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장난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민망하게도 느껴지는 두 주연 남녀의 포스터를 뒤로 하고, 속속 관객이 등장하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독자 시사회장엔 뜻밖에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감독도 그걸 눈치챘는지, 마련된 무대인사에서 “오늘은 그나마 커플이 많이 보이는데, 지난번 시사회 땐 여성관객밖에 보질 못했네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여자들이 더 열광하는 에로영화란 아마 한국 에로영화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맛있는 섹스…>의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한 곽정덕 PD는 이러한 현상이 꽤 반갑다.“기실 에로영화는 남성관객을 타깃으로 삼는 영화지만, 우린 처음부터 여성관객을 염두에 둔 기획을 했어요. 여성의 입맛 위주로 작품을 만들 순 없지만, 여성관객을 포기하지 말자고….”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여성관객을 끌 수 있을까.
곽 PD는 <맛있는 섹스…>의 첫 기획회의를 떠올린다. 연출부와 감독이 앉아 떠오르는 대로 주고받는데, 연출부 후배 한명에게 곽 PD가 물었다. “넌 어떤 에로영화를 만들고 싶으냐?” “공감 가는 에로영화요.” 그 문장 이상하게 머리에 남았다. ‘공감 가는 에로영화라….’ 곽 PD는 그간 주류에서 활동(?)해온 성인영화들의 부류를 살펴보았다. <거짓말> <까> <노랑머리> <해피엔드> <정사> <미인> <밀애> <로드무비>까지 둘러보며 그가 느낀 것은 형식에서의 파괴 혹은 실험정신, 그리고 정치적인 함의 등이 영화를 그럴듯하게 보이게 한다는 거였다. 때로 극으로 치닫고, 혹은 일상에 함몰되는 사랑 얘기를 하는 것이 그가 느낀 주류의 방식이었다. 영화사에서 요구해온 건 ‘저예산일 것, 에로영화일 것’이었다. 지난한 수정작업을 뒤로하고, 곽 PD는 전적으로 이전 에로물들과 이야기 방식을 달리해온 봉 감독의 감각을 믿기로 했다.
한 여자가 남자를 만나, 갈등 끝에 헤어짐을 결심한다는 이야기축과 영화사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만족시킨, ‘공감’ 가는 에로영화 <맛있는 섹스…>는 이렇게 태어나게 되었다. 영화를 찍는 건 감독이고,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 건 PD의 몫일 텐데, 곽PD는 제 손에서 태어난 <맛있는 섹스…>의 운명이 그저 탄탄대로였음 좋겠다. 꼬박 6년을 영화판에서 버티며 비록 빈털터리 주머니로 지내왔지만, 그가 꿈꾸는 건 대박이 아니다. 영화를 시작한 초심을 잃지 않길 바라는 것 단지 그거다.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곽정덕 | 충남대 컴퓨터과학과 88학번 · 95년 2월 졸업 뒤 2년간 한화그룹에서 회사생활 · 97년부터 영화판을 전전하다 이스트 필름에 입사 · <박하사탕> <휴머니스트> 등의 기획, 제작을 돕다가 그간 친분이 있던 봉만대 감독과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같이 찍음, 그 전에 봉 감독의 <터치> 시나리오를 써준 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