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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정확하고 싶었다
김소미 2024-06-05

6월5일 개봉하는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줄곧 그로테스크한 감각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렸던 조너선 글레이저가 역사의 표층을 자신다운 언어로 파헤친 충격적 시도라 할 만하다. 유대계 영국인인 글레이저 감독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올라 할리우드 청중이 보내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비판했듯,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일상을 해부하는 위험한 길을 걷는다. 조너선 글레이저의 영화가 국내 개봉한 것은 <언더 더 스킨>(2014) 이후 무려 10년 만. <섹시 비스트>(2000), <탄생>(2004), <언더 더 스킨> 이후 네 번째 장편을 내놓은 과작의 감독 글레이저에게 기다림은 곧 영화 전반을 압도하는 장악력을 축적하는 시간에 다름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선사한 충격파를 시작으로 일찌감치 문제작으로 떠오른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개봉에 기해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과 나눈 대화를 전한다.

- 마틴 에이미스의 소설을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책의 제목과 장소, 캐릭터를 공유하지만 그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새롭게 꾸렸는데 소설에서 추출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나.

= 책을 두고 내가 한 일은 그가 써둔 본질을 흡수하는 일이었다. 소설의 기반이 된 역사와 실존 인물들, 그리고 픽션화된 캐릭터인 회스 부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여정을 꾸렸다. 책의 내러티브에서 멀리 떨어진 결과물이 나왔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시작하게 된 첫 번째 불씨는 확실히 마틴 에이미스의 소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이 묘사하는 세부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려는 결정을 할 때 내 주된 관심사는 회스 가족이 지닌 어떤 평범함이었다. 그들이 가히 헌신적일 정도로 지켜내는 평범함, 그것이 주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에 몰두했고 영화를 완전히 그 방향으로 끌고 갔다.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오시비엥침) 박물관과 협업해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고, <쉰들러 리스트> 이후 30년 만에 실제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에서 촬영했다. 홀로코스트 영화로서는 도발적인 미학을 지닌 이 프로젝트가 허가를 받기까지 관계자들이 보여준 반응은 어떠했을까.

= 준비 과정, 그리고 촬영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매우 민감한 사항들이 많았기 때문에 극도로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임한 게 사실이다. 박물관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관장인 표트르 M. A. 치빈스키 관장(조너선 글레이저는 지난해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객석의 관장을 소개하며 영화에 공로한 인물로 특별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편집자) 및 아카이브 팀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놀랍게도 이 영화가 낯설고 전위적이라는 이유가 그들을 걱정하게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일을 어떻게 진행하려는지 구체적으로 궁금해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촬영이 선정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숙고 끝에 나온 진지한 결정임을 오랜 토론 속에서 전했고, 서로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 촬영을 승인받았다.

- 임의의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에서의 촬영이 반드시 필요하겠다고 확신한 계기가 있나.

= 여러 번 방문하는 동안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아니, 처음 그곳에 간 순간부터 반드시 여기에서 찍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 세상에 아직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 또는 부정이 만연하다는 사실도 나를 부추겼다. 그러니까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정확하고 싶었다. 이 영화의 기초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회스의 집과 아우슈비츠 벽 사이의 거리, 꽃 핀 정원과 수용소 굴뚝이 마주한 방향, 해가 뜨고 지는 곳, 모든 것들이 그대로여야 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영화를 믿을 수 있게 하려면 감독과 배우가 먼저 자신이 있는 곳을 믿어야 한다. 다른 곳에서의 촬영은 상상할 수 없었다.

- 두 독일 배우가 캐릭터에 어떤 방식과 과정을 통해 접근하길 바랐나. 배우가 자신의 배역에 공감함으로써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경우는 아니다.

= 그래서 잔드라 휠러는 자신의 인물에 힘을 실어주는 데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해나 아렌트의 철학이 지표가 되어주었다.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에 동참한 수많은 개인들을 특별한 악으로 보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며 사유하지 않는다는 특성에 주목했는데, 인간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일상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잔드라의 연기는 멈춤 없이 활동적이다. 이 영화에서 잔드라는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몸. 무언가를 하고, 하고, 또 하는 몸을 보여준다. 회스 부부가 스스로 삶을 잘 영위하고 있다고 애써 자부하며 자신의 집을 자랑스러워하는 느낌도 거기서 온다.

- 학살 현장을 암시하는 외화면 소리, 음향이자 음악으로서 기능하는 미카 레비의 전위적 사운드가 이미지와 팽팽한 긴장을 이룬다. 사운드디자인에서 가장 중시한 지점은 무엇인가. 미카 레비와의 협업 과정도 궁금하다.

