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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에서 <장화,홍련>까지,오기민 PD의 영화 세상 [1]

소녀의 불안이 전진한다

#1. “언제 비를 맞아본 적이 있어야지, 원.”

올 초 충무로에 돈가뭄이 심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영화사 마술피리 대표 오기민(42)씨는 이렇게 말했다. 2001년 자신의 영화사를 만들어 내놓은 첫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흥행참패를 맛본 뒤 지난 1년간 그가 겪은 경제적 어려움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재상영운동까지 일어났지만 <고양이를 부탁해>가 불러들인 최종관객은 3만명을 넘지 않았고, 영화사는 기획실과 제작부를 해산시켜야 했다.

#2. “전야제 관객만으로 <고양이를 부탁해> 최종 관객 수를 앞질렀네, 허허.”

지난 6월13일, <장화, 홍련>이 개봉하던 날, 관객반응을 궁금해하자 그가 던진 말이다. 개봉 3일간 전국 77만4500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오프닝 신기록을 세운 <장화, 홍련>은 11일 만에 전국 200만명을 돌파했다. <장화, 홍련> 개봉축하파티에 참석했던 한 영화인은 이날 분위기가 묘했다며 이렇게 전했다. “다들 ‘대박’을 처음 경험해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되는지도 모르는 것 같더라구.”

누구도 <고양이를 부탁해>와 <장화, 홍련>의 흥행성적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갈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씨가 제작한 두편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살인의 추억>이 흥행에서 정반대 결과를 낳은 것처럼 오기민씨도 두편의 영화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프로듀서가 흥행의 부침을 겪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묘하게도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기 색깔이 뚜렷한 영화를 만든다는 점. 개별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그들의 영화는 영화계의 유행이나 주류에서 한발 떨어져있다. ‘코미디 아니면 멜로’로 획일화되고 있는 시장에서 그런 움직임은 소중하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면 굳이 한국영화를 만들고 봐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의 영화가 시장에서 극단적 반응을 얻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한 자는 위험도 기회도 남보다 크다.

1. 소녀 관객을 겨냥하는 프로듀서

<여고괴담> 시리즈와 <고양이를 부탁해>를 거쳐 <장화, 홍련>에 이르는 오기민씨의 작품 목록을 보면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다. 모두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첫 영화 <이방인>은 예외지만 사실 그는 <이방인>을 기획하기 전부터 <여고괴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어떤 영화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좌초됐던 이 기획은 <이방인>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씨네2000에서 제작하겠다고 하면서 간신히 소생했다. 두편의 <여고괴담>과 <장화, 홍련>으로 공포영화 전문 프로듀서라는 인식을 얻게 됐지만 오기민씨는 “특별히 공포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고괴담>은 “학교 폭력과 입시에 대한 중압감을 그려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했던 작품이며 <장화, 홍련>도 “친부모를 살해한 대학생의 실화에서 떠올린 것”이다.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 같은 영화는 재미있게 보지만 슬래셔영화는 아예 못 본다. 어릴 적 <캐리>나 <오멘>을 흥미롭게 봤던 기억은 있지만 공포영화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공포영화의 문법에 충실한 <여고괴담>과 달리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가 소녀들의 아름다운 한 시기를 그린 영화가 된 것도 오기민씨의 이런 취향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실제 제작과정에선 적지 않은 충돌이 있었다고 하지만 김태용, 민규동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독특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듀서를 쉽게 발견하기는 어렵다. 정재은 감독이 <고양이를 부탁해>를 만들겠다고 찾아왔을 때 흔쾌히 같이 하자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여고괴담>의 소녀들이 학교를 졸업한 직후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소녀들의 이야기가 틈새시장이다, 라는 식으로 상업적인 고려를 한 것은 아니다. 기존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비어 있는 부분이면서 내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무렵 소녀들이 갖고 있는 아슬아슬하면서 현기증나는, 불완전하고 상처받기 쉽고 신비감도 있는 그런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따라서 <장화, 홍련>을 상영하는 극장에서 친구들의 손을 잡고 찾아와 귀신이 나오는 장면에서 함께 소리지르며 동질감을 확인하는 소녀들을 볼 수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오기민씨는 진심으로 소녀의 정서와 생활을 궁금해하는 몇 안 되는 남성 프로듀서다. 한때 마술피리 직원이 모두 여자였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영화가 워낙 남자감독, 남자 프로듀서가 많아서 그런지 남성성 과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가 나오더라도 캐릭터를 보면 왜곡된 경우가 많다.” <비트>나 <친구> 같은 영화는 물론 여성감독이 만든 <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질투는 나의 힘> 등도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확실히 소녀들을 그린 영화는 부족하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조기종영했을 때 벌어진 자발적인 재상영운동도 그런 목마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교련수업 시간에 총검술을 배우는데 한 친구가 절대 총을 잡지 않겠다고 해서 선생님한테 맞는 걸 본 적 있다. 아주 여리고 예쁜 친구였는데 한국사회는 때려서라도 그애한테 총을 잡게 하고 그래야 남자가 된다고 여긴다. 그런 남성성엔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그가 그리려는 대상을 십대 소녀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문승욱 감독이 연출한 <이방인>은 폴란드로 건너가 홀로 살아가는 어느 태권도 사범의 이야기였고 곧 촬영에 들어갈 <고독이 몸부림칠 때>(가제)는 농촌 마을 중년 아저씨 아줌마들이 주인공이다. “폭넓게 보면 마이너리티,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멜로드라마를 하더라도 하층민의 이야기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는 재미없다. 그런 영화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2. 단편영화를 많이 보는 프로듀서

