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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향을 내는 꽃,<아카시아> 촬영현장
이영진 2003-05-22

카메라 세팅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박기형(36) 감독은 갑자기 오현제(38) 촬영감독에게 다가가 소곤거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촬영감독의 응답. “제가 착각했네요. 트랙을 깔아야 할 것 같은데요.” 4월27일, 경기도 가평군 소재 허수아비 갤러리. <아카시아>의 2회차 촬영현장이다. 오후 촬영이 다소 늦어지는 것에 대해 박 감독은 “그냥 카메라 고정하고 틸업(tilt up)하면 질감이 안 나와. 인물 사이즈 유지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붐업(Boom up)하려고 했는데 촬영쪽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거예요. 좀 지나면 속도가 붙겠죠” 한다. 이날 촬영은 미대 교수인 시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어린이 미술대회 심사를 맡게 된 직물공예가 미숙(심혜진)이 전시회장을 둘러보다 E. 뭉크의 <절규>를 연상케 하는 묘한 그림을 마주하게 되고 이 그림을 그린 커다란 눈을 가진 아이 진성(문우빈)과 만나는 장면이다. 공포영화의 결을 따라 편집해야 하는 것을 염두에 둔 듯 10번이 넘는 테스트를 거쳐 촬영이 시작됐지만 박 감독은 좀처럼 오케이 사인을 내지 않는다.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1998) 이후 5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심혜진은 “발뒤꿈치 모양까지 참견한다”며 “여간 깐깐한 감독이 아니”라고 곁말을 더한다.

성기영씨의 시나리오 <오렌지>를 다듬은 <아카시아>는 아이가 없는 미숙과 도일(김진근)이 진성을 입양한 뒤 겪게 되는 끔찍한 사건들이 중심 스토리. 대화를 거부하고 정원의 아카시아 나무를 서성이며 나무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하는 진성이 영화 속 공포와 두려움의 ‘열쇠’다. 프로젝트 그룹과 아름다운 영화사가 제작하며, 쇼이스트가 투자·배급한다. 제작비는 16억원, 개봉은 8월15일 예정. 사진 정진환·글 이영진

♣ “중요한 장면인가보네.” 용인에서 이뤄진 첫날 촬영에 출연했던 초로의 한 단역배우는 촬영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감독님이 어제보다 더 오래 찍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고 주위 스탭들을 취재하기도.(사진 왼쪽)♣ 진성 역을 맡은 문우빈은 1997년생. 올해 여섯살이다. 초등학교보다 촬영장에 먼저 입학한 문우빈은 제작진에 따르면 오디션을 보러온 100명 중 연기 경험이 없는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였다고.

♣ <아나키스트>를 연출한 유영식(왼쪽) 감독은 박기형 감독에겐 든든한 동지다. 프로듀서를 맡고 있지만, 때론 콘티를 함께 들여다보며 연출부 역할을 맡기도 한다고.♣ 좀처럼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본인은 안경이라고 주장한다) 박기형 감독은 “진성을 입양한 양부모의 두려움이 공포로 그리고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내러티브에 자연스럽게 이식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아카시아를 떠올릴 때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독기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박 감독. <여고괴담>(1998) 때 여고쪽으로부터 촬영허가를 받기 위해 청춘영화라고 속여 시나리오에 ‘아카시아’라고 제목을 붙인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