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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베스트영화10 해외영화 해설
김소미 정재현 2025-11-11

<하나 그리고 둘>에드워드 양, 2000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늘 타이베이라는 도시와 그 안에서 길을 잃는 개인들을 다뤘다. 대만 중산층 가족의 일상을 세 시간에 걸쳐 응시한 <하나 그리고 둘>역시 1980년대부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대만 사회의 피로와 공허함, 2000년대 초 경제성장의 둔화와 함께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한 혼란을 관류한다.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영원히 각인될 한 존재는 8살 소년 양양이다. 그는 카메라로 가족의 뒷모습만 부단히 찍는데, 영화가 우리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삶의 이면을 섬광처럼 비추는 매체라는 감독의 믿음이 천진하게 반영돼 있다.

정제된 영화언어는 때로 삶의 교차와 순환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대만 뉴웨이브 영화들의 한 종착지로서 <하나 그리고 둘>이 이를 방증한다. 30년 만에 타국에서 첫사랑을 만난 아버지 NJ와 기다리던 첫 데이트에 나선 딸 팅팅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명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에드워드 양은 도쿄와 타이베이, 중년과 청년, 회한과 기대를 정교하게 수놓으면서 삶의 순환성을 직시한다. 1996년 <마작>을 통해 자본으로 물든 도시 타이베이의 전락을 지켜봤던 감독은 시장의 외면과 이혼 등을 겪으며 도시를 떠났다가 4년 만에 돌아와 <하나 그리고 둘>을 완성했다. 2007년 이른 나이에 타계한 감독이 남긴 유작 <하나 그리고 둘>에 이르러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가능한 화해와 이해의 경지가 전해져온다. 감독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영화를 다시 볼 때, 할머니의 장례에 부쳐 양양이 읽는 편지는 “영화는 삶을 3배로 살게 해준다”는 극 중 대사와 더불어 담담한 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소년은 낙관 없는 희망을 읊조린다. “할머니, 어쩌면 언젠가… 할머니가 어디로 가셨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모두에게 알려주고 다 같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요?” /김소미

<멀홀랜드 드라이브> 데이비드 린치, 2001

난해함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 브>에 관한 한 최상의 찬사다. 할리우드의 명쾌함에 대항하는 린치의 영화 내러티브란 불가해함을 풍요의 동력으로 삼고, 잠든 직관을 일깨운다. 기실 난해하다는 인상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향한 가장 오래된 오해이기도 하다. 망가진 캘리포니아 드림 앞에서 배회하는 젊은 여성배우 다이앤(나오미 와츠)의 한때를 그리는 영화는 꿈과 현실이 뒤섞인 심리적 미로로서 강렬하고 통합된 정서를 전하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는 환상이 현실을 은폐하는 동시에 그 현실로 통하는 특권적 경로임을 보여주는 괴작들을 통해 영화매체의 본질을 성찰해왔다. 할리우드의 이면과 그로 인해 분열하는 개인의 초상을 담아낸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그 가운데 린치의 사후에도 밀레니엄을 전망한 암울한 예언으로서 여전히 현대적이며 찬란하다. /김소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언 형제, 2007

