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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코프] 영화, 나의 생명 한국영상자료원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개막식과 <만다라> 대담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24-11-01

올해 95살. <화녀> <장군의 아들> <서편제> <취화선> 등 한국영화사의 수작들을 빚어낸 정일성 촬영감독이 개인적으로 보관해오던 영화 자료 6800여점을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했다. 이를 기념해, 한국영상자료원은 <수집가의 영화> 기획전의 첫 주인공으로 정일성 촬영감독을 초대했다. 10월25일부터 11월6일까지 <화녀> <이어도> <만추> <> <> <길소뜸> <안개마을> <최후의 증인> <서편제> <취화선> 등 정일성 촬영감독이 촬영한 걸작들이 상영된다. 10월25일 열린 개막식에서는 2010년 임권택 감독 전작전 당시 2K 복원한 <만다라>(1981) 상영이 이뤄졌다. 무대에 오른 정일성 촬영감독이 남긴 기증의 변과 개막작 <만다라> 상영 후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과 나눈 대담의 일부를 전한다.

영화 현장의 충실한 기록자이기도 한 정일성 촬영감독이 1992년과 2020년에 걸쳐 기증한 총 6837점의 자료를 선별해 시네마테크KOFA 로비에 전시했다. 개막식인 이날 극장을 찾은 관객 들이 상영관에 들어서기에 앞서 한국영화사의 카메라 뒤편을 일람 중이다. 김학성 촬영기사의 조수로 경력을 시작한 1950년 초부터 50여년간의 기증 자료를 살피는 이들의 발걸음이 한곳에 긴 시간 머물렀다.

“그동안 총 38명의 감독과 약 138편의 영화를 찍었다. 안종화, 김기영, 김수용, 유현목, 하길종, 이두용 등 많은 동료들이 이제는 고인이 되었다. 나도 살아 있는 동안에 뭔가를 하고 죽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그동안 3~4군데의 대학 및 기관에서 수집품 기증 요청을 받기도 했지만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하면 대학생뿐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인까지 자료를 폭넓게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료원에 기증키로 결정했고, 사람들이 한국영화사를 몸소 체험하면서 또 다른 자기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뜻을 밝혔다.

기획전 상영작 중 <황진이>(1986)로 정일성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배창호 감독이 개막식 무대에 올라 축하의 뜻을 전했다.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개막식에서는 지금껏 정일성 촬영감독이 촬영한 역대 필모그래피가 상영됐다. KMDb에 공식 등재된 작품 기준 총 95편. 그중 <만다라>는 정일성 촬영감독의 투병 후 영화계 복귀작이자 임권택 감독의 80년대 전성기를 여는 영화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상영 후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과 정일성 촬영감독이 관객과 마주 앉았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만다라>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의미를 짚었다. 1987년 <을하> 촬영 현장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대수술을 했고, 1980년 유현목 감독의 <사람의 아들> 촬영 중 직장암으로 두 번째 대수술을 했다. 큰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임권택 감독이 병실에 찾아와 <만다라> 대본을 주면서 촬영을 부탁했다. 그때 임권택 감독이 나를 일으켜세워준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송장하고 일하지 말라’고 심한 농담도 할 정도였다. 건강을 회복해 다시 촬영장에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침상에 누워서 매일 콘티를 구상했고 몸도 절로 좋아졌다. 나를 죽음에서 구해준 감독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1980년에 <만다라>를 준비하면서 독재정권을 향한 나의 분노를 이 영화에 녹이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필터를 사용해 컬러영화지만 때로 색채가 거의 보이지 않게끔 묵화같이 찍고 싶다고 했더니 임권택 감독이 내 뜻을 받아들여주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당대 군부독재가 민주화운동에 가하는 탄압을 지켜보면서 느낀 절망이 <만다라>에 스며들었다고 회고한다.

구도승 법운(안성기)과 지산(전무송)의 방랑기를 담은 <만다라>의 결말부에는 44년 전의 영화라기엔 믿기 힘든 화재 장면이 나온다. 김홍준 원장이 산속의 사찰에 통째로 불붙인 촬영 장면의 비하인드를 묻는 질문에 정일성 촬영감독은 “카메라 단 2대로 찍었다. 각 포인트에 말뚝을 박아놓고 삼각대에 미리 높이, 앵글 등을 표시해둔 다음 실시간으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촬영했다. 마지막에는 미리 대기한 소방차와 모든 영화 스태프들이 총동원되어 잔불을 껐다”고 답했다. 그는 <만다라>의 화재 장면을 두고 얼마 전 재개봉한 <희생>에 대한 감상을 덧붙이기도 했다. 일가를 이룬 95살의 노장은 스벤 뉘크비스트의 촬영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일관된 작품 세계를 칭송하면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부끄러워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는 깊은 존중과 겸양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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