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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간은 울어야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 소설가 천쓰홍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24-10-17

대만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 살며 작품 활동을 하는 소설가 천쓰홍의 이력에는 영화배우, 번역가라는 직업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대만적이기 때문에 널리 읽힐 수 있었을 데뷔작 <귀신들의 땅>은 퀴어와 여성, 영미문학의 고전과 귀신들, 가족과 공동체를 아우르며 숨막히는 이야기를 펼쳐냈다. 그가 서울국제작가축제와 <67번째 천산갑> 출간을 맞아 서울을 찾았다.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오랜 우정과 헌신, 상처와 이해를 담아낸 <67번째 천산갑>을 비롯해 그의 성장기와 소설, 영화 그리고 삶에 대해 들었다.

- <귀신들의 땅>이라는 제목은 대만 자체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중국어로 귀신이라고 할 때 ‘귀’(鬼)라는 글자를 쓰는데, 일상생활에도 많이 쓰이는 단어다. 이 단어는 ‘아직 문명에 도달하지 않은 것’을 뜻하기도 하니까, 뜻을 한정지을 수 없다. 또한 대만 사람들은 대만을 ‘귀도’(鬼島, 직역하면 귀신섬이라는 뜻으로 한국의 ‘헬조선’과 유사한 뉘앙스의 표현.-편집자)라고도 부른다. 자국에 대한 불만을 뜻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을 처음 쓸 때는 소설 내용을 통해서 대만 사회나 국가를 은유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용징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쓰고 싶었다. 왜냐하면 당대의 인물들은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갈 뿐, 역사적 의미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국가에서는 사람도 귀신도 원하는 대로 존재하기 어렵다. 이 소설을 쓰며 생각해보니 70~80년대 대만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연극을 하듯 살았다. 일종의 연기를 해야 했는데, 연기를 오래하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진짜 귀신이 되기도 한다. <귀신들의 땅>에는 귀신도 많고 사람도 많은데, 다 읽고 나면 누가 귀신이고 누가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일부러 그렇게 썼다.

- 80년대 이야기여야 했던 이유는.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을 좋아한다. 당시 신문을 보면 다 기뻐하기만 한다. 세계는 평화롭고 우리는 모두 행복하다는 프로파간다가 고스란히 보인다. 지금 관점으로 그 시대를 돌아보면 다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당시에는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그대로 믿었다. 1982년인가 83년, 그러니까 대만에 계엄령이 있던 시절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모든 곳에 대만 총통의 사진을 걸어두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당시 총통이던 장징궈의 사진을 보더니 두꺼비처럼 생겼다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웃으니까 어머니가 “너 어디 가서 이런 얘기 절대 하면 안된다. 밖에서 얘기하면 우리 집은 다 큰일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가난하게 성장해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정치는 더더욱 모르셨는데도 총통을 욕하면 집에 큰일이 난다는 건 알고 계셨던 거다. 지금은 그때를 ‘백색공포’ 시대라고 부르는데,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그러한 명명이 아직 없던 현재를 살았다. 그랬던 이들의 삶을 그리고자 했다.

- 국가적 억압하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 그 황량한 풍경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작가의 자전적인 부분도 묻어나는 이야기인데 소설을 쓰기 위해 가족을 취재하기도 했는지.

대만에 가서 조사를 많이 했다. 고향에 가서 가족들을 취재하기도 했다. 가족을 취재해보니 모두의 기억이 다 달랐는데, 그 다른 기억을 한데 모아보니 사실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더라. 그런데 백색공포 시대를 살았던 우리 가족은 그 시대를 정부측의 발표에 따른 표현으로 각색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정부가 사람들이 말하기를 원했던 프레임대로 가족의 기억이 바뀐 것이다. 하루는 삼촌이 우리는 그런 권위적인 사회하에 살지 않았다고, 행복하고 자유로웠다고 말하다가 TV를 보고 나라 욕을 했다. 그러고 덧붙이기를,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는 정부를 욕할 수 없었구나. “근데 너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돼.”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도 권위주의 사회가 남긴 그림자가 있는 것 같다.

- 한국에도 귀신 이야기가 많다. 때로는 복수하기 위해 등장하는 죽지 않는 존재이며 비극적인 슈퍼히어로이기도 하다. 또한 해소되지 않는 원한을 품고 죽은 소수자/마이너리티의 존재를 드러내는 극적 장치이기도 하다. 귀신 이야기는 비현실과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면서 현실을 깊게 다루는 데 성공한다. <귀신들의 땅>이 여러 나라에 번역되면서 ‘귀신’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한 해석의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만에서도 무서운 귀신은 다 여자고 남자 귀신은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억압받다 죽은 뒤에 초자연적인 힘으로 복수를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권위적인 사회에 대항해, 민간 전승을 통해 피드백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귀신은 나의 친구구나 싶어서 무섭지 않더라. 그런데 이 책을 출간할 독일 출판사를 물색하던 때 모조리 거절을 당했었다. 대다수의 출판사가 했던 말이 “귀신이 왜 이렇게 많아요”였다. 독일에서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언어에 귀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독일에서 친구들을 불러서 영화 <링>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대만에서 처음 <링>을 봤던 때 너무 무서워서 TV를 이불로 감싸둘 정도였다. 그런데 독일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해를 못했고, 저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같이 본 아시아 친구들은 너무 겁을 먹어서 집에 돌아가기 무서워할 정도였는데. 미국에서 영어판이 출간되었을 때 북토크를 했는데, 귀신이 어떻게 생겼을 것 같냐고 물어보니까 흡혈귀나 좀비를 떠올리더라. 하지만 <귀신들의 땅>의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문화권에 따른 차이가 없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

