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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픔은 아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모두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이우빈 2025-02-26

고등학생 인영(이레)의 삶은 겉보기에 무척 고달프다. 단둘이 살던 어머니가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마땅히 자신을 지켜줄 어른과 집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자기만의 밝은 성정을 잃지 않으려는 인영은 소꿉친구인 도윤(이정하), 동네 약사이자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주는 동욱(손석구) 등에게 기대며 긍정적인 마음을 이어간다. 특히 인영에게 커다란 삶의 동기가 되어주는 것은 예전부터 몰두해오던 한국무용이다. 예술단 멤버로 공연을 준비할 때만큼은 인영의 아픔이 모두 날아가는 듯하다. 인영에게 무용은 어머니가 젊은 시절 못다 이룬 꿈이자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려 시작했던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단 내엔 인영의 아픈 상황을 핑계 삼아 그를 괴롭히는 학생들이 있다. 유독 인영을 견제하는 것은 매번 무용단의 센터를 도맡는 동급생 나리(정수빈)다. 인영은 나리를 비롯한 학생들과 갈등하면서도 또 다른 희망의 길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무용단의 예술감독이자 완벽주의적 성격의 무용수인 설아(진서연)다. 원래는 마녀라 불릴 만큼 한 방울의 눈물도 없는 듯한 인물인 설아는 인영의 밝은 마음에 점차 감화되며 인영을 보호해주는 어른의 역할을 자처하기에 이른다. 이 관계의 진전 속에서 인영은 예술단의 60주년 특별 공연을 위해 연습에 매진한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이하 <괜괜괜>)의 서사적 뼈대는 분명히 밝지 않다. 부모를 여의고 갈 곳이 없어 무용단 연습실에서 몰래 사는 인영, 또한 부모의 압박으로 인해 젊은 시절을 온갖 압박 속에서 사는 나리, 어른이 되어서도 따스함을 지니지 못한 채 마음을 닫아버린 설아까지 인물들의 현실적인 면면은 어렵기 그지없다. 그러나 영화가 견지하고자 하는 긍정의 분위기는 이 모든 어려움을 타파한다. <극한직업>의 조감독이자 <멜로가 체질> <유니콘> 등을 연출한 김혜영 감독의 코미디적 터치와 캔디형 소녀 인영의 저돌적인 입담이 영화의 톤 앤드 매너를 밝게 만드는 것이 그 근간이다. 더하여 <괜괜괜>이 밝은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주요 인물들의 관계와 유사점을 기반으로 한 점차적인 감정 교류에 있다. 주인공인 인영, 설아, 나리의 공통점은 무용을 시작한 이유가 같다. 어머니가 했던 것이고, 자신들이 이어서 그 꿈을 이루길 바랐기 때문이다. <괜괜괜>은 이러한 인물들의 욕망을 중점으로 그들 사이의 끈을 단숨에 엮기보다는 은근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각자가 서로를 물들이는 과정을 너무 빠르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 내에서 그려낸다. 무작정 인물들을 슬픔 혹은 기쁨이란 이분법의 감정 속으로 매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감정선을 모두 겪어가며 털어내고 일어서는 모습을 좇는다. 이른바 ‘불행 포르노’로 불리며 특정한 감정의 탁류에 매몰되는 영화들과 달리 <괜괜괜>의 넘실거리는 감정 구도는 최근 극장가에서 보기 드물었던 산뜻함을 관객에게 안겨주려 한다. <괜괜괜>은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정곰상(제너레이션 K플러스)을 받았고 부산국제영화제, 베이징국제영화제, 시드니영화제 등 다수의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영했다.

close-up

<괜괜괜>의 핵심 소재는 역시 육고무를 비롯한 한국무용이다. 북, 검, 장구 등 한국적 도구가 사용되는 무용 시퀀스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수놓는다. 인물들이 지닌 감정들의 덩어리가 단숨에 해소되는 듯한 무용 공연 시퀀스의 시청각적 쾌감도 <괜괜괜>의 특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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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온 컴온> 감독 마이크 밀스, 2021

<괜괜괜>의 중핵은 역시 인영과 설아의 관계다. 겉보기에 이상적인 삶을 사는 듯한 설아의 불완전한 구석을 인영이 채워주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역전 관계가 눈에 띈다. 전반적인 소재와 분위기는 다소 다를지라도, 근래 개봉했던 <컴온 컴온>에서 어른 조니(호아킨 피닉스)가 조카 제시(우디 노먼)의 사려 깊은 동심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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