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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959년의 파리는 바로 지금,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신작 <누벨바그> 리뷰와 여담들
이우빈 2026-01-01

“이것은 장뤼크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드는 이야기를, 그가 <네 멋대로 해라>에 실었던 스타일과 정신으로 찍는 영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누벨바그>의 각본 첫장에 썼다고 알려진 이 어구는 <누벨바그>의 핵심을 아주 간명하게 압축한다. <누벨바그>는 관객을 1959년의 프랑스 파리로 데려가는 타임머신이며, 그 호시절을 자연스레 체험하게 하는 매력적 속임수다. 이곳은 바로 한창 프랑스영화계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가 태동하던 시절, 영화사의 혁신이 일어나던 소용돌이, 모든 시네필의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지대, 장뤼크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알랭 레네 등 영화사의 거장들이 자신들의 젊음을 내뿜던 황금기다. <누벨바그>는 이 파도 속의 한때, 2022년 타계한 장뤼크 고다르가 그의 첫 장편영화인 <네 멋대로 해라>(1959)를 촬영했던 시기를 그려낸 극영화다. 202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뒤, 오는 12월31일 국내 개봉하는 <누벨바그>의 리뷰와 각종 트리비아를 펼쳐본다.

<누벨바그>의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영화비평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모인 젊은 프랑스 영화인들은 이른바 ‘누벨바그’(새로운 물결, new wave)라 불리는 경향을 내세우며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들은 이전 세대의 영화와 다른 시각적 표현 양식과 감독 개인의 스타일을 제시하며, 기성세대보다 훨씬 싼값에 여러 화제작을 찍어내는 중이다. 그러나 이 현상의 중심에 있는 29살 청년 장뤼크 고다르(기욤 마르벡)는 불안감을 숨기지 못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동료들이 먼저 연출자로 데뷔했고, 특히 자신보다 두살 어린 프랑수아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1959)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칸영화제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장뤼크는 비평가로서 인정받고 있지만, “최고의 영화비평은 영화 만들기”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장편영화 데뷔에 대한 압박감에 점차 시달린다. 그러던 와중, 장뤼크의 글을 좋아하던 영화 제작자 조르주 드 보르가르가 그의 첫 장편영화 제작을 돕기로 하면서 <네 멋대로 해라>만들기가 시작된다.

“누벨바그를 원한다면, 해일로 쓸어드리죠”라며 호언장담을 내놓는 장뤼크의 자신감과 달리 제작자 조르주는 점차 초조해진다. 감독 장뤼크가 완성된 각본을 주지도 않고, “전형적 서사에 없는 즉흥성과 돌발성”을 구현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탓이다. 제작자는 관객을 적당히 만족시키는 영화를 만들라고 하지만, 장뤼크는 어떻게 하면 관객의 기대를 배신할지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만하면 다행이지, 장뤼크는 주인공 파트리시아 역을 맡은 미국의 여배우 진 세버그(조이 도이치)와 시종일관 기싸움을 벌이고, 전례 없이 자유로운 연출 방식 탓에 제작진과도 잦은 마찰을 빚는다. 그럼에도 늘 장난과 여유로 자신을 무장 중인 장뤼크는 타인의 간섭에 아랑곳하지 않고 20일간의 촬영에 임한다. 조감독 피에르는 촬영 첫날 “천재는 재능이 아니라 절박한 상황의 결과다”라는 장폴 사르트르의 명언을 읊는다. 장뤼크는 이에 부응하듯 촬영 현장을 계속하여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누벨바그의 시공간을 체험하다

<누벨바그>는 35mm 필름과 흑백 화면, 아카데미 화면 비율(1.37:1, 초기 필름영화의 표준 화면비), 자연광에 기반한 로케이션 촬영, 핸드헬드 기반의 자유분방하고 간결한 시각적 구성을 택하며 이 영화가 정말 1959년에 만들어진 영화 같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현대에 1959년을 재현한 극영화와 당시에 촬영된 아카이브 푸티지의 중간 지대처럼 느껴질 법한 체험성을 구가하기에, 관객을 <네 멋대로 해라>촬영지의 참여자로 만드는 XR영화처럼 여겨질 정도다. 당대 파리의 모습을 적확하게 재창조하기 위한 시각효과 관련 예산 탓에 <누벨바그>는 프랑스에서 “소수의 시네필을 겨냥한 영화치곤 너무 비싸다”라며 투자에 난항을 겪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실제 1959년에 (기술적으로) 찍지 못했을 숏은 하나도 넣지 않았고” 배우들에게 “우리는 시대극을 찍는 게 아니라 1959년이란 지금을 사는 것”이라는 연출 의도를 명확히 밝힌 바 있다. 말 그대로의 시간 여행, <누벨바그>는 우리가 겪지 못했던 누벨바그의 시대를 살게 한다.

그렇기에 <누벨바그>는 장뤼크 고다르나 과거 영화인들에 대한 지나친 강조나 찬사를 한편에 접어둔다. 전기영화에 으레 나올 법한 실존 인물들의 사진이 등장하지 않고, 그들이 1959년 이후에 어떤 성취를 거뒀는지 중언부언 덧붙이지도 않는다. 역사가 된 인물들의 정체는 아주 간략한 성명 표기로만 처리된다. 작중 인물들이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그들이 정면을 보는 프로필숏을 삽입하고, 아래에 이름만 기재하는 식이다. 로베르 브레송, 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피에르 멜빌 등의 거장들과 <네 멋대로 해라>현장의 스틸사진기사인 레몽 코슈티에, 스크립터 쉬종 페 등은 1959년의 현재를 사는 인물로 똑같이 소개되며 모두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언제나 시간을 다루는 일에 능숙했던 연출자다. 12년 동안 촬영한 결과를 2시간45분의 러닝타임으로 압축했던 <보이후드>는 물론이거니와, 한 남녀의 우연한 첫 만남부터 몇번의 재회를 다룬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1969년의 미국 휴스턴을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불러온 <아폴로 10 1/2 - 스페이스 에이지 어드벤처> 등 그는 과거에의 향수를 영화라는 현재시제로 꾸준히 전환해왔다. 이것을 본 관객의 뇌리엔 영화 속 이야기가 마치 자신들이 겪은 일인 것처럼, 일종의 조작된 과거로 각인되어왔다. <비포 선셋>을 본 이들이 작품 촬영지인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에 가 자신들의 추억을 만끽하듯이 말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첫 비영어권 영화이기도 한 <누벨바그>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장뤼크 고다르와 누벨바그라는 거대한 존재에 짓눌리지 않고, 모든 시간을 관객의 실제로 수렴하게 만드는 연출자의 태도로 온전히 옹립되어 1959년의 파리를 고스란히 존중한다. 시종일관 가해지는 유머와 사뿐한 움직임들은 반세기의 세월이 쌓은 무게를 가볍게 도둑질하며 누벨바그의 시간을 현재화한다. 장뤼크는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들기 전 “아름답게 간결한 영화면 좋겠어요. 간결하게 아름답거나”라는 포부를 뇌까린다. 결과적으로 장뤼크는 성공했고, <누벨바그>역시 무척이나 간결하며 아름다운 영화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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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오드(A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