- 작가가 성장하는 동안 영향을 받은 대만의 문화에 대해 듣고 싶다. 한국에서는 최근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실제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성장기를 보낸 천쓰홍 작가는 어떤 대중문화의 영향하에 컸나.

청춘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가장 힘들었고 비극적이었기 때문에 사실 별로 안 좋아한다.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건 80년대 대만 뉴웨이브 영화다. 극히 권위주의적인 시대에 그 많은 뛰어난 감독들이 나왔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용징에는 영화관이 없어서 누나를 따라 다른 지역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그때 뉴웨이브 영화를 많이 봤는데 보고 나서 “영화 이상해”라는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자라고 나서 다시 보니까 참 슬픈 영화들이었더라. 그 시절 영화를 보면서 언젠간 나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매혹도 빼놓을 수 없겠다.

어둠 속에서 다 함께 웃고 울잖나. 그 속에서 나라면 어떻게 썼을지를 공상하기도 했다. 성장기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 중에는 <결혼 피로연>이 있다. 사실상 내 삶을 구원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보수적인 사회임에도 영화관 안에서 남성간의 키스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영화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 이런 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구나, 어떤 곳에서는 이렇게 긍정받을 수 있구나를 알게 해주었으니까. 리안 감독은 나중에 <브로크백 마운틴>도 찍었는데, 그 영화는 베를린에서 봤다. 게이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극장이었다. 대만 감독이 미국에서 찍은 영화를 베를린에서 본 셈인데 옷장을 열어 셔츠 위치가 바뀌어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극장 안의 50~60대 게이들이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 그리고 둘>은 대만에서 상영이 불가한 상황이어서 파리에서 봤다. 결혼으로 시작해 장례로 끝나는 이 영화 역시 마지막에는 극장의 모두가 울었다. 극장에서 함께 운 일행들과 헤어져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걷다 귀가했다. 영화와 이야기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실감을 했던 순간들이다.

-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헤드윅> 같은 뮤지컬을 보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인 10대는 해외 대중문화에 더 친연성을 느낀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도 한다. 보수적인 ‘여기’보다는 자유로운 ‘바깥’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감각 말이다. 이런 욕망이 창작으로도 이어졌으리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어떠했나.

대만에서 ‘헤드윅’ 분장을 다 같이 하고 영화를 보는 행사가 있었다. 나는 당시 다른 행사에 들러야 해서 혼자 다른 복장을 하고 갔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웃음) 나도 영화 속 헤드윅과 같았다. 특히 영화를 통해 자유를 느꼈다. 스크린은 창문과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나면 저쪽 세상으로 넘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대만 사람들은 영어 이름을 다들 가지고 있고 내 영어 이름은 케빈인데, 이 이름 역시 영화와 관계가 있다. <플래시댄스>에 케빈 베이컨이 나오는데, 춤을 금하는 보수적인 소도시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 말이다. 하지만 같은 걸 봐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긴 하더라. 어머니와 함께 미국영화를 보면 어머니는 “저기 위험하니까 가지 마라”라고 했는데 나는 ‘가고 싶은데’라고 생각하는 식이었으니까. 영화와 문학을 통해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용징만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아주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고. 내가 남성을 좋아한다는 것, 남성을 사랑한다는 것을 속일 필요가 없다고. 젊었을 때의 나는 사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영화와 책을 통해 살아남아야만 언젠가 저 멀리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 <귀신들의 땅>은 두 번째 읽을 때 더 보이는 게 많은 소설이었다. 치밀하게 짜인 구조 속에서 복선이 회수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독자들의 끈기와 열정을 믿고 쓰여진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쓰는 동안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무엇이었나.

사실 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때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독자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책이 300부 정도 팔릴 테고 그중 200부는 누나들이 사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누나들은 책을 사긴 해도 읽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한국 독자들이 남긴 글도 다 찾아 읽었는데, 책 앞부분을 읽다가 화가 나서 글을 쓴 독자도 있었다. 이 글을 쓰던 때 작가인 나부터가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독자도 같이 고통스러워한다는 데서 약간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웃음) 소설에 복선을 넣으면서 그걸 찾는 독자들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출간이 되고 나니까 독자들이 다 찾아내더라. 독자들이 두번 읽었다, 세번 읽었다고 할 때면 나는 내가 작가로서 최정점에 올랐구나 생각하기도 한다.