<장화, 홍련>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오기민씨의 영화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이었다. 문승욱, 박기형, 김태용, 민규동, 정재은 등 이들 신인감독들은 영화를 공부한 경력도 각각 다르다. 문승욱은 폴란드 유학파, 박기형은 연출부 출신, 김태용, 민규동은 영화아카데미 졸업생, 정재은은 영상원 졸업생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모두 단편영화로 주목받았다는 사실이다. 오기민씨는 지금도 “장편극영화보다 단편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말한다. 단편영화에서 드러난 감독의 개성을 보고 작품을 맡기는 그의 제작방식은 오기민의 영화가 비슷한 색깔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김태용, 민규동의 단편 <열일곱>을 보고 십대 소녀의 이야기에 관심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나 정재은의 단편을 보고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연출부로 발탁한 것은 그 예다.

거꾸로 보면 오기민씨는 다른 프로듀서와 달리 학맥이나 인맥에 의존하지 않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상당수 영화사가 같은 학교 출신이나 같은 영화 연출부 출신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 비해 그는 지금까지 오랜 지인과 작업한 경우가 거의 없다. 심지어 <여고괴담>을 만들 때는 박기형 감독을 처음 만나 6개월 만에 영화가 완성되기도 했다. “아는 사람들과 일하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 의도적인 면도 있었다. 영화를 한다고 충무로에 나왔을 때 혼자였고 아무것도 모른 채 부딪치며 여러 가지를 배웠는데 늦게 시작한 만큼 치열하게 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하는 새로운 사람과 작업하면 나의 활동폭을 넓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오기민씨는 오랜 현장경험을 갖춘 차승재씨나 마케팅 경험이 풍부한 심재명, 오정완씨 등과 상당히 다른 경로로 프로듀서가 됐다. 대학에 입학한 82년부터 92년까지 10년간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에 집중했던 그는 노문연에서 활동할 때 우연히 <닫힌 교문을 열며> 프린트를 운반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뒤 장산곶매와 푸른영상에 잠시 몸을 담았으며 떠밀리다시피 충무로 영화사인 삼호필름에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프로듀서가 되는지도 몰랐던 상황에서 영화기획을 시작한 그는 창간 초기 <키노>를 발간했던 LIM을 거쳐 1998년 기획시대에서 첫 영화 <이방인>의 프로듀서를 했다. 그때까지 현장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는 “아마 프로듀서가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알았다면 제작부부터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영화 <여고괴담>을 만들 때도 그는 후반작업 경험이 전혀 없는 프로듀서였다. 첫 영화 <이방인> 후반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여고괴담> 제작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최익환 조감독, 서정민 촬영기사, 씨네2000 이춘연 대표 등 여러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장에서 배우면서 일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경험없는 프로듀서가 지휘하는 현장이 순탄할 수는 없었지만 6개월 만에 급조해 만든 <여고괴담>이 대단한 흥행을 기록하면서 오기민씨는 단숨에 능력있는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았다. 이 무렵 그를 기억하는 씨네2000 대표 이춘연씨는 이렇게 말한다. “프로듀서 경험이 없었던 때라 원리원칙에 철저했던 반면 융통성이 없었다. 계획했던 데서 벗어나는 건 치명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자기가 책임을 지고 자기 힘으로 하겠다는 자존심이 인상적이었다. 그게 성공요인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것 같다.”

아무튼 오기민씨는 영화쪽 인맥이나 현장경험이 없다는 약점을 정면돌파했다. 아직 충무로 제작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단편영화에서 남보다 일찍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지의 젊은 감독들에게 문을 연다는 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오기민의 영화에 새로움이 있다면 이런 과감한 선택에서 비롯된 점이 적지 않다.

3. 일단 선택하면 멈추지 않는 프로듀서

좋아하는 영화의 취향이 여성적이라고 오기민씨의 스타일이 나긋나긋하지만은 않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김태용 감독은 지금도 그의 추진력에 감탄한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망설임이 없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추진력과 속도감이 없었다면 영화가 완성됐을까 싶다. 시나리오를 건네주면 20분 만에 전화해서 만나자고 한다. 이건 안 되겠는데 해서 보면 끝까지 읽지도 않은 상태인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읽다 말고 만난 것이다. 나를 통과하면 무조건 영화로 만들지만 나를 설득하지 못하면 영화가 될 수 없다는 자세다.” <여고괴담>의 박기형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프로듀서가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갑갑한데 오기민 프로듀서는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에 힘이 된다. 작품을 놓고 충돌하기도 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감독에게 준다.” 결정하는 속도가 빠르고 일단 결정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은 상업영화를 만드는 프로듀서에겐 중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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