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차지한 데 이어 <오아시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영화사 100년에 길이 남을 쾌거로 꼽힌다.
87년 <씨받이>(감독 임권택)의 강수연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는 했지만 이때만 해도 한국의 토속적 정서를 담은 영화에 대해 호기심을 보인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 덕분으로 풀이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61년 <마부>(강대진)와 94년 <화엄경>이 베를린영화제에서 각각 특별은곰상과 알프레드바우어상을 받은 것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5월 <취화선>의 수상 역시 빼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성에대한 배려와 그동안 임권택 감독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는 분석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오아시스>는 한국적 전통에서 탈피한 작품일 뿐 아니라 이창동 감독이 ‘신인급’을 막 벗어난 감독이라는 점에서 예전의 메이저급 영화제 수상과는 또다른 의미를 지닌다.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과 한국영화에 대한 안배, 그리고 감독의 업적을 배려하는차원을 떠나 영화 자체로 평가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해 3대 메이저 영화제 가운데 두 차례나 감독상을 연거푸 받은 것도 대기록으로 남을 만하다. 이제는 한국영화가 세계 영화계의 변방에서 당당히 중심으로 진입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오아시스>의 수상 가능성은 사실 본선 진출이 확정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지난 99년 <거짓말>(장선우)을 시작으로 <섬> <수취인불명>(이상 김기덕)등 4년 연속 본선 경쟁부문에 한국영화를 초청한데다가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출품작마감을 한달 이상이나 미루는 특혜를 베풀며 <오아시스>를 초청작 명단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으로 이미 해외영화제에서 높은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 언론과 평론가들의 뜨거운 관심을 표시했다. 여기에 <취화선>의 칸 영화제 수상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도큰 보탬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6일과 7일(현지시간) 두 차례의 언론시사회와 한 차례의 공식시사회에서도 "경쟁부문 중 최고", 사랑과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 영화" 등의 찬사를 받는가하면 현지 영화소식지인 필름데일리에서도 평균 8점이라는 고득점을 기록했다.
이번 수상은 이창동 감독의 연출 인생에서도 큰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밴쿠버영화제 용호상과 카를로비바리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데 이어 메이저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르게 됐다.
문소리는<박하사탕>에 이어 두번째 작품 만에 메이저 영화제 트로피를 거머쥠으로써 이른바 ‘월드스타’로 발돋움할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해외영화제 여배우 수상의 전통을 이어갔다. 87년 베니스영화제의 강수연(씨받이)을 시작으로 88년 몬트리올영화제 신혜수(아다다), 89년 모스크바영화제 강수연(아제아제 바라아제), 90년 낭트영화제 심혜진(그들도 우리처럼), 91년 몬트리올영화제 이혜숙(은마는 오지 않는다), 93년 상하이영화제 오정해(서편제), 2001년 로카르노영화제 김호정(나비), 2002년 판타스포르토영화제 장진영(소름) 등이 수상한 데 반해 남자배우가 세계 규모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93년 모스크바영화제의 이덕화(살어리랏다)가 유일하다.
<취화선>과 <오아시스>의 잇따른 쾌거로 한국영화는 자신감을 갖게 됐으며영화산업적 측면에서도 해외 진출의 기폭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