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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버라구‥실제 즐거움과 괴로움일 뿐˝ <불어라 봄바람> 배우 김경범
사진 정진환권은주 2003-09-24

‘거 참, 어디서 봤더라….’ 당신이 <불어라 봄바람>을 봤다면 소설가 고선국(김승우)의 문하생 희구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의 얼굴이 가물가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혹시 <게임의 법칙> <박봉곤 가출사건> <억수탕> <> <오! 해피데이> <라이터를 켜라> <북경반점> 같은 영화의 비중 낮은 조연을 떠올리는 거라면 당신의 기억력은 놀라운 수준임에 틀림없다. 만약 <천일야화> <순풍 산부인과> 등 TV프로그램까지 기억한다면 가히 경이로운 경지라 할 만하다.

<불어라 봄바람>은 그렇게 우리의 뇌세포를 야금야금 파고들어온 얼굴을 김경범(32)이라는 이름과 매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배우생활 만 10년 만에 그의 이름을 알린 영화 속 희구는 성질 더러운 소설가의 온갖 잔심부름을 다 맡아야 하는 측은한 인물. 하지만 후반부에 가선 대반전을 통해 요란스런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히든카드’이기도 하다. “항준이 형, 아니 장 감독님에게 가장 고맙죠.”

이 말은 장항준 감독이 <불어라 봄바람>에서 그에게 딱 어울리는 역할을 준 데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다. 장 감독은 그에게 서울예대 연극과 2년 선배. 장 감독이 복학한 뒤 2학년 생활을 함께하며 둘은 굉장히 친하게 지냈단다. 그리고 졸업 몇년 뒤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던 김경범은 당시 SBS에서 옴니버스코미디 <천일야화>의 각본을 쓰던 장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여 단역을 연기했다. 대개의 경우, 대사가 없었고 초점 바깥의 인물이었지만 선배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는지, 그는 장 감독이 각본을 쓴 <순풍 산부인과> 등에서도 얼굴을 내비쳤다. <박봉곤 가출사건> <북경반점> <라이터를 켜라> 등 장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거나 연출한 영화에서도 김경범은 성실한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김경범이 <불어라 봄바람>에서 비중이 적지 않은 희구 역을 따낸 것은 장 감독의 ‘배려’ 덕택이 아니다. 소심하고 여성적인 분위기의 희구는 실제의 김경범과 너무 유사한 탓에 이를 잘 아는 장 감독이 그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의 코믹연기는 철저히 후천적인 것이다. “어떤 역할을 몇분 만에 빨아들이진 못하지만, 캐릭터에 계속 젖으려고 노력한다”는 연기방법론에 따라 그는 희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동화시켰다. “내 연기가 오버라고요? 나는 실제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표현한 건데….”

“이번 추석은 좀 이상한 느낌일 것 같네요.” 김경범의 이야기는 <불어라 봄바람> 덕에 10년 만에 온 가족 앞에서 체면을 세울 수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이 영화를 찍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어느새 눈꼬리에 붉은빛을 띤 김경범은 “아들의 연기생활이 못마땅한 듯 행동했지만, 실제론 누구보다 내 성공을 바랐던” 아버지가 이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 듯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김경범은 “열심히 사는 만큼 연기도 좋아진다고 확신한다”는 현답과 함께 특유의 쑥스런 웃음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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