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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극장, 관객 - 영화의 존재론을 묻는 거장의 영화들
이우빈 2024-11-14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고루한 질문에 여전히도 명쾌한 답이 없는 지금, ‘영화에 대한 영화’, 이른바 메타 영화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 역시 쉽진 않다. 그럼에도 지난 130년의 영화사에서 ‘영화에 대한 영화’로 이름을 떨쳐온 몇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8편의 영화와 감독들을 차근차근 더듬다보면 메타 영화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각자의 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버스터 키턴의 <셜록 주니어> <카메라맨>

<셜록 주니어>

<카메라맨>

메타 영화의 성질을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는 버스터 키턴일 것이다. 그가 1924년에 만든 <셜록 주니어>에서 버스터 키턴은 현실에선 비루한 영사기사로, 꿈과 같은 스크린 속 세계에선 걸출한 탐정 셜록 주니어가 된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 등 제4의 벽을 깨면서 영화와 현실의 질료를 뒤섞는 영화적 재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뒤 버스터 키턴은 <카메라맨>을 통해 한 사진기사가 카메라의 능력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다시금 영화 매체의 소중함을 표현했다.

<선셋 대로>와 할리우드

<선셋 대로>

영화에 대한 영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화사에 대한 영화 중 가장 유명한 고전이다. 최근 공개된 <바빌론>이나 <파벨만스> 등이 20세기 할리우드의 격동의 영화사를 다루기 이전, 1950년에 빌리 와일더는 이미 <선셋 대로>를 통해 할리우드의 황금시대를 갈무리했다. 스튜디오 중심의 프로덕션이 주였던 무성영화 시대의 한 스타가 유성영화의 도래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을 장르물의 거장 빌리 와일더식의 필름누아르에 결부했다.

<이창>과 영화의 속성

<이창>

영화 매체가 지닌 어떠한 속성을 작품의 서사에 잘 녹여냈다면 그것 역시 메타 영화라고 부름직하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이창>은 영화가 지닌 관음증의 성질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다리를 다친 탓에 종일 방에 앉아 있는 사진작가 제프(제임스 스튜어트)가 카메라를 통해 맞은편 아파트를 훔쳐보다가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이야기다. 마치 극장의 관객이 아무런 방해 없이 스크린의 화면을 관음하듯이 말이다. <이창>의 관음증적 테마는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등에서도 이어진다.

<8과 1/2>과 유럽 메타 영화

<8과 1/2>

할리우드가 자신들의 영화사에 집중했다면 유럽의 영화 작가들은 창작자의 내면과 영화의 양식적인 미감에 더욱더 파고드는 경향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영화 작가였던 이탈리아의 페데리코 펠리니는 영화감독 귀도를 주인공으로 한 <8과 1/2>(1963)을 통해 한 영화감독의 초현실적 상상과 분열, 현실의 고심을 그려냈다.

<클로즈업>과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클로즈업>

20세기 이란의 영화계를 이끈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메타 영화라는 용어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한 감독 사칭범의 이야기를 논픽션과 픽션의 방식을 혼재해 만든 <클로즈업>(1990)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87)를 위시한 ‘지그재그 3부작’ 등을 통해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흐리는 고유의 작법을 구사했다. <사랑을 카피하다>와 같은 그의 다른 작품 역시 꾸준히 메타 영화의 맥락을 곁들였고, 그의 유작인 <24프레임>은 영화적 이미지의 본원을 찾는, 영화 매체가 스스로 만든 메타 영화에 가깝다.

<안녕, 용문객잔>과 극장의 쇠락

<안녕, 용문객잔>

차이밍량이 2003년에 만든 <안녕, 용문객잔>은 메타 영화 중에서도 ‘극장’이란 공간 자체를 영화의 속성으로 강조한 작품이다. 큰 서사 없이 한 황량한 극장의 풍경을 그린다. 기계적으로 청소하는 직원들, 얼마 없는 관객들, 극장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 영화를 상영 중인 영화관 곳곳의 초연한 모습들. 21세기 이후 본격화될 극장의 죽음을 일찍이 예견한 <안녕, 용문객잔>의 애수는 지금의 관객에게도 크게 와닿을 것이다.

<홀리 모터스>와 영화의 죽음

<홀리 모터스>

한 사업가 오스카(드니 라방)가 수명의 인물로 변하며 <홀리 모터스> 안에 여러 영화적 상황을 만든다. 영화의 죽음은 필름 시대의 종말, 혹은 무성영화의 소멸 등을 논할 때마다 나온 논제다. 하지만 <홀리 모터스>가 극장의 죽음을 드러냈을 때 퍼진 충격은 작지 않았다. 관객들이 미동도 하지 않는 조용한 극장. 이곳을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우두커니 바라보는 오프닝 시퀀스를 보노라면 숨 막힐 듯한 애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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