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그의 전성시대를 함께 지냈던 동료들, 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후세대 감독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두용 감독의 시대를 겪지 못한 영화평론가, 연구자 세대의 생각을 살피는 일이다. 과연 그들은 이두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론은 없었다. 그들의 발상은 특별한 구심점 없이 산발적이었다. 박찬욱, 류승완 등의 후배 감독들처럼 이두용을 마냥 칭송하진 않았다. 한편으론 <최후의 증인>이 걸작이란 사실이나 이두용을 향한 연구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이에 동시대 평론가, 연구자의 머리에 떠도는 이두용의 파편과 미해결의 질문들을 모아봤다. 결론을 정립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다만 영화의 미지를 파헤치는 일에 욕심이 있는 이라면 <최후의 증인>을 한국영화 100선 수준이 아니라 <하녀> <서편제> 정도의 걸작 반열에 올려야 한다는 당위, 이두용의 숨겨진 걸작에 광을 내 자랑하고 싶은 욕심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이두용은 말해지고 있는가?
<용호대련>의 개봉 포스터. “새로운 얼굴! 새로운 수법!”이란 문구로 이두용의 권격·태권 액션을 소개하고 있지만, 후세대 평자들은 그것이 한국 고유의 액션으로 남을 수 없었음을 지적한다.
동시대 평자들은 이두용이란 이름을 말해왔거나 말하고 싶어 할까. 선배 세대 연구자인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의 말에 따르면 이두용에 특별히 집중한 기성 연구자는 없었다. 이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김기영 등 한국영화사 관련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금동현 영화사 연구자(<마테리알> 편집동인)는 “주변에 이두용에 대한 연구나 관심이 있는진 잘 모르겠다”라고 운을 떼며 “동료들은 한국영화 자체에 관심이 없지 않을까?”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이는 “이두용뿐 아니라 한국영화의 계보란 원래 희박하다”라고 말한 김병규 평론가의 지적과도 공명했다. “김기영조차 시네필들의 상상적 계보”(김병규)로 말해지는 마당에 이두용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계보 정리나 공론은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선배 세대인 이영재 연구자가 <아시아적 신체> 등에서 언급했고 오승욱 감독이 설명해온 이두용식 태권영화의 의미 정도가 후배 세대에 남겨진 희귀한 레퍼런스였다.
다만 이두용에 대한 연구가 적단 사실이 그를 평가절하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다. 어느 취재원 하나 <최후의 증인> <피막> <뽕>의 완성도와 가치를 의심하진 않았다. 이탈리아 출신의 피에르루이지 굴리오타(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박사 수료) 연구자는 <최후의 증인>을 두고 “80년대 한국의 분위기와 옷차림 및 문화적 지시체를 완벽하게 포착한 한국영화의 걸작”이라며 “<피막> <뽕> 등의 토속영화도 한국의 역사를 깊이 관찰하기에 좋은 작품들”이란 관심을 남겼다. 그가 이두용을 알게 된 계기가 기존의 논문이나 비평이 아니라 웹 서핑 중의 우연이었단 사실도 흥미롭다. 한국영화를 디깅하려는 전세계의 젊은 시네필 세대가 이두용에 당도하는 경로 역시 비정형적이며 불친절하단 뜻으로 보인다.
이두용의 액션영화는 유효한가?
이두용을 말할 때 <용호대련>을 위시한 그의 태권도 액션 영화를 빼먹을 수 없다. 김병규 평론가의 지적처럼 “계보 없는 한국영화의 시간 안에서 왜 이두용이 그나마 유효한 이름으로, 하필이면 ‘액션 감독’으로서 불려나왔는지” 물어야만 후세대의 적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오승욱의 <킬리만자로>나 류승완의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이두용의 70년대적 액션 신체에 기반을 둔다”(김병규)란 맥락이 이두용을 계속 현재화하려는 주요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후의 영향력을 떠나 이두용의 태권 액션 영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던 것”이란 의견이 다수였다. 박동수 평론가의 말처럼 “이영재 연구자의 지적과 같이 태권도영화는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이소룡 붐을 이었던 기획이었기에 80년대로 넘어가기 전에 자연스럽게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금동현 연구자 역시 “태권도영화 등의 토양은 어쩔 수 없이 홍콩영화”였으며 “류승완 감독의 최근작 <모가디슈> <군함도> <밀수>가 작금 한국 바깥의 시공간을 그리고 있듯 한국형 액션영화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고 계보를 만들 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두용을 ‘액션 감독’에 국한하지 말아야 한단 의견도 있다. “한국 호러영화의 시초로 꼽히는 이용민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4분의 1 정도만이 호러영화이듯 옛 한국영화 감독들은 우리의 기억과 달리 한 장르에 매몰된 이력을 갖고 있지 않다”(박동수)라는 것이다. 한국 경제 성장기의 일면을 첨예하게 해제한 가족드라마 <장남>, 앨프리드 히치콕과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서스펜스가 떠오르는 기괴한 멜로드라마 <이상한 관계> 등 이두용 감독의 액션 외 작품들에 대해선 이렇다 할 논의가 없는 게 사실이다. 이두용 시기 전후의 감독들이 모리타 요시미쓰와 같은 동시기 일본영화와 주고받은 영향도 풍문처럼 떠돌 뿐 정해진 것은 없다. 앞서 이영재, 오승욱 등이 주목해 담론화한 그의 액션영화를 제외하면 이두용의 세계는 여전히 깊고 긴 미지인 셈이다. 그 미지를 탐험할 것이냐, 그 탐험의 끝에 한국영화사의 새로운 일면이 드러날 것이냐는 지금부터의 문제다.
이두용에 관해 던져볼 만한 또 다른 질문들
이두용 영화 속 병들고 고장난 남성 신체와 유교적 정신 체계의 결부?(김병규)
<최후의 증인>에서 정점을 찍을 수밖에 없던 영화적 틀, 이두용의 한계?(금동현)
이두용은 임권택만큼 ‘한국적인 감독’인가?
이두용을 재발굴할 필요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