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스즈키 세이준 등 일본 대표감독 6인전, 전주, 청주, 광주, 대구에서 열려이마무라 쇼헤이, 스즈키 세이준, 이치가와 곤…. 이름만으로도 귀가 솔깃해지는 일본 감독 6인의 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가 지난 12월6일, 전주에서 막을 올렸다. 전주를 필두로 청주(12월13∼15일), 광주(12월20∼22일), 대구(12월26∼29일) 등 4개 도시를 순회하며 12월 말까지 계속될 ‘일본 감독 6인전’은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와 각 지역 시네마테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 국내에 개봉된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등으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마무라 쇼헤이와 지난 월 회고전을 통해 놀랍게도 ‘인기감독 ’이 된 스즈키 세이준 등 일본 영화사에서 기억될 만한 감독 6명의 주요작 11편을 모아 상영한다.
상영작 가운데 숫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는 인간의 욕망과 삶의 동물적인 에너지를 포착해온 이마무라 쇼헤이. 이마무라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일본 곤충기>(にっぽん昆蟲記, 1963년, 123분 - 사진)는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난 도메라는 ‘여자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애인이 죽고 새 삶을 찾아 떠난 도쿄에서 갖은 직업을 거쳐 창녀촌에 이르는 주인공, 착취당하고 착취하는 악순환의 굴레 속에 곤충처럼 끈질긴 생존 본능으로 억척같이 살아가는 여성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강간당한 뒤 자살하려다가 실패한 주부가 능동적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붉은 살의>(赤い殺意, 1964년, 150분)는 <일본 곤충기>와 더불어 여성의 강인한 생명력에 주목해온 이마무라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 여성뿐 아니라 노동자, 소작농, 건달 등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된 밑바닥 삶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의 이력은, 나머지 두편의 상영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작은 오빠>(にあんちゃん, 1959년, 101분)는 쇠락해가는 탄광촌에서 부모도 없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살아가고자 애쓰는 재일한국인 남매들의 선량한 분투기를, <돼지와 군함>(豚と軍艦, 1961년, 108분)은 미군기지의 음식물 찌꺼기로 돼지를 사육해 한밑천 벌어보려던 건달 긴타의 깨어진 꿈과 기지촌의 궁핍한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상영작에 포함된 스즈키 세이준의 작품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다가 조직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못해 다시 폭력에 휘말리는 야쿠자의 행로를 그린 <동경 방랑자>(東京流れ者, 1966년, 83분), 하숙집 딸을 연모하며 성적 욕망을 학교에 대한 반항과 폭력 서클을 통해 발산하는 고교생의 좌충우돌 성장기 <겐카 엘레지>(けんかえれじい, 1966년, 86분) 등 2편. 의리의 전쟁을 마친 야쿠자가 난데없이 동명주제가를 부르며 쓸쓸히 떠나는 등 뮤지컬과 코미디, 야쿠자영화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동경 방랑자>처럼, 60년대 영화 시스템 안에서 과감한 장르의 파괴와 B급영화의 유희정신을 보여줬던 스즈키의 이상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쇼치쿠의 오시마 나기사와 또 다른 지점에서 일본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 이 두 감독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전후 닛카쓰에서 활동한 젊은 작가군에 속했던 우로야마 기리로의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큐폴라가 있는 거리>(キュ-ポラのある街, 1962년, 100분 - 사진)는 주물공장 노동자인 아버지의 해고로 시련을 겪는 가족, 특히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밝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린 영화. 아이들과 우정을 나누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언급까지, 이 각본을 함께 쓴 이마무라의 <작은 오빠>와 닮아 있다. 애인이었던 여공을 버리고 사장의 조카와 약혼한 남자의 출세욕과 순박한 여성 캐릭터가 대비되는 <내가 버린 여자>(私が棄てた女, 1969년, 116분) 등 2편에서 서민적이면서도 건강한 삶에 대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미조구치 겐지의 제자이자 각본가로 먼저 이름을 떨쳤던 신도 가네토의 <벌거벗은 섬>(裸の島, 1960년, 96분)은, 메이저 영화사의 시대였던 당시에 보기 드문 독립 프로덕션의 영화. 일본 세토나이카이 군도의 작은 섬에 거주하는 한 가족을 다룬 작품으로, 하루종일 몇번씩 근처 섬에서 물을 길어와 밭을 가꿔야하는 고단한 일상, 갑자기 쓰러진 아들에게 제 시간에 의사를 데려오지 못할 만큼 외딴 자연 속의 생존을 대사도 거의 없이 자연주의 소설에 가까운 리얼리즘으로 담아냈다. 이들보다 한 세대 앞서 1940년대 말에 데뷔한 이치가와 곤은, 70여편이 넘는 다작과 함께 일본사회의 모순을 유머감각으로 비튼 블랙코미디로 기억되는 노장. 1943년 미얀마의 전장을 무대로 한 <버마의 하프>(ビルマの竪琴, 1956년, 116분)는 유머보다 직설이 두드러지는 작품이지만, 하프 연주로 동료들의 마음을 달래주곤 하던 일본군 병사가 전쟁의 참상을 깨닫고 승려가 되는 과정을 통해 군국주의 전쟁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 밖에 상영작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인 <백만냥의 항아리>(丹下左膳余話-百萬兩の壺, 1935년, 84분)는 1930년대 시대극의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였던 야마나카 사다오의 영화. 야규 가문의 영주가 동생에게, 동생의 부인이 넝마주이에게, 넝마주이가 동네 꼬마에게 줘버린,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백만냥의 가치가 있는 항아리를 둘러싼 소극이다. 거창한 영웅들의 스펙터클보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캐릭터와 일상, 인정미와 기지가 넘치는 현대적인 시대극으로 차별화됐던 야마나카의 희귀 필름까지,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일본 영화사의 고전들을 만날 수 있다.황혜림 blauex@hani.co.kr▶ 영화사의 전설을 만난다! - 일본 감독 6인전 [2] - 상영시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