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의 일생>은 재난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영락없는 재해의 풍경으로 문을 연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더니 전세계의 땅이 꺼진다. 화재와 물 부족 사태가 속출한다. 인터넷도 수개월째 불통이 된다. 종말을 앞둔 사람들이 회피와 폭주로 양분하는 가운데 고등학교 교사 마티(추이텔 에지오포)는 간호사로 일하는 전 부인 펠리시아(캐런 길런)를 떠올린다. 마티와 펠리시아는 몇해 전 이혼했지만, 죽음이 머지않았다면 함께하고 싶은 상대로 서로를 고를 수 있는 사이. 오랜만에 마주해 각자 교실과 병동에서 겪은 혼란을 터놓던 그들은 신기한 우연에 이른다. 둘 다 아주 독특한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접한 것이다. 거기에는 한 남자(톰 히들스턴)가 미소 짓는 사진과 함께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이라고 적혀 있다. 언제부턴가 이 감사 인사는 거리의 광고판을 넘어 TV, 라디오에서까지 들려온다. 더는 우연일 수 없는 사건은 마티와 펠리시아뿐만 아니라 모두의 수수께끼가 된다. 아무도 척의 진짜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인류 최후의 밈이 된 남자, 찰스 척 크란츠는 과연 누구인가.
여기까지가 <척의 일생> 첫 챕터에 해당하는 3막의 발단이다. 스티븐 킹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과 공히 영화는 3막 다음으로 2막, 1막을 펼친다. 척이 광고 속 존재로만 등장하는 3막과 달리 2막에서는 척이 살아온 인생이 파편적으로 드러난다. 척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춤을 잘 추는 할머니, 수학을 예찬하는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가슴속에 리듬을 간직한 회계사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일군 그는 39살에 병상에 눕는다. 척의 39년을 기념하는 광고를 포함해 그 광고가 중심에 놓인 3막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스티븐 킹은 집필 후기에, 척의 광고 문구를 구상한 것을 시작으로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3막과 2막을 쓰고 1년이 흘러서야 대단원인 동시에 서사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1막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면 거장이 미스터리를 쌓고 해결하는 솜씨에 다시 한번 반하게 된다. 가장 어린 시절의 척은 1막에서야 등장하는데, 이때 관객은 척이 평생 염두에 둔 삶의 한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이는 영화의 엔딩까지 장식해 짙은 여운을 남긴다.
감독은 <제럴드의 게임> <닥터 슬립>을 차례로 만든 데다 <캐리>를 TV시리즈로 리메이크한다는 계획을 발표해 스티븐 킹 소설의 영상화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한 마이크 플래너건이 맡았다. <오큘러스> <위자: 저주의 시작> 등이 포진한 초기 필모그래피에서부터 호러를 베이스로 하되 섬세한 드라마를 연출하는 능력을 선보인 그는 기이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척의 일생>을 매끄러운 필 굿 무비로 매듭지었다. 지구 멸망의 이미지로 출발해 한 인간의 내면에 도착하는 이 영화는 “나는 거대하며 수많은 것을 품고 있다”고 긍정하는 월트 휘트먼의 시를 닮았다. 극에서 중요한 몫을 다하는 이 시구처럼, <척의 일생>은 한 사람이 품은 우주를 존중한다. 끝이 있기에 아름다워지는 그 완결성이 어쩐지 연말 극장가에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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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에게 춤은 정체성과도 같다. 그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재능을 학창 시절에 꽃피우고, 삶의 의미를 잃은 시기에도 거리에서 리듬을 타며 잠시 활기를 되찾는다. 버스커의 드럼 연주에 맞춰 펼쳐지는 그 댄스 신은 5분간 이어져 관객의 흥까지 돋우는데, 이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라라랜드> <바빌론>에도 참여한 안무가 맨디 무어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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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감독 배리 젱킨스, 2016
원작에서 비롯한 3막 구조, 중년에 접어들기 전인 한 남성의 생애로 된 스토리, 세명 이상의 배우가 그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공통점 외에도 <문라이트>는 <척의 일생>과 궤를 같이하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멀리서 돌아봤을 때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라기보다 순간의 명멸에 가깝다는 발견을 말이다. 어린 시절 마주한 잠깐의 반짝임이 삶 전체를 비추는 등대가 되기도 한다는 걸, 두 영화는 정성껏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