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의 다른 이름은 ‘예고괴담’이다. 1편이 학교라는 공간의 폭력성을, 2편이 사춘기의 사랑을 공포의 모티브로 삼았다면 3편 <…여우계단>의 주문(呪文)은 질투다. 단순히 더 예쁜 아이, 더 근사한 교정 풍경을 얻기 위해 예술학교를 배경으로 고르는 많은 학원물과 달리 <…여우계단>의 괴담에서 주인공들이 예술가 지망생이라는 점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만큼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을 갖고 무엇을 할지 너무 일찍 결정한 아이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경주하는 예술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악령은, 교육제도나 기성세대에 대한 염증이 아니라 질투와 자괴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죽음의 방식까지 아이들의 전공과 연결시킨다. 지젤로 선발된 소녀는 죽어서도 배신한 연인 곁을 맴도는 지젤이고, 걸작을 욕심내던 조소과 학생은 스스로 조각이 된다.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비극의 원흉은 분별없이 소원을 들어주는 여우계단이지만, 따지고 보면 계단은 눈을 홀리는 허깨비에 불과하다. 정작 피를 부르는 것은 진성의 죄책감, 그리고 혜주의 억눌린 분노와 열등감이다. 그래서 <장화, 홍련>이 그랬듯이 귀신이 출몰하는 초현실적 공포와 산 사람의 죄의식이 부른 환영을 동시에 가동하는 절충 전략이 쓰인다. 그러나 <…여우계단>은 오싹한 찰나의 이미지를 건지는 데 성공할 뿐 서스펜스나 참신하게 시각화된 쇼크를 연출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누가 죽이는가?”나 “어떻게 죽일 것인가?”의 궁금증은 좀처럼 관객의 마음을 점령하지 못하고, 공포의 크고 작은 정점들은 <캐리> <링> <여우령>의 추억을 호명하는 선에서 머문다.
“왜?”라는 질문까지 희미하게 만드는 것은 캐릭터의 문제다. 돌이켜보면 <여고괴담> 시리즈는 신인 여성배우들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어떤 방식이건- 심지어 자멸이라도- 자신의 운명을 장악한 자주적인 여성캐릭터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우계단>의 네 소녀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허약하다.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게 굴다가, 유리조각이 든 토슈즈를 신은 채 춤을 추는 지독함을 발휘하는 소희의 빛과 어둠은 인물 안에서 하나로 녹아들지 못한다. 진성의 성격은 ‘소희의 적대자’라는 기능적 역할을 넘어서는 개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뚱보 왕따’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려진 혜주의 희극성은 그녀가 지닌 슬픔의 깊이를 덮어버린다. 오만하고 가학적인 윤지는 극의 구조 바깥에서 겉돌다 스러진다.
<여고괴담> 연작에는 <할로윈>이나 시리즈로부터는 절대 바랄 수 없는, 선연한 이미지들이 있다. 복도에 선 유령의 점프 컷이나 학교를 굽어보는 거대한 눈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1편에서 목 매달린 교사의 시체를 목격한 지오(김규리)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대신 뒤따라온 심약한 친구를 돌려 세워 눈을 가려준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효신(박예진)은 반 아이들의 야유 속에 친구의 피 흘리는 입술에 키스한다. 빙빙 도는 카메라는 숙원 같은 입맞춤이 추문의 악취에 포위된 광경을 둘러본다. 연약하고 아름다운 것과 불길한 것의 공존이 빚어내는 불안. 그것은 <여고괴담> 시리즈의 고유한 마력이었다. <여우계단>의 초반에도 숨을 죽이게 하는 한장의 그림이 있다. 무용과의 만년 2등 진성은 전공 교사와 친구의 면담을 엿듣고 낙담한다. 소녀는 시기심으로 흐려진 눈빛으로 난간 위에 훌쩍 올라선다. 그녀의 실루엣은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부터 나는 추락할 것인가, 비상할 것인가? 한 걸음, 두 걸음. 누군가 발목을 끌어내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라이벌 친구가 거기 있다. 하지만 영화 <…여우계단>은 난간 위의 균형을 그리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음의 단조로운 리듬에 투신한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독창적인 공포영화로서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어차피 끔찍한 괴물이나 절묘한 플롯이 아니다. 관객을 오래 전율하게 만든 것은 클라이맥스가 덮쳐오기 이전에 예민한 소녀들에게 전염되는 고요한 패닉이었고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의 속살을 베어내는 쓰라림이었다. 캠퍼스를 무대로 한 여느 할리우드 10대 슬래셔의 속편이었다면 <…여우계단>에 대한 만족도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 1편이 들려준 장중한 진혼곡, 2편이 들려준 우아한 랩소디에 이어 4년 만에 돌아온 충무로판 ‘죽음과 소녀’는 빠른 춤곡의 템포 안에서 멜로디를 혼동하고 말았다.
윤재연 감독 인터뷰
끼리끼리 붙어다니지만 그 속엔 질투가
박기형, 김태용, 민규동 감독에 이어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해 장편 데뷔한 윤재연(31) 감독은 16mm 단편 <사이코 드라마>로 서울여성영화제 우수상을 받았고 박종원 감독의 <파라다이스 빌라>의 아트디렉터를 거쳤다. <…여우계단> 인물의 심리에는 서양화 전공으로 예술고교에서 보낸 감독의 학창 시절 기억이 배어 있다.
예술고등학교를 3편의 무대로 잡았다.시나리오 마지막 단계에 결정했다. 예고를 다니면서 특별히 강렬한 경쟁이나 질투를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무용과 친구들을 보면 끼리끼리 붙어다니면서도 묘하게 질투하는 불편한 감정이 은연중에 느끼곤 했다. 학업에 대한 경쟁이라면 1편에서도 만년 2등 이야기를 다룬 바 있어서 주제를 담아내는 데 예고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학생은 나오지 않는다.사실 혜주의 폭식과 갈등의 원인으로 조소과 남학생을 설정하기도 했다. 결국 여학생들만의 예술고교가 됐지만. 제목이 ‘여고괴담’이라고 여학생들만 다룰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 스탭이 대거 참여한 영화라는 점이 부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네 명의 작가와 배우, 내가 여자이긴 하지만 남성 스탭도 많았다. 여자들끼리 작업했다는 점이 영화를 크게 바꿨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가령 남자 작가가 참여했다 해도 좋게 작용할 수 있었을 거다.
호러영화로서 쇼크장면에 대한 고민은.귀신의 모양새나 등장이 기존 영화와 꼭 달라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처녀귀신은 여러 번 보아도 여전히 서늘하다. 그보다 ‘여우계단’과 그것이 상징하는 내용, 사랑받고 싶고 버림받기 싫은 소녀의 마음이 표현되길 바랐다.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은.윤지는 위압적인 행동 중에 스스로 가리고 싶은 면이 있는 캐릭터였는데 생략돼 아쉽다. 얼굴의 화상도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첫 장편에 대한 자기 평가는.관객이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고, 다 보고나면 생각거리가 있는 영화이길 희망했는데, 첫 번째 바람만 이뤄진 것 같다. 다음 영화에서는 최초의 설정을 후반작업까지 살려 숨은 의도까지 잘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