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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음악,<디바> O.S.T
2002-11-07

성기완의 영화음악

장 자크 베넥스의 <디바>는 새 장을 연 영화 축에 든다. 이 영화는 과도하다 싶지만 촌스럽지는 않은, 화려한 푸른 색조의 이미지와 이리저리 꼬이는 내러티브가 공존한다. B급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돈가방’ 중심의 내러티브에 오페라 가수의 환상이 구멍을 낸다. 음반취입마저도 거부하는 이 순수한 오페라 가수의 대척점에는 ‘여자를 팔아 마약을 사는’ 파리 암흑가의 지배자가 존재한다. 이 역시 일상적 현실의 자리는 아니다. 한겹 밑바닥이다. 암흑가의 지배자는 경찰서장이기도 한데, 그런 방식으로 현실 밑바닥은 하나로 추하다. 환상으로 통하는 구멍과 추한 밑바닥 사이에 주인공인 우체부 쥘이 낀 채로 존재한다.

그가 그 둘을 드나들게 된 것은 ‘카세트’ 때문이다. 녹음된 소리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현실에서 환상으로, 다시 밑바닥 현실로 드나들도록 만드는 티켓이다. 오페라 마니아인 이 우체부는 나그라를 통해 몰래 자기가 연모하는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혼자 즐긴다. 구차한 현실의 편지를 나르는 그에게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는 일종의 구멍이다. 그 구멍으로 들어가면 화면은 느려지고 세계는 사이키델릭하게 세팅된 환상적 시의 세계가 된다. 동시에 이 ‘카세트’는 정말 위험한 구멍이기도 하다(‘구멍을 조심해!’라는 대사). 암흑가 보스의 정부는 죽음을 무릅쓰고 암흑가의 비밀을 녹음하여 카세트에 담는다. 그녀는 칼침을 맞고 죽지만 죽기 직전 그 카세트는 우연히 쥘의 가방에 넣어진다. 또 대만 출신의 해적판 업자들은 쥘이 녹음한 카세트의 행방을 쫓고 있다. 쥘은 환상과 추한 현실 양쪽의 음모에 이중적으로 쫓긴다.

영화의 음악은 크게 둘로 분위기가 나뉜다. 하나는 여주인공이기도 한 윌헬마니아 위긴스 페르난데스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다. 환상과 예술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이 흑인 소프라노 가수가 부른 노래는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왈리>에 나오는 <나는 멀리 떠나가네>라는 아리아가 영화의 성공과 함께 갑자기 인기가 급상승하기도 했었다. 노래 자체로 따진다면 톱클래스의 소프라노라고는 할 수 없다. 영상의 힘으로 고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들어야 한다.

다른 하나, 즉 오리지널 스코어는 블라디미르 코스마가 맡았다. 이 영화음악가는 청춘영화 <라붐>이나 <유 콜 잇 러브>(원제 L’Etudiante)의 테마곡을 지은 대중적 작곡가로만 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영화음악 실력은 오히려 그런 노래들의 성공 때문에 조금 과소평가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음악 실력은 그 이상이다. <디바>의 사운드트랙을 들어보면 간단히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창고를 개조한 푸른 색조의 스튜디오라는 감각적 공간이 코스마의 음악으로 훨씬 더 빛을 발한다. 블라디미르 코스마는 색감을 강조하는 프랑스영화의 분위기에 아주 잘 적응하는 앰비언트적인 사운드를 구사한다. 오페라 가수와 쥘이 파리를 산책하는 환상적인 장면에 쓰인 피아노 선율도 영화음악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음악. 블라디미르 코스마 아니면 낼 수 없는 이미지 중심의 사운드다. <디바>를 비롯해 <라붐> <마르셀의 여름>과 <유 콜 잇 러브> 등 블라디미르 코스마의 영화음악을 개괄할 수 있는 O.S.T 음반이 한꺼번에 나왔다. 할리우드 중심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나 선곡된 록음악 모음집 위주의 O .S.T들만을 접하던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