코언 형제는 장르영화의 관습을 다시 세운 미국영화의 철학자들이다. 혁신적 데뷔작 <블러드 심플>부터 일관되게 탐구해온 운명, 폭력, 도덕적 혼돈의 주제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역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이르면 풍자적 유머마저 줄이고 절제를 통한 압력이 무엇인지 증명한다. 기교를 배제하고 본질만 남김으로써 폭력이 낳는 절망을 응시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가장 격렬한 감정은 대체로 가장 고요한 순간들에 탄생한다. 코맥 매카시의 건조한 문체와 코언 형제의 암울한 미니멀리즘, 로저 디킨스의 절도 있는 촬영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동전 던지기로 타인의 생사를 결정하는 킬러 하비에르 바르뎀의 등장은 배우의 돌이킬 수 없는 성공마저 결정한 셈이 됐다. /김소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2015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한국이든 외신이든 ‘미친’ , ‘Insane’ 등 정신이상 상태로 호들갑을 떨게 만드는 액션 블록버스터다. 1985년 제작된 <매드맥스3>이후 30년 만에 부활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영화 역사상 가장 박진감 넘치는 로드무비이자, 독특한 세계관과 비주얼이 돋보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무비이자, 해방을 향한 몸부림을 그린 저항과 혁명의 영화”(황진미)라는 평가를 받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장르가 정점을 찍는 걸 목격”(듀나)하게 만드는 걸작으로 지난 10년간 자리했다. 실제 차량 스턴트를 포함한 아날로그 액션 스펙터클에 21세기 할리우드영화를 요약하는 컬러인 ‘틸 앤드 오렌지’(Teal and Orange)를 결합하며 고전의 품위와 동시대적 세련을 한몸에 보유한 시네마. 여성 액션 프로타고니스트의 역사에 퓨리오사(샬리즈 세런)라는 새 대들보를 세우기도 했다. /정재현

<화양연화>왕가위, 2000

대다수 현대 관객은 왕가위를 통해 홍콩을 배웠(을 것이)다.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세 이름, 왕가위, 양조위, 장만옥이 모여 만든 <화양연화>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필름 고유의 언어로 홍콩의 상을 새로 축조했다. 물론 여기엔 인물을 자극하지 않는 고요한 롱테이크, 협소한 프레임을 가로지르는 우아한 블로킹, 선문답의 대사 등 왕가위의 인장이 가장 원숙한 방식으로 드리워 있다. 개봉 당시 지아장커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양연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을 보며 다음과 같은 후기를 <씨네 21>에 보내왔다. “이 영화가 밀레니엄 시대의 새로운 유행이 될 것임을 직감한다.” 영화는 개봉 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작품 고유의 미학이 여전히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서 독보적 스타일로 전유되는”(<뉴요커>) 등 Z세대 관객이 경험한 적 없는 노스탤지어를 끊임없이 환기하며 생명력을 이어간다. /정재현

<큐어>구로사와 기요시, 1997

<로마> 알폰소 쿠아론, 2018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호러 장르는 동시대에 떠도는 무의식적 병폐를 공포로 치환해낸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큐어>는 1995년 일본 옴진리교도가 일으킨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이후 사회 전반에 팽배한 집단적 광기와 사이비종교를 향한 불안을 투영한 영화다. <큐어>가 표상하는 공포는 기요시가 다음으로 만든 <회로><절규>등의 ‘공포 3부작’에도 연결고리를 만들며, <큐어>가 되묻는 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의 정체성 위기는 21세기의 기요시가 연출한 가족드라마 <도쿄 소나타>나 시대극 <스파이의 아내>에도 국지적 징후로 드러난다. 7위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차지했다. 쿠아론의 전작 <그래비티>의 성취는 쿠아론 개인은 물론 산업 전체에 ‘이 이상의 기술과 미학의 총람을 영화가 제공할 수 있을까?’와 같은 공연한 회의(懷疑)를 던졌다. 그 근심을 <로마>가 혁파했다. 사적 기억이 공적 역사의 수평축에서 좌우로 회전하고, 시네마가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음향 기술이 흑백의 피사체를 따라 앞뒤로 운동한다. 현대 영화이론의 주요 쟁점이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녹아 있는 이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 배급됐다는 사실로도 당시 화제를 모았다. 이 시기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 스파이크 리의 등 넷플릭스가 동시대 시네아스트들에게 영화적 비전을 펼칠 양적 토대를 제공하고, 예술가들이 이를 질적 산물로 표변해낸 화양연화이기도 했다. 8위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은 <이웃집 토토로>와 더불어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성을 존속하는 유산이자 그들이 평생 넘고자 분투해야 할 이데아다. 단순 판타지가 아닌 현실의 논리 위에서 작동하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을 그렸다는 점은 애니메이션이 뻗어나갈 수 있는 세계의 영역을 무한정 확장했다. /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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