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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관선 못본다 부산영화제서만 본다
2002-11-09

영화제가 마니아들을 불러모으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극장에서 개봉하기 힘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가운데 ‘월드 시네마’, ‘오픈 시네마’ 부문과 올해 새로 마련된 ‘비평가 주간’에 올려질 작품이 그런 경우다. 올해의 경우는 여느 해보다 훨씬 알차다.

먼저 뜨거운 논쟁을 던질 영화로는 영국 피터 뮬란 감독의 <막달레나 자매들>, 11명의 감독이 만든 단편 옴니버스 등이 눈에 띈다. <막달레나 자매들>은 올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1960년대 아일랜드에서 카톨릭계 수녀원 내부의 비인간적 실태를 고발한 이 작품이 공개되자, 바티칸은 즉각 유감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 프로듀서 알랭 브리강이 기획한 은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빚었던 작품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칠레인이 이날 일어난 사태로 가족을 잃은 미국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영상에 담은 켄 로치의 단편이 호평을 받았다.

△ 월요일 아침

‘재미’와 ‘작품성’ 두 토끼를 함께 잡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는 핀란드 아키 카우리스마키(45)의 <과거가 없는 남자>, 팔레스타인 출신 엘리아 슐레이만(42)의 <신의 간섭>, 영국 켄 로치(66)의 <스위트 식스틴>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는 불량배들에게 얻어맞아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자기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에 따뜻한 유머를 더한 수작. <신의 간섭>은 대사를 극도로 아낀 영상 속에 일상의 폭력을 풍자하며 다양한 형식 실험을 전개한다. <스위트…>는 영국 글래스고 지방을 배경으로 그려낸 달콤하고도 씁쓸한 십대의 성장기다. 악명 높은 글래스고 사투리 때문에 올해 칸에서 영국 영화임에도 영어 자막을 넣어 상영하기도 했다.

△ 그녀에게

형식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는, 러닝 타임 96분을 단 한 컷으로 찍은 알렉산더 소쿠로프(51)의 <러시아 방주>, 80년대 포스트 펑크 음악의 본거지였던 맨체스터의 전설적인 대중음악가들의 흥망기인 마이클 윈터보텀의 <파티 피플 24>과, 형식에선 연극과 뮤지컬을 뒤섞고 장르에선 추리극과 블랙코미디를 혼합한 프랑수아 오종의 등을 꼽을 수 있다. 현업 감독으론 최고령인 포르투갈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94)의 신작 <불확실성의 원리>, 일상의 부조리를 탐구해온 오타르 요셀리아니(68)의 <월요일 아침>, 사색적 영화를 생산해온 크쥐시토프 자누시(63)의 <서플리먼트> 등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들의 작품들과,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자장커의 <임소요>, 다르댕 형제의 <아들> 등 중견 감독들의 신작들도 놓칠 수 없는 것들이다. 내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박찬옥 감독의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은 탄탄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