= 아우슈비츠의 학살 행위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싶지 않았다. 시각적 재현이 이 사건을 대하는 방법이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영상만큼이나 사운드에 많은 엄격함과 노력을 기울인 이유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두개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관객이 보는 영화와 듣는 영화를 만들고 있었고, 때로 정말 두개의 영화처럼 취급했다. 물론 궁극적으로 영화적 경험이란 보는 것과 듣는 것, 이 두 가지의 교차 지대다. 우리는 사운드를 믿을 수 있는 요소로 받아들인다.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장치로서 신뢰하는 것이다. 벽 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앞에 보여지고 있는 가족이 그것과 어떻게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도록 사운드디자이너인 조니 번과 함께 몇달간 디테일을 고심했다. 오랜 친구 사이인 미카 레비와는 영화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시나리오를, 그는 음악을 동시에 썼다. 그래서 내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사운드디자인은 두 사람이 서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방법을 서로 점점 더 깊이 이해해가는 지속적 과정이었고, 일종의 시 쓰기였다. 미카의 곡은 내가 영화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동력이기도 했다. 영화에 쓰인 곡은 극히 일부다.

"소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이 보이고 인물은 마치 반딧불처럼 빛난다."

- 치솟는 검은 연기와 비명에 둘러싸인 루돌프의 클로즈업숏에 관해 묻고 싶다. 아우슈비츠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여주지 않는 영화이지만, 이 숏만큼은 제한된 구도로나마 수용소 내부로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 수용소 내부 장면 같지만 실제로는 수용소 밖의 상황이다. 유대인 수감자들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통과하는 유대인 통로가 있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감독관 루돌프의 얼굴에 드리운 무덤덤함을 보려 했다. 주변으로 기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소리, 아이와 엄마가 분리되는 소리, 온갖 공포의 소리가 들려오지만 그에겐 매일 참여하는 평범한 일과로서의 잔학 행위일 뿐이다. 이 영화가 수용소 안의 상황을 보여주지 않기로 한 결정보다는 지옥 같은 순간에도 무덤덤할 수 있는 인간의 한 측면에 집중한 장면이다.

- 늦은 밤 수용소 곳곳에 과일을 숨겨두는 소녀가 나오는 장면에만 열화상카메라를 사용한 이유가 있다면.

= 준비 과정 중 아우슈비츠 바로 옆에 있는 마을에서 90살 할머니를 만났고 그에게 전쟁 당시인 14살 때 몰래 활동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영화에 나온 것처럼 밤마다 노역 현장에 숨어들어가 음식을 남겨두고 돌아오는 위험을 무릅썼다. 이 이야기를 꼭 영화에 넣고 싶었는데, 문제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필름영화의 제작 관습을 따르지 않은 프로덕션이란 데 있었다. 자연광 사용을 위주로 조명 세팅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이 장면만을 위해 새 필름용 조명을 도입하기는 힘들었다. 밤 신에서 조명을 사용할 수 없다면 어떻게 소녀를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질문이 열화상카메라를 이 작품을 위한 도구로 불러들이게 했다. 열화상카메라에 찍힌 이미지는 그외 화면들과 정반대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소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이 보이고 인물은 마치 반딧불처럼 빛난다. 나는 이 인물의 중요성을 촬영 기술로서 강조할 수 있길 바랐다. 그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과 반대되는 에너지, 인간의 선함이다.

- 민감한 질문일 수 있지만 영국계 유대인으로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초점을 맞춘 홀로코스트 영화를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 가자지구 전쟁이 격화 중인 시점에 작품을 공개하면서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동시대의 상황과 이 영화를 어떻게 결부지어 바라보는지 감독의 관점을 좀더 듣고 싶다.

= 유대인 영화 제작자로서 - 비록 잘한 결정이 아닐 수도 있지만 - 우리가 이전에 고려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역사적 비극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관한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량 학살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위치와 우리 일반의 유사성을 보려 했다. 손쉽게 희생자들과 동일시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내재된 가해자와의 유사성을 보는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느낀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고, 그래서 마음 먹기 어려웠지만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질문에 관해선 현 상황보다도 몇년 앞서 기획, 제작된 영화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이 현재를 위한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변함없다. 하나의 생명이 폭력이나 억압보다 더 가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폭력이나 억압이 더 많은 폭력과 억압을 낳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는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폭력에 대한 우리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려 노력 중이다. 홀로코스트는 정부가 주도한 학살 행위지만 실질적인 차원에서는 매우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범죄가 수행됐다. 이것은 역사의 패턴이다. 인간 본성 안에 폭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폭력으로부터 진화할 수 있다. 내 영화가 언제나 원초적인 지점을 향하고 있는 이유다.

-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당신이 가장 고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폴란드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촬영한 첫날을 기억하나.

= 내가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만 하는지, 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지 단 하루도 의구심이 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모든 과정이 두려운 동시에 내가 가야만 할 길이란 생각도 늘 함께였다. 여러모로 나 자신을 강화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첫 촬영일은… 모든 촬영장의 첫날은 언제나 완벽한 모순이다. 약속들, 새로운 것들로 가득찬 상태의 버거움, 낙관주의, 배우와 기술 파트 사이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흥분 등등. 모든 것이 흥미롭게 모순적이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가장 모순적인 요소는 앞서 언급했던 장소의 문제였다. 무엇을, 어디에서 촬영하는가 하는 바로 그 점 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사건의 특수하고 끔찍한 무게로 인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현장의 모두에게 그곳에 발딛고 있는 것만으로도 끝까지 투쟁이었다. 개인적 의미에서 답하자면 내게는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지극히 도전적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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