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내의 영혼이 딸의 몸에 들어온다면? 오는 10월11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비밀>은 딸의 몸을 빌린 부인과 그녀의 영혼을 사랑하는 남편의 딜레마라는 다소 선정적인 주제를 다룬 순정 멜로영화다. 센세이셔널한 설정이지만 영화는 이 문제를 그다지 무겁지 않게 다룬다. 오히려 젊은 딸의 육체를 가진 어머니와 그런 부인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에 안절부절 못하는 남편의 헤프닝에 초점을 맞추는 편. 소재가 다소 황당하고 반복되는 웃음과 눈물이 혼란스럽지만 이야기 전개는 자연스러운 편이다.
아내 나오코(기시모토 가요코), 딸 모나미(히로스에 료코) 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헤이스케(고바야시 가오루). 어느날 나오코와 모나미가 타고 있던 버스가 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둘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나오코와 모나미. 결국 나오코는 숨을 거두게 되지만 모나미는 의식을 회복한다. 슬픔의 눈물과 안도의 한숨이 헤이스케에게 동시에 몰려오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나오코가 죽는 순간 영혼이 모나미의 육신에 들어가게 된 것. 처음 같이 잔 장소, 첫 데이트 코스 등을 맞춰보며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헤이스케. 둘은 이를 ‘비밀’로 하기로 하고 나오코는 집에서는 아내지만 집 밖에서는 딸인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여고생 모나미의 몸을 빌어 학교로 돌아간 나오코는 소동 끝에 원하던 의대생이 되고 서클활동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나오코의 모습을 아버지와 남편의 상반된 마음으로 지켜보는 헤이스케는 괴로워하고 둘의 갈등은 점점 커져 간다. 그러던 어느날 잠에서 깨어난 모나미의 육신에 모나미의 영혼이 다시 찾아오는데...
영화의 장점은 튼튼한 원작에서 비롯된 섬세한 복선. 무리한 설정에 자칫 관객들의 실소를 이끌어낼 만한 장면들은 감독의 연출력이나 서정적인 배경음악에 묻혀 비교적 자연스럽다. 부인과 딸역을 무리없이 연기해낸 히로스에 료코는 이 영화로 일본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과 신인상을 휩쓸었다. 영화 <철도원>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얼굴이 잘 알려져 있다.
일본영화팬이라면 <하나비>와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봤던 기시모토 가요코와 <키즈리턴>에 나왔던 가네코 겐의 얼굴을 발견하고 반가워할 수도 있겠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9분. 1999년 작.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