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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3]
박혜명 2003-06-05

그러니까 그는

무섭게 생겼다. 하지만 하나도 안 무섭다

루이스 구즈만 Luis Guzman

1957년생

주요작

1993 <칼리토>

1997 <부기 나이트>

1998 <스네이크 아이>

1999 <매그놀리아>

2000 <트래픽>

2001 <몬테크리스토 백작>

2002 <웰컴 투 콜린우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배우 루이스 구즈만이 갖고 있는 별명은 ‘늑대인간’이다. 사진을 보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 것이다. 이런 생김새를 잊기란 쉽지 않다. 밤에 한적한 골목길에서 마주친다면 발이라도 얼어붙을 것이다. 감독들도 처음엔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인상을 갖다 쓰자. 그래서 루이스 구즈만은 1980년대 <마이애미 바이스> <헌터> <호미사이드> 등의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냉혹한 갱스터 또는 살인청부업자로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이 배우에게서 얼굴과는 딴판인 따뜻한 심성의 연기가 배어나왔다. 그 모습은 그에게 충복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1993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칼리토>에서 루이스 구즈만은 노쇠한 갱단의 칼리토를 충실하게 모시는 심복 ‘파창가’를 연기했다(끝내 배신하기는 하지만). <칼리토>는 그에게 일종의 전환이었다. 그뒤 루이스 구즈만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백작을 모시는 하인의 역할을 했으며, <플루토 내쉬>에서는 에디 머피와 <칼리토>를 패러디한 관계가 되었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는 아이 같은 사장을 따라 한마디 불평도 없이 푸딩을 사러 나선다. 이제 험상궂은 얼굴의 위협은 사라지고, 배신은 익살의 행위를 덧붙여갔다. 여러 명의 돈키호테를 모시는 할리우드의 ‘산초’가 탄생한 것이다.

여전히 죄수, 마약상 등의 범죄자를 연기하지만 이제 그의 연기에는 친근함이 있다. 감독들은 그런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사랑과 슬픔의 맨하탄>에 등장한 루이스 구즈만을 일찍부터 찍어둔 폴 토머스 앤더슨은 7년 뒤에 그를 <부기 나이트>로 불러들였고, 루이스 구즈만을 향해 “마법사이자 야바위꾼이며 또 진짜 노동자”이기도 하다며 그의 다면성을 치켜세웠다. 루이스 구즈만은 연이어 <매그놀리아>에까지 출연했다. 스티븐 소더버그 역시 <영국인> <트래픽> <웰컴 투 콜린우드>로 이어가며 루이스 구즈만의 자리를 남겨두고 있다. 루이스 구즈만은 자신의 역할을 야구선수에 비유한다. “나는 전천후 플레이어를 좋아합니다. 나를 당신 팀에 넣어주기만 해봐요. 나는 2루수도 볼 거고 중견수도 볼 겁니다. 잡을 거고 또 던질 겁니다. 포지션이 뭐가 됐든 말이죠.” 이렇게 스스로를 평하는 루이스 구즈만은 대기만성형의 배우이다.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그러니까 그는

톰 사이즈모어 TOM SIZEMORE

전쟁과 범죄를 전담한 인간적인 마초맨

1964년생

주요작

1993 <사랑의 동반자>

1994 <킬러>

1995 <스트레인지 데이즈>

1995 <히트>

1998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00 <레드 플래닛>

2002 <블랙호크다운>

이탈리아계답게 꺼칠꺼칠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덩치 좋은 배우 톰 사이즈모어를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은, <씬 레드 라인>과의 양자택일 기로에서 선택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이후 그는 <진주만>과 <블랙 호크 다운> 등 두편의 전쟁영화를 더했다. <진주만>에서는 아주 단순한 역으로 찰나 스치고 말지만, <블랙 호크 다운>에서 아군 호송 임무를 맡아 험비를 타고 무식하게 내달리는 대니 맥나이트 중령은 그에게 더이상 적격일 수 없는 역할이었다. 그 덕에 한동안은 ‘전쟁영화 전문 조연’ 같은 닉네임이, 남은 미래가 아직 밝은 배우에게 암울하기 그지없게 따라다니기도 했다.

