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멕시코시티, 작가 리(대니얼 크레이그)는 술과 마약에 중독된 채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리는 곁을 지켜줄 상대라면 가리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의 호의는 종종 불쾌한 추파로 오해되거나 자신을 겨냥한 조롱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외로움으로 방황하던 리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유진(드루 스타키)을 발견한다. 아름다운 유진에게 마음을 빼앗긴 리와 달리 유진은 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유진에게 “일주일에 두번 정도만 다정하게 대해달라”며 리는 어떻게든 유진과 마주할 시간을 가지려 한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로 유진에 대한 리의 갈망은 더욱 강해졌지만 유진은 여전히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어느 날, 리는 상대와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약초 야헤에 관해 듣는다. 어떻게 해서든 유진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리는 야헤가 있다는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의 정글로 유진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진의 숨겨진 진심을 확인하고자 한다.
<아이 엠 러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본즈 앤 올>에 이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다시 한번 사랑의 열망에 빠진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챌린저스>를 촬영할 무렵부터 각본가 저스틴 커리츠케스와 <퀴어>에 관해 논의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그와 합을 맞췄다. 소설가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의 자전적 소설이 바탕이 됐으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20대 때부터 해당 소설을 영화화하길 바라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현실적이지 않은 몽환적인 색감의 멕시코시티”를 원해 <퀴어>는 로마의 치네치타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 감각적으로 배치된 레스토랑과 거리를 오가며 리와 유진은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원작 소설의 기본적인 설정과 뼈대는 유지하면서도 리와 유진이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순간을 농밀한 몸짓을 더한 마술적 시간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다. 해당 시퀀스만큼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도전적인 연출 중 하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리와 유진은 교집합이 거의 없는 대조적인 위치에 서 있다. 청년과 중년이라는 시점 차이가 종종 강조되는데,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반면 무언의 초조함을 느끼는 리와 달리 유진은 시종 느긋하다. 리처럼 부유하진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정착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덕이다. 이러한 대비에는 자신이 퀴어임을 인정한 자와 부정하는 자 사이의 갈등 또한 주요하게 작용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배우들의 변화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헬레이저>, 드라마 <아우터뱅크스> 등에 출연한 드루 스타키는 유진 역으로 전작에서 발견하지 못한 매력을 선보인다. 대니얼 크레이그는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는 리로 분해 극의 화자로서 리의 예민한 내면을 전한다. 오랫동안 제임스 본드의 영역 안에 머물렀던 그의 또 다른 일면이 낯설고 반갑다. <퀴어>는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이 영화로 대니얼 크레이그는 제96회 전미비평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제31회 미국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호명됐다.
close-up
리와 유진이 처음 만난 순간, 난데없이 닭싸움이 펼쳐진 멕시코시티 거리의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리는 오직 유진에게만 시선을 고정한다. 슬로모션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유진을 바라보는 리의 표정은 사랑에 빠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대변한다.
check this movie
<본즈 앤 올>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2022
정체성 혼란을 겪는 상대를 거울 삼아 스스로를 돌아보고, 함께 일탈성 여행을 떠나는 리와 유진의 모습은 일면 <본즈 앤 올>의 리(티모테 샬라메)와 설리(마크 라일런스)를 떠올리게 한다. 긴밀히 결속된 리와 설리 같은 관계를 <퀴어>의 리 또한 갈망했겠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