- <67번째 천산갑>은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우정을 그린다. 대만에서는 ‘게이미’(Gay蜜)라는 단어도 쓰인다. 가부장제의 억압이라는 환경하에서 무엇이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남성의 우정을 끈끈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둘 다 이등시민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차등과 차등간에, 이등과 이등간에 재미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함께 자랐다. 중국에서는 ‘청매죽마’라는 표현을 쓰는데 어렸을 때부터 자란 우애 깊은 이성친구들이 결국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냥 친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커플이 될 거라는 전제를 담아 어렸을 때부터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만일 이차성징이 이루어지면서 성정체성을 인식했는데 한쪽은 게이고 한쪽은 헤테로라면 청매죽마 개념이 맞지 않게 된다. 그러한 변화가 흥미로워서 소설에 집어넣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또 두 사람 다 영화배우라는 설정이다. 사람들은 아역배우라고 하면 순진함만을 떠올리지만 아이가 배우로서 현장에서 활동하게 되면 그 아이는 순진함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릴 때 인기가 있었다 해도 성인이 되어 그 인기를 이어가지 못하면 심리적으로 위기를 겪기도 한다. <67번째 천산갑>의 주인공들은 어렸을 때와 달리 성인이 되어 전처럼 빛나지 않게 된 배우들이며, 그런 상황에 재회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 <67번째 천산갑>을 읽으면서 지배적으로 느낀 감정은 고독이었다. 제목으로 쓰인 천산갑의 은유 또한 고독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멸종위기종인 천산갑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 없어 동그랗게 몸을 말거나 굴을 파고 들어가는 습성이 있는데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취약한 이들을 상징한다). 고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과 고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지금의 천쓰홍 작가를 만드는 데 있어 더 중요한 방향성은 무엇이었나.

모든 소설은 고독을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고독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핵심 과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일을 통해서 고독감을 적게 느낀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만, 잔인하게도 다른 일을 할수록 더욱 고독을 느끼게 된다. <67번째 천산갑>의 두 주인공은 모두 고독한 캐릭터인 데다 마지막은 열린 결말에 가까운데,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이 두 캐릭터는 반드시 자신만의 고독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독이 뭔지 알아내고 고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고독을 마주하는 과정을 거쳐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독을 마주하는 방법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 있다. 사람은 문제를 해결할 때 자기 개성을 드러내게 되는데, 고독을 해결하는 데서 자기 본연의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 <귀신들의 땅>과 <67번째 천산갑>을 다 읽고 나서, 천쓰홍 작가는 멜로드라마의 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마음을 많이 쓰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멜로드라마가 특별히 좋아하거나 애착을 느끼는 장르인지, 아니라면 독자로서 어떤 장르의 이야기들을 특히 즐기는지 듣고 싶다.

비극을 사랑한다. 비극적인 건 다 좋다. 내 생각에 문학적인 주류는 비극이다. 죄다 비극이다. 아마 웃기고는 싶지만 웃기는 글을 쓰는 게 너무 어려워서 안되는 것 같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모두가 너무 기쁘고 행복한 모습을 올린다. 인플루언서가 우는 모습을 올릴 때조차도 하나의 연기일 뿐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슬픔을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슬픔 역시 건강한 정서적 반응이니까. <귀신들의 땅>을 읽은 독자 중에 지하철에서 통곡을 해서 다른 승객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문명사회에서 문명인이 공공장소에서 슬퍼하고 우는 것을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왜 우는 걸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그래서 나는 슬픈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고 내가 쓴 글을 읽고 너무 슬펐다고 하면 매우 기쁘다.

- <67번째 천산갑> 속 그녀와 그는 어려서부터 낭트에 가기로 약속했지만, 어른이 되고 늙어서 함께 길을 가면서도 끝내 그곳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 ‘도달하지 못함’은 무척 아름답지만 또한 슬프다.

영화를 찍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 자체가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게 찬란한 해피엔딩을 보는 게 너무 힘들다.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어딘가를 가려고 하지만 결국 갈 수 없는 그곳을 목표로 한다. 소설은 혼자 쓰기라도 하지, 영화는 스태프들이 있잖나. 차이밍량 감독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배우 이강생을 포함한 최소한의 스태프로 작업을 하지 않나. 행자 연작을 통해 세계를 다니면서 대본도 없이 투자도 받지 않고 그냥 찍는데, 결국 도달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고독을 느끼면서도 그 작업을 계속해간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독일에서 차이밍량 감독의 통역을 여러 번 했는데,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자꾸 자는 게 신경 쓰이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감독님 말이, 요즘 문명사회에서는 다들 불면증이 심해서 자신의 영화를 보고 잠을 잔다면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시더라.

- 천쓰홍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슬픔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울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인간은 울어야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다고 믿는다. 내가 만약 사장이 된다면 회사에다가 “울고 싶으면 울어라”라고 적어서 붙여놓고 싶다. 내게 다른 사람을 울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독자들이 사인을 받으러 올 때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 눈물이 너무 소중하다. 중국어에 눈물은 진주라는 말이 있다. 독자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말은 내가 그만큼 진주를 얻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독자 여러분, 진주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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