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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 시대의 시작, 젠데이아
임수연 사진 오계옥 2024-05-10

<챌린저스>의 타시가 진정 사랑한 것은 전남친 패트릭 즈바이크(조시 오코너)도 현남편 아트 도날드슨(마이크 파이스트)도 아닌 테니스, 즉 육체를 중심으로 한 상호의존적 역학관계였다.(“테니스는 관계야.”) 때문에 운동성의 쾌락과 성취감, 섹슈얼리티가 감각적으로 엮이는 <챌린저스>에서 타시는 남성들이 쟁취해야 할 트로피가 아닌 경기 전체를 지배하는 여성으로 자리한다. (심지어 부상으로 선수 커리어가 끊기고 남편의 코치직을 맡는다는 설정임에도 그렇다.) 그리고 타시를 연기한 젠데이아는 <챌린저스> 프로젝트를 출발시킨 핵심 제작자이자 이 발칙한 서사를 성립시키는 중추다. 젠데이아는 시나리오를 쓴 저스틴 커리츠키와 함께 테니스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글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까지 시각언어화하는 루카 구아다니노가 적임자임을 논의했다. 테니스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그는 관련된 모든 비디오와 경기, 인터뷰를 섭렵하는 열정으로 테니스의 세계를 탐구했고, 무용수로도 이름을 떨친 스타답게 안무를 따라하듯 선수의 움직임을 완벽히 흉내내는 방식으로 타시가 되어갔다.

직접 이야기를 발굴해 판을 짜는 기획자이자 모호한 추상을 구체화하는 배우. 이는 젠데이아가 할리우드에 처음 데뷔했던 13살 때부터 새겨진 디즈니 스타의 이미지를 전복하며 개척해온 궤적이기도 하다.<디즈니 채널>의 <우리는 댄스소녀>, 의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활약한 178cm 장신의 댄서는 곧장 Z세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인스타그램 피드가 곧 패션지 커버와 같은 기능을 하는 시대의 워너비로 부상했다. 패션과 뷰티 산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델로서, 레드카펫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패셔니스타로서,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가 선택한 뮤즈로서, 때때로 자신의 앨범을 내는 아티스트로서 젠데이아는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무대를 종횡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는 커스틴 던스트, 에마 스톤 등 당대 최고의 라이징 스타들이 거쳐간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새로운 얼굴로 낙점됐다. 여기까지의 젠데이아는 린지 로언, 설리나 고메즈, 힐러리 더프가 거쳐갔던 할리우드 하이틴 스타 계보를 잇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기 시작한 기점은 <HBO>의 <유포리아>였다. “한 시대의 끝. 다음으로. 나와 함께 계속 성장해줘서 고마웠다.”(젠데이아의 인스타그램) 젠데이아는 <유포리아> 출연을 위해 <KC 언더커버 하이스쿨 스파이>를 마지막으로 <디즈니 채널>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마약, 섹스 중독의 세계를 선정적으로 소비한 것은 아니냐는 논란 속에서도 젠데이아가 분한 마약중독자 루 베넷은 <유포리아>에서 표현 수위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숏들을 남겼고, 2020년 에미상 드라마 부문 역대 최연소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는 에미상 역사상 두 번째 흑인 여성배우의 수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이미지를 역이용한 배우의 얼굴이 줄 수 있는 충격을 증명한 그는 <유포리아> 시즌2부터 책임 프로듀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덕분에 역대 최연소로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된 프로듀서가 됐다). 최근의 젠데이아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적극 추진하는 신진 제작자다. <맬컴과 마리>는 코로나19로 <유포리아> 시즌2 촬영이 취소됐을 당시 젠데이아의 즉흥적인 발상에서 시작됐다. 그의 제안으로 <유포리아>를 연출한 샘 레빈슨 감독이 6일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젠데이아의 집에서 촬영하려던 원래 계획이 무산됐지만 캘리포니아의 한 오지에서 합숙 가능한 로케이션 장소를 발견해 2주 만에 촬영을 마쳤다. 팬데믹 시대 촬영 여건의 제한을 오히려 창의성의 원천으로 삼은 이 프로젝트는 치열한 배급권 전쟁 끝에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젠데이아의 최근 개척자적인 행보는 <디즈니 채널>의 스타 시절에도 이미 내재된 기질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디즈니 채널>의 다양성을 위해서, “다른 민족이나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서 TV를 보고 (흑인 소녀들이) 자신과 닮은 얼굴을 볼 수 있게 하고 싶다”(<코스모폴리탄>)는 입장을 꾸준히 밝히며 치어리딩을 하는 백인 금발 여성이 곧 이상향이었던 관습에 균열을 내던 소녀였다. 그가 2016년 출시한 유니섹스 패션 라인 ‘데이아 바이 젠데이아’ (Daya by Zendaya)는 22사이즈(XXL 이상)까지 포괄한다. 지금 시대 그가 가장 핫한 스타로 떠오른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나아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이해했던 젠데이아는 언젠가 감독 데뷔를 꿈꾸고 “주인공은 반드시 흑인 여성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스타지만 비주류이기도 한 그의 위치는 감독과 작가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을 성찰을 가져오며 예술을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 “<챌린저스>의 타시는 부유하지 않은 흑인이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동료를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타시가 체감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에 아트와 패트릭과의 관계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동시에 두 남자는 그 감정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버라이어티>) 시장에서의 주도권과 바람직한 의도, 여기에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에 오르는 스타성이 만나면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자 젠데이아의 영감은 산업의 미래가 될 것이다.

“언제까지 무엇을 달성하겠다는 식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언젠가 내 커리어가 완전히 바뀌는계기가 생긴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유연해지려고 한다.”

2021년 <인터뷰 매거진>과의 인터뷰. 사진 작업부터 영화 현장까지 다양한 예술에 호기심을 갖고 배움의 기쁨을 즐기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나를 행복하게 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 그리고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충만해지는 것”이다.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적극적인 포부를 드러내지만 모든 창작은 스스로 즐겁기 위해 하는 것임을 확고히 하며 자칫 성과에 매몰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스타로 살고 운동가적 면모를 내세우며 가능한 모든 활동에서 뜨거운 에너지를 분출하는 젠데이아가 여전히 ‘옆집 소녀’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대중적 호감을 취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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