영화계에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재일교포 2세 감독 최양일(崔洋一ㆍ55)씨가 7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최 감독은 4일 내한해 신작 <피와 뼈>의 촬영장소 물색을 위해 강원도와 충청도를 둘러봤으며 3일부터 열리고 있는 자신의 회고전에도 참석해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모국에서 회고전을 마련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덧 내가 그런 나이가 됐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노인이 된 것 같아 괴로웠지요. 그래도 젊은 관객과 내 영화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눈 것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덕분에 과음했지요."

일본 도쿄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하고 영화계에 뛰어든 최양일 감독은 <감각의 제국>의 조감독으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게 연출 수업을 받는 등 10년 이상 현장 경험을 쌓은 뒤 83년 로 감독 데뷔했다.

그 뒤 <달은 어디 떠 있는가>, <개, 달리다>, <막스의 산>, <형무소 안에서>, <꽃의 아스카 조직>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언젠가 누군가 살해된다> 등 TV를 포함해 2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다음달 맹도견의 이야기를 담은 <퀴일>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이주하는 줄거리의 <피와 뼈>를 3월 말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피와 뼈>에는 일본의 인기 배우 겸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눈길을 끌고 있다.

"4일 내한해 강원도와 충청도 등을 둘러봤습니다. 한국에서 몇 장면을 촬영할 예정인데 한국 스태프들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오랜 친구이며 데뷔작인 `10층의 모기'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지요." 그는 조선(북한) 국적을 갖고 있다가 한국(남한)으로 바꿨다.

"93년 베를린 영화제에 참가한 뒤 한국을 방문하자 기자들이 국적 문제를 많이 물어보더라구요. 어느 정권을 지지하거나 사상적으로 전향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조선 국적으로는 살아가기가 다소 불편했을 뿐이지요. 평소에는 국적 문제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습니다. 재일교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3세 이후로는 신경조차 쓰지 않지요. 나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실력 없어요"라고 서툰 말로 털어놓아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는 "재일교포의 역사를 세 시간만 공부하면 중년을 넘긴 내가 한국말을 왜 못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며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재일교포라는 정체성 때문인지 아웃 사이더의 시선으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왔다. 변방과 식민의 역사를 오랫동안 간직한 오키나와가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

"한국에는 현재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아랍 출신까지 있지요. 한국이나 일본도 예전에는 이주노동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등장할 겁니다. 아마 내 예감으로는 사랑 이야기부터 시작되지 않을까요? 내가 모르는 젊은 감독들이 나설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마 김기덕 감독이 만든다면 러브 스토리는 안 만들어지겠지요."

흥행영화보다는 작품성 있는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까닭을 묻자 "나도 강제규 감독처럼 영화를 만들어 돈도 많이 벌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 뒤 "만들다 보면 항상 그런 영화가 나오는 까닭이 나도 궁금해 계속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아마 죽을 때까지도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1960년대 일본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이란 뜻의 영화운동)를 이끈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영화적으로 영향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잘라말했다.

"76년 <감각의 제국> 한 편을 같이 했지요. 그 뒤로는 3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영화 기술은 일반인도 3개월이면 익힐 수 있어요. 어떻게 찍느냐는 게 문제지요. 오시마로부터 배운 것은 술과 사람 사귀는 법인데 알고 보면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문화학교 서울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주최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는 최양일 회고전은 8일 오후 8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상영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최양일 감독은 8일 오전에 일본으로 돌아간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