사이즈모어는 고집스런 성격과 제멋대로 날뛰는 난폭하고 거친 아이로 10대를 보내며 “몽고메리 클리프와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를 보면서 배우가 되겠다고 꿈꿨었다”. 89년 <탈옥>으로 데뷔한 이래 얇게 다문 입술이 주는 무서운 인상과 함께 얼티밋 터프가이 혹은 아주 남성적인 조연 캐릭터로 90년대에 주목받기 시작했고, 범죄와 관련된 액션스릴러과의 영화들, 말하자면 <패신저 57>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올리버 스톤의 킬러> <스트레인지 데이즈> <히트> 등은 그의 이미지를 전형적인 악당이나 형사로 제대로 풀어낸 필모그래피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밀러 대위와 함께 얼굴도 모르는 일병 라이언을 구하러 떠나는 휴머니스트 정예요원으로 선택받기 전까지 그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에게서 좀더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면 <빅 트러블>이 있다. 이 영화에서 교도소 탈출 강도로 출연하는 그는 여전히 힘자랑깨나 하면서도 맞기도 하면서 수시로 자빠지고 바닥을 뒹군다. 심지어 검정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구멍만한 술집을 털러 쳐들어간다. 말 그대로 얼뜨기 ‘일자무식’ 캐릭터이지만 코미디 연기를 시도해보인 사이즈모어의 신선한 매력을 즐길 거라면 절대 실망스럽지 않다. 여기에 <스트레인지 데이즈>를 봤던 사람은 그가 가죽 재킷에 록밴드 보컬처럼 어깨 너머로 머리를 길러 늘어뜨린 적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질 거다.박혜명 na_mee@hani.co.kr

그러니까 그녀는

언제나 유쾌해! 그녀가 있는 세상도 언제나 유쾌해!

조앤 쿠색 JOAN CUSACK

1962년 생

주요작

1988 <워킹걸>

1992 <토이즈>

1993 <아담스 패밀리 2>

1997 <인 앤 아웃>

1999 <런어웨이 브라이드>

2000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인 앤 아웃>에서 애인 하워드(케빈 클라인)와 바로 조금 전까지도 행복했던 에밀리는, 곧 결혼할 자신의 남자친구가 게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표정이 굳는다. 그러나 그녀는 심각해도 우리는 웃음을 터뜨린다. 드디어 결혼한다는 행복감에 젖어 있던 착하고 순진한 에밀리의 모든 미래가 한순간에 무너질 판국이지만, 그래서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쿠색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그럴 수밖에.

<토이즈>에서 장난감 회사 사장의 다 큰 딸이지만 여전히 철없이 노는 걸 즐거워 하는 알리시아, <런어웨이 브라이드>에서 매기(줄리아 로버츠)의 솔직하고 푼수 같은 친구 페기,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친구 커플이 깨질 위기를 조율하느라 애쓰는 리즈가 모두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사랑스런 여인들. 그리고 에밀리와 함께 이 모든 캐릭터는 조앤 쿠색이란 배우에게서 창조된 캐릭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유쾌하다 못해 호들갑스러운, 괴짜스럽고 터무니없는 말로 주변을 썰렁하게 만들어도 사랑스러운 그의 캐릭터들은 쿠색의 외모가 주는 인상에서부터 이미 절반 이상 결정된다. 심지어 <아담스 패밀리2>의 연쇄살인마 데비 젤린스키까지도 결국 그녀의 다른 캐릭터들과 한줄에 묶이는 굴비다. 데비는 돈많은 남자들만 골라 계획적으로 결혼한 뒤 살해하고 장례식 날 돈 갖고 튀는 끔찍한 인물. 그러나 이 요녀가 남자를 꼬시기 위해 온갖 순진과 애교를 동원하는 모습은 쿠색만의 것이다.

그의 엉뚱하고 별난 모습은 위스콘신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하던 시절에 Ark Theater에서 즉흥 코미디 클럽 활동을 하면서 다듬어졌다. 그는 아무리 세련된 차림에 도도한 척을 해도 분명 어디선가 한번씩은 발목을 삐끗할 것으로 여겨지고, 혀짧은 발음과 동그랗고 맑은 눈에 도톰한 입술 덕분에 소녀처럼 앳된 인상은 덤으로 얻은 셈이다.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었던 주걱턱의 외고집스러움까지도 가뿐히 소멸될 만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얼굴근육에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조앤 쿠색. 그의 귀엽고 발랄한 모습을 멕 라이언이나 줄리아 로버츠의 작위적인 귀여움과 발랄함보다 더 믿어주고 싶어진다면 그건 거만한 스타들에 대한 괜한 질투심의 반작용이 아니라 쿠색의 매력을 충분히 깨달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박혜명 na_m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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