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앞으로 <성소>)의 개봉(13일)을 앞두고 마지막 믹싱 작업에 땀흘리고 있는 장선우(50) 감독을 3일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삼봉리 서울종합촬영소 녹음실에서 만났다. <서울예수>(1986, 선우완과 공동연출)로 데뷔해 <성공시대>(1988), <경마장 가는 길>(1991), <나쁜 영화>(1997), <거짓말>(1999) 등 만드는 작품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장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는 ‘가상현실’의 문제를 들고 나왔다. 꿈에서 어떤 암시를 얻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 <금강경>의 벼락같은 깨달음까지 녹여넣은 장선우 보살마하살의 이번 ‘설법’도 다양한 논란이 예상된다.
- 관객이 영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할 것 같다. 가령 액션 영화로 즐길 수도 있을 것 같고, 사회 현실에 대한 은유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고, 세상의 본디 모습에 대한 깨달음을 찾아가는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만든 계기가 있나.
영화를 만들기 전 꿈을 꿨어. 어떤 클럽에서 가준오라는 이름의 가수가 콘서트를 열기로 돼 있는데 가준오는 오지 않고 그의 포스터만 가운데 붙어있어. 재미있는 건 거기 모인 사람들이 가준오의 <섬>이란 노래를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야. 트로트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댄스곡, 발라드, 심지어는 창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어. 어떻게 저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하다 꿈에서 깼지. 그래서 영화에도 다양한 음악을 집어넣었어. 트로트, 댄스, 팝, 클래식에서 <반야심경> 독경소리까지! 그 꿈이 아마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암암리에 작용한 모양이야.
- 영화에서 게임을 로딩할 때와 스테이지가 올라갈 때 등장하는 나비가 매우 인상적이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꾼 뒤 “내가 나비꿈을 꾼 건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호접몽’을 연상시킨다.
영화에서 나비는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 기호야. 호접몽일 수도 있고. 그리스 신화에서도 나비는 마음을 뜻하던데. 카오스 이론에도 나비가 나오잖아.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
- 이야기의 결말이 이렇게도 풀리고 저렇게도 풀리는 구조가 재미있다.
(컴퓨터) 게임 자체가 ‘멀티 엔딩’ 구조야.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결말이 나오지.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억만년 동안 지구에서 날씨가 같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하던데. 이 얘기가 난 너무 신선하게 와 닿아. 근데 어떻게 사람들은 자연을 계량하고 판단하고 예측하고 그러는지 몰라. 난 그런 무지와 오만을 못 견디겠어. 자연이 일정하게 순환하는 거 같지만 그렇지 않거든.
- 시스템을 깨부순 뒤 ‘유 윈’(당신이 이겼다)이란 문구가 스크린에 뜰 때는 시스템이 매우 공정하다는 생각을 했다.
게이머가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도 결국은 시스템이 준 힌트에 따라서 이기는 거지. (영화에서 스테이지 3의 힌트로 나오는) <금강경>의 구절도 시스템이 힌트로 던져주는 거거든. 자기를 드러내고 정보를 제공하는 거지. 영화 전체를 게임으로 봤을 때는 시스템이 게이머를 안내하는 거야. 시스템의 힌트를 철저하게 푼 게이머에게는 일정한 기쁨과 행복을 제공하는 게 바로 시스템이야. 그 정도가 안 되면 시스템이라 할 수 없는 거지.
- 시스템에 도전해 그걸 깬 것 같지만 결국은 거기 갇힌 것 아닌가.
시스템을 부정하지만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꿈에서 깨고나면 현실을 다시 긍정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지. 깨달음에 도달하면 현실을 다시 값지게 본다고 하잖아. 새롭게 보는 거지.
- 영화 속 게임에서 마지막 단계에 등장하는 “모든 모습이 모습 아님을 본다면 본디 그러한 모습을 보리라(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는 <금강경>의 구절이 화제가 되고 있다.
보기도 전에 영화를 어렵다고 생각할까봐 죽겠어. 그건 그냥 힌트거든. 힌트가 메시지일 수도 있지만 힌트에 매달리면 골치 아프지. <금강경>도 힌트는 잊으라고 말하거든. 그거 몰라도 관객은 결말에 도달한다고. 너무 영화를 그쪽으로 몰고 가는 건 현학적 취향 아냐 한번 더 보고 싶을 때 그 때 힌트에 대해 생각해도 늦지 않거든.
- 두 번 보라는 권유로 들린다.
난 백 번도 더 봤어. 그러니 다른 사람도 많이 봤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덜 억울하지. (웃음)
글 이상수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