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게이라는 이유로 정식 배구팀 입단을 거절당한 몽(사하파프 위라카민)은 캇쭝(차이찬 님푼사왓)과 고향을 떠나려다 기차역에서 배구팀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기차에서 내려 배구팀 선발시험에 응하는 몽과 쭝, 팀에 새로 부임한 여성감독 비(시리타나 홍소폰)가 둘을 선수로 뽑자 다른 팀원들이 반발, 차이 (젯다폰 퐁디)를 제외한 전원이 팀을 떠난다. 팀이 곤경에 처하자 몽과 쭝은 대학 시절 함께 배구를 했던 게이 캇링湧떠올린다. 군인이 된 농(죠교 마이오치), 성전환한 댄서 피아(곡곤 벤자티군),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약혼까지 한 윗(에카차이 부라나파니트) 등이 합류하고 게이배구팀이 탄생한다. 이름하여 ‘철의 여인들’. 여장을 즐기는 게이가 주축이 된 이 팀은 상대의 얼을 빼며 연전연승한다.
■ Review
게이배구팀이 전국체전에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타이영화 <아이언 레이디>는 앨런 파커 감독의 91년작 <커미트먼트>를 연상시킨다. 핍박받는 아일럿恙비주류 장맛솔음악을 더해 고난의 길을 자초한 <커미트먼트>의 밴드 팀원들처럼 타이의 게이배구팀 ‘철의 여인들’도 설상가상의 악조건과 싸워나객 마이너리티의 삶을 당당히 선택하는 아일랜드밴드처럼 타이의 배구팀도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차마 부모님께 말 꺼내기가 두려워 억지결혼까지 해야 하는 윗도 배구팀의 일원이 되면서 당당하게 커밍아웃한다. 그들은 여자이고 싶다.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에 카메라가 다가오면 부끄러워 몸이 굳지만 화장만 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아이언 레이디>가 품고 있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에너지가 여기에 있다. 이 영화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없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길을 걸으며 순간순간 등장하는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는다. 역경과 시련이 거셀수록 그들의 용기와 의지는 커져가고 최후의 승리가 한발 앞으로 다가온다. <아이언 레이디>는 자신의 힘을 믿는 이들이 그 믿음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즐거운’ 영화다.
이야기의 뼈대는 흔한 스포츠영화와 다르지않다. 저조한 성적을 내던 팀에 새로운 감독이 오면서 일대 혁신이 진행된다. 팀의 주장은 게이를 영입하는 감독에 반발하고 게이 중심의 새로운 팀이 구성된다. 팀은 승리를 거듭하지만 그러는 동안 문제가 벌어진다. 몇 가지 고난을 함께 헤쳐가면서 그들은 점점 강해진다. 도식대로 진행되는데도 이 영화가 신선해 보이는 것은 아이처럼 해맑은 팀원들 덕이다. 떡 벌어진 어깨, 다부진 근육에 목젖이 또렷한 남자들이 요란한 화장을 하고 닭살돋는 교태를 부리는 모습은 부조화에서 기인하는 해학을 부채질한다. 여자보다 과장되게 여성적인 면을 드러내는 남자들, 그들은 “남자는 다 똑같아”라며 남성을 욕하는 한편 “저 남자 너무 멋지다”며 사랑받고픈 욕망을 드러낸다. 남성도 여성도,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아닌 똑같이 외롭고 나약한 사람들이라는 시선이 영화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이 영화가 택한 갈등의 양상은 외부에서 내부로, 내부에서 다시 외부로 옮겨객 게이배구팀을 우습게 보던 사람들에게 강스파이크를 내리꽂던 ‘철의 여인들’은 게이배구팀에 속해 있지만 결코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주장 차이와 그의 이중적 태도에 분개하는 몽의 반목에서부터 분열의 조짐을 보인다. 피아가 실연의 아픔을 겪고 윗이 아버지에게 끌려가는 사건이 겹치는 동안 ‘철의 여인들’의 진짜 적이 등장한다. 동성애자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철의 여인들’의 출전을 금지시키려 드는 것이다. 배구팀의 여성 감독 비의 카리스마가 발휘되는 것은 다음 순간이다. “당신이 불쾌한 것은 게이가 아니라 부엌에만 있어야 할 여자들이 눈앞에서 설치는 것”이라는 비의 항변은 게이와 여성이 손잡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게이배구팀의 인기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암시한다. ‘철의 여인들’을 응원하는 것은 그들의 승리가 다른 어떤 팀보다 극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라는 피라미드에서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남아 있는 핍박과 수모의 기억이 ‘철의 여인들’의 배구공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코트에 나동그라지는 정치인의 모습에 억압자의 형상이 들어 있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 몽은 게이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게이배구팀은 통쾌한 승리로 편견을 물리친다.♣ `철의 여인들`도 남자에게 사랑받고픈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여성감독 비는 게이배구팀의 유일한 이성애자 차이에게 주장을 맡기고 팀은 승승장구한다.(왼쪽부터 차례로)
<소림축구> <슈팅 라이크 베컴> <워터 보이즈> <YMCA야구단> 등 최근 나온 스포츠영화들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타이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그렸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아이언 레이디>는 만듦새 자체가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사건의 전개는 충분히 짐작가능하고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너무 쉽게 일이 해결되며 화면의 연결은 거칠고 투박하다. 이 영화가 2000년 타이에서 <타이타닉>을 누릿흥행기록을 세운 것도 깔끔한 연출 덕은 아닌 걸로 보인다. 감독 용유스 통큰턴은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캐스팅”이라고 말했는데, 실로 그렇다. 보기만 해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9명 팀원은 트렌스젠더인 피아 역의 곡곤 벤자티곤만 실제 게이지만 각자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스포츠팀이 그렇듯 영화 속의 인물 역시 팀워크가 중요한데 <아이언 레이디>는 그 점에서 확실한 점수를 딴다. 상대의 성격을 보완하면서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는 ‘철의 여인들’은 오래 호흡을 맞춘 팀처럼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활퍼포먼스에 성공한다.
이 영화는 국내에선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됐고 2001년 베를린국제영화제와 샌프란시스코 레즈비언&게이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매끈하고 세련된 맛은 없어도 순박하고 흥겨운 <아이언 레이디>는 성적 소수자의 영화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다. 남동철 namd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