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몇년전 ‘동시상영’ 간판이 붙은 지저분한 극장에서 보던 영화들을 기억하는지. <무간도>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90년대 초반이후 사그라져가던 ‘홍콩 느와르’를 다시, 아니 새롭게 불러내는 영화다. 홍콩에선 지난해 12월 개봉이후 <영웅><해리포터> 등 쟁쟁한 영화를 물리치며 흥행신기록을 써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류더화와 양차오웨이는 각각 20여년간 쌓아온 세월의 무게 만큼 더 깊어진 표정으로 화면을 꽉 채웠다. <아비정전>과 <오호장> 이후 11년만에 함께 어둠의 세계로 걸어들어간 두 스타를 지난 1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걱정할 시간에 작품 만들어야"
류더화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 그는, <열혈남아>에서 장만위와 공중전화박스에서 열렬한 키스를 나누던 아웃사이더로 남아 있을 것이다. 명예나 권력엔 아무런 욕심이 없어 보이던 매끈한 바로 그 반항아가, 어느새 얼굴에 각이 진 42살의 ‘배우’가 되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양차오웨이의 역을 시킬 줄 알았다.” <무간도>의 배역은 어느 영화보다 복잡한 캐릭터였다고 털어놓았다. “경찰 속에서 경찰에 둘러싸여 사는 유건명은 겉으론 정의롭고 똑똑해 보여야 하지만, 관객들에겐 나쁜 사람임을 드러내야 했다. 함축적이며 내면적인 연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류더화는 얼굴엔 좀체 갈등을 드러내지 않은 채 냉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그는 <무간도>에 대해 “아직도 이 장르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새롭게 보여준 작품”이라며 “어떤 의미에선 오우삼 영화를 이긴 것”이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특정 감독과 짝을 이루는 몇몇 배우와 달리 그는 지난세월 느와르부터 멜로,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배우로, 가수로, 영화제작자로 숨가쁘게 살아왔다. “반항적인 이미지가 어떤 의미에선 나의 공간을 제한하는 것 같았다. 폭이 좁아지는 것 같고…. 지금은 나 자신을 위해서 여러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말은 20여년의 세월이 그에게 준 자신감이자 원칙 같았다. “나도 왕자웨이 감독이랑 찍고 싶다, 근데 날 안 부르더라”고 농담을 하지만.소방관을 꿈꾸던 청년이 81년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오랜 시간을 정상에서 버텨온 건 “24시간 일한다”는 성실성과 낙천성 덕일 게다. 그는 홍콩영화의 쇠락을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걱정할 시간에 좋은 작품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영화라는 건 오락의 산물이다, 기쁘게 해야지 반대로 영화산업 전체를 생각하는 스트레스 속에서 만든다면 결과는 더 나쁠 것”이라 명쾌히 말했다.양차오웨이 그는 <무간도>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진영인을 설명하면서, “여전히”라는 말로 운을 뗐다. “여전히 고독하고 억눌린 게 많고, 비애를 머금고 있는 인물”이라고. 그에게 세계적인 주목을 선사한 89년작 <비정성시>부터 <아비정전>, <화양연화> 그리고 최근작 <영웅>에 이르기까지 그가 연기한 인물들이 모두 고독하고 억눌린 게 많고 비애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영인은 경찰학교에서 훈련받다가 범죄조직에 잠입한 위장 스파이다. 3년으로 끝날 줄 알았던 스파이 생활을 십년 째 하는 그의 눈에는 불타는 정의감이 아니라 체념과 쓸쓸함이 담겨 있다. “오래 전부터 밝고 낙관적이며 행복한 역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역이든지 연기하다보면 또 내 성격으로 돌아온다”는 양차오웨이의 고민 아닌 고민이 진영인에게도 배어나왔을 터이다.“원래 성격도 피동적이고 혼자 있는 것 좋아하고 비관적”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우울은 나의 힘’이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는 성격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성격이 연기를 통해 내 감정을 드러내는 데 어떤 힘으로 작용하는” 것같다. 당연히 낯을 가리는 편인 그가 가장 작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은 “어떤 사람들과 작업할 것인가”이다. <무간도>를 선택하게 된 것도 유위강 감독에 대한 신뢰와 “연기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없는 배우들과 맘 편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말은 <오호장> 이후 12년 만에 만나 함께 호흡한 유덕화에게 보내는 찬사이기도 했다. “그는 변한 게 없다.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굳이 찾으면 좀더 멋스러워졌다는 거”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애를 담고 있는 눈빛의 소유자라는 말을 들으며 그 눈빛으로 인해 왕자웨이, 후샤오시엔, 관진펑 등 세계적인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는 그이지만 차기작 에서는 대대적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기초적인 개념만 있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아주아주 특별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작품에서 제대로 변신한다면 배우 양차오웨이에 대한 관객들의 인상도 좀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하는 게 서늘한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수줍게 털어놓는 그의 기대다. 김은형 기자
"우울은 나의 힘‥연기에 작용"
양차오웨이는 <무간도>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진영인을 설명하는 데 “여전히”라는 말로 운을 띄웠다. “여전히 고독하고 억눌린 게 많고, 비애를 머금고 있는 인물”이라고. 그에게 세계적인 주목을 선사한 89년작 <비정성시>부터 <아비정전>, <화양연화> 그리고 최근작 <영웅>에 이르기까지 그가 연기한 인물들이 모두 고독하고 억눌린 게 많고 비애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다.진영인은 경찰학교에서 훈련받다가 범죄조직에 잠입해 조직원을 위장한 스파이. 그의 눈에는 불타는 정의감이 아니라 체념과 쓸쓸함이 담겨 있다. “오래 전부터 밝고 낙관적이며 행복한 역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역이든지 연기하다보면 또 내 성격으로 돌아온다”는 양차오웨이의 고민 아닌 고민이 진영인에게도 배어나왔을 터이다.“원래 성격도 피동적이고 혼자 있는 것 좋아하고 비관적”이라는 말하는 그에게 ‘우울은 나의 힘’이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는 성격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성격이 연기를 통해 내 감정을 드러내는 데 어떤 힘으로 작용하는 것같다”고. 당연히 낯을 가리는 편인 그가 가장 작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은 “어떤 사람들과 작업할 것인가”이다. <무간도>를 선택하게 된 것도 유위강 감독에 대한 신뢰와 “연기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없는 배우들과 맘편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말은 <오호장> 이후 11년 만에 만나 함께 호흡한 류더화에게 보내는 찬사이기도 했다. “그는 변한게 없다.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굳이 찾으면 좀더 멋스러워졌다는 거”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애를 담고 있는 눈빛의 소유자라는 말을 들으며 그 눈빛으로 인해 왕자웨이, 후샤오시엔, 관진펑 등 세계적인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는 그이지만 차기작 에서는 대대적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기초적인 개념만 있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아주아주 특별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그 작품에서 제대로 변신한다면 배우 양차오웨이에 대한 관객들의 인상도 좀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하는 게 서늘한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수줍게 털어놓는 그의 기대다. 글 김영희, 김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