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1978년감독 리처드 애튼버러출연 앤서니 홉킨스 EBS 8월2일(토) 밤 10시
배우 앤서니 홉킨스에겐 두개의 인생, 즉 <양들의 침묵>(1991) 이전과 이후가 있을지 모른다. <양들의 침묵> 이후 영화가 시리즈로 만들어지면서 그는 심리스릴러영화의 대표적인 배우로서 인식되고 있다. 덕분에 <남아있는 나날>(1994)이나 <닉슨>(1995)에 등장했던 그의 연기가 무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양들의 침묵> 이전에도 그는 스릴러영화에 출연했던 경력이 있다. 출연작은 <매직>이다. <매직>은 어느 복화술사의 깊숙한 내면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는 세상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면 움츠러들고 뒤로 몸을 숨긴다. 이럴 때 복화술사가 대처하는 법이 있다. ‘인형’을 대리자로 내세우는 것이다. 자신의 손놀림과 대사로 움직이는 인형이 조금씩 복화술사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차, 싶어서 인형의 주인이 상황의 심각함을 알아차렸을 때는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
<매직>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삼류인생이다. 코키는 싸구려 클럽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마술사이자 복화술사다. 그는 창조력이 부족하지만 ‘패츠’라는 인형을 쇼에 등장시키면서 상황은 바뀐다. 인형 패츠와 코키는 콤비를 이루면서 객석의 박수를 받고 인기를 끈다. 매니저는 코키를 다른 무대에 소개하고 코키는 차츰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무대 밖의 코키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한다. 그는 편집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연히 TV 출연을 제의받지만 자신의 건강이 의심받을까 전전긍긍한다. 이후 매니저와의 갈등이 벌어지자 ‘패츠’가 코키의 인격을 대신하는 일이 생긴다. <매직>을 보면서 떠올릴 수 있는 영화로는 일순위가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1960)다. 정신분열적 상황에 직면한 캐릭터가 살인마로 돌변하는 것은 <싸이코> 이후 심리스릴러영화의 전형이 되었다. <매직>에서 코키는 클럽 무대에서 냉대받는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엔터테인먼트일 뿐이고 웃기는 쇼일 따름이다. 마술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코키는 그 무대에 애증을 품는다. 여기서 그는 서로 다른 인격으로 분열한다. 하나는 순수한 마술사로 머무르고 싶은 코키, 다른 하나는 일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품은 코키다. 인형을 대리인격으로 내세운 코키는 살인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인형은 무기 겸 살인의 간접적 행위자다. <매직>은 스릴러영화로서 정공법을 택하는 대신, 몇 가지 상황에서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비책을 택한다.
리처드 애튼버러 감독은 영화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쥬라기 공원>과 등에서 그는 백발수염을 휘날리는 자태로 출연한 적 있다. <윈스턴 처칠의 젊은 시절>(1972), <간디>(1982)와 <채플린>(1992) 등에서 알 수 있듯 애튼버러 감독은 특정인의 전기영화에 일가견이 있다. 틀에 박힌 장르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감독은 완만한 굴곡의 드라마를 통해 독창적인 영화 서사를 전개하는 것에 치중하는 편이다. 혹시, <매직>의 복화술사-인형의 구도는 애튼버러 감독의 연출자-연기(演技)에 관한 철학이 아닐지.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