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야기해보고 싶다.
1993년 베이징 영화학교(베이징전영학원)에 입학했다.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내게 거대한 스승과 다름없었다. 풍부한 문화 생태를 갖춘 곳이었고, 역사의 변화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시절 베이징에 불어오는 돌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중요한 신념을 세웠다. 영화는 고립된 예술이 아니어야 한다. 영화는 폐쇄 속에 존재할 수 없다. 영화는 예술이므로 관객이 살아가는 동시대의 일부여야 한다.
- 당시의 결심을 조금 더 부연해준다면.
수많은 매체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려 든다. 그럴 때마다 동시대의 예술을 다양하게 접할 필요가 있다. 나 역시 학생 시절 다녔던 전시회와 그 당시 관람한 영화를 서로 융합시키며 성장했다. 사회 속에 살며 다양하게 직면하는 사건과 딜레마를 종합해온 것이다. 영화는 종합예술의 한 형태라고 배웠고, 영화 이외의 매체를 통해서도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간절히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나아가 내가 속한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영화와 함께 마주하려고 했다. 결국 영화와 사회 사이를 연결하려는 충동을 학교에서 배운 셈이다. 이처럼 영화는 사회 그리고 인접 매체와 언제든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 1997년 첫 번째 장편영화 <소무>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찍는 장편영화마다 칸, 베니스 등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2006년 <스틸 라이프>로는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었다. <플랫폼>으로 처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가게 됐다. 이전까지는 거장들이 만든 고전을 통해 영화를 배웠다면,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처음으로 현대영화의 현장에 몸을 던지게 됐다. 영화제는 언제든 내게 현대영화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만든다. 영화제를 돌며 세계와 만났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과 현실을 살지만 공통점이 많다는 걸 영화제를 통해 알았다.
- 그 경험이 2017년 핑야오국제영화제를 설립하는 데 영향을 끼쳤나.
국제영화제가 아니었다면 나는 세계 각국의 최신 영화들을 이해할 수도, 내 작업의 기준을 문화간 경계를 넘나드는 지구 차원에 둘 수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젊은 감독에게 영화제는 무대 위의 조명과 같다. 조명이 비쳐야 세상 사람들이 결과물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이 체험을 한 이상 나 또한 영화제에서 젊은 영화인들을 도와야 했다. 거의 천편에 달하는 영화가 중국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그중 상당수가 젊은 감독들의 입봉작이다. 인터넷망으로 각종 영화를 제한 없이 볼 수 있는 시절 아닌가. 그럴수록 관객들에게 주목할 만한 젊은 영화인의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일이 급선무다. 영화제라는 공공 브랜드가 전세계의 영화를 보급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생하길 바라는 마음에 영화제를 만들었다. 핑야오는 2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성(古城) 도시다. 중국 기층민의 생활상이 가장 생생하게 담긴 이 성 안에서, 국내외 영화인들이 대도시를 벗어나 민족의 뿌리 가장 깊속한 곳으로 들어오길 바랐다.
- 신생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서 고민 중인 영화제의 방향성이 궁금하다.
인터넷 시대의 영화제는 어디를 목표로 나아가야 할까 고민했다. 앞서 말한 영화예술의 본질을 떠올렸다. 핑야오국제영화제는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전시, 문학 낭독회, 사진전 등의 행사를 동시에 마련했다. 여러 갈래의 예술이 영화와 한데 어우러져 유토피아적 문화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커뮤니티 형태의 영화제로 진화한 셈이다. 영화제가 스크린에만 머무르는 걸 원치 않는다. 특히 청년문화의 자유가 결합한 축제로 자리하길 원한다. 영화제가 창출하는 문화자원이 공공 문화가 되도록, 영화제라는 ‘제도’의 혜택을 받은 선배 영화인들이 힘써야 한다.
- 감독 겸 작가로서 후배 영화인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것은.
업계에서 기술적 시나리오와 문학적 시나리오를 구분하곤 한다. 전자가 기술 전반이나 렌즈의 언어 등을 기록해둔 글이라면, 내 시나리오는 후자에 속한다. 현장의 동료들에게 영화가 표현하려는 분위기와 감정을 자세히 기술해두거든. 제품사용설명서 같은 대본은 익숙하지도, 선호하지도 않는다. 기법과 기술 너머 단어와 문장을 선택하는 작업을 강조하고 싶다. 시나리오의 문장을 윤색하는 과정은 감독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퇴고를 통해 전하려는 바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다듬고 줄이다 보면 상황과 맥락 안에서 캐릭터가 보일 반응과 감정이 선명해진다. 로케이션 헌팅 또한 중요하다. 나는 헌팅을 다니며 시나리오를 수정한다. 실제 공간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파생된다. 그때부터 장소와의 소통이 시작된다. 헌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숏을 구성한다. 이때 콘티는 전혀 그리지 않는다.
- AI가 인간의 예술 활동에 관여하기 시작한 시대다. 이 흐름을 어떻게 보나.
나만 해도 필름영화에서 디지털영화로 넘어가는 시기를 온전히 겪은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시대의 찰나, 혹은 사회의 감정선 하나를 포착해내기 위해 하나의 방식만을 고수할 수는 없다. 고전적 영화언어가 언제나 극렬한 변화를 겪는 세상을 그리는 데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가 감독으로 하여금 시대 조류에 부합하는 영화언어와 서사구조를 찾도록 강제하며 동시에 새로운 기술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영화의 역사는 늘 기술의 변화와 함께했다. 나 또한 감독으로서 기술 변화가 눈앞에 닥칠 때마다 이것이 영화의 제작 방식 그리고 관객의 상상력을 어떻게 확장시키는지에 주목하며 여기까지 왔다. 예컨대 시나 웨이보 같은 SNS가 중국 안에서 흥기하던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정보가 즉각적이고 다발적으로 쏟아지는데, 서로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파편화된 사건끼리 서로 엮이며 사람들의 일상을 점령했다. 그때의 감각을 <천주정>(2013)에 녹여냈다. <천주정>이 네 가지의 다른 에피소드를 파편화된 서사구조 안에 병합해낸 이유다.
- 영화의 구조 또한 동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영화의 구조 또한 시대의 구조에 발맞춰 변모해야 한다. <무용>(2007)을 찍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엔 의류 디자이너 ‘마커’ 개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다. 그런데 그를 취재하다 보니 의류산업을 둘러싼 거대한 산업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마커가 산업의 상류에 있다면, 그 하류엔 의류 공업과 공장노동자들이 있고, 동네 골목의 작은 옷 가게와 수선집, 저 멀리 광산촌의 가난한 재봉소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계획을 수정해 의류산업을 지탱하는 구조 전체를 담는 영화가 탄생했다. 수박 겉핥기식의 혁신은 의미가 없다. 설령 발전 방향이 불완전해도 작품이 시대와 조응하는 순간 뿜어져 나오는 내재적인 구조를 만지고자 한다. 구조 자체를 통해 세상에 내밀한 연결고리를 내걸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