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극장가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찾아온 영화가 있다. <웡카>는 2024년 1월 현재 글로벌 누적 수익 5억달러를 돌파하며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전세계 극장가에 달큼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전세계 관객들의 사랑을 독점 중인 <웡카>가 마침내 1월31일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웡카>는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윌리 웡카’라는 메가 IP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프리퀄이지만, 모두가 <웡카>를 사랑하는 이유엔 원천 소스의 파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영화이자 뮤지컬영화인 <웡카>는, 감독 겸 작가 폴 킹과 배우 티모테 샬라메를 만나며 특별해질 수밖에 없었다. 감독과 배우를 중심으로 풀어본 <웡카>의 리뷰와 <웡카>에 영향을 준 뮤지컬영화의 목록을 전한다. 또한 <웡카> 속 초콜릿 폭포의 원류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흥미로운 트리비아도 돌아보았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윌리 웡카의 마력은 부조화다. 그건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에서도, 이어 나온 두편의 영화에서도 변치 않던 본질이다. 윌리 웡카의 기발한 발명품은 이름만으로 어린이들을 현혹하는 초콜릿과 사탕, 아이스크림과 껌이다. 이들은 녹거나 줄어 사라지지 않고 심지어 영양소도 고루 갖춰 식사 대용으로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이 모든 달콤한 것들을 생산하는 공장주 윌리 웡카는 음울하고 혹독한 어른아이다. 그는 손수 세운 궁궐 같은 공장에서 두문불출하며 대인간 소통을 꺼리고 공장 견학을 온 어린이들에게 잔혹한 체벌을 서슴지 않는다.

전세계 관객들은 기인 윌리 웡카의 공장 설립기 이전을 다루는 외전인 <웡카>의 제작 소식이 들리자 기대했고 또 우려했다. 양자 모두의 요는 “웃자란 괴짜의 청년기는 얼마나 기이할까?”였을 테지만 놀랍게도 <웡카>는 양자를 기분 좋게 배반하는 동화다. “타인의 친절에 의존하며 평생을 살아왔다”는 윌리(티모테 샬라메)의 대사처럼, <웡카>의 세상은 모두가 선의와 낙관이 가져다주는 천진한 행복을 굳게 믿는다. 꿈과 희망이 최우선 가치인 <웡카>의 다정한 이야기는 그러나 빤한 아포리즘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웡카>를 그저 그런 동화로 만들지 않는 비급은 감독 겸 작가 폴 킹과 주연배우 티모테 샬라메로부터 온다.

폴 킹이 그리는 관용의 동화

연출자이자 스토리텔러인 폴 킹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은 단연 <패딩턴>과 <패딩턴2>다. <패딩턴> 연작이 영국 아동문학의 대문호인 마이클 본드의 동화 <패딩턴 베어>를 각색한 영화라는 점을 상기하면, 폴 킹이 본드 못지않은 거장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각색했다는 사실은 공교롭게 느껴진다. <웡카>를 보고 나면 폴 킹이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어떤 구성을 취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웡카>의 윌리 웡카는 폴 킹의 세계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미덕, 관용을 의인화한 존재다. <패딩턴>의 런던 사회와 브라운 가족이 이종(異種)인 곰 패딩턴(벤 위쇼)을 별 탈 없이 받아들이듯 <웡카> 속 이방인 윌리 또한 그를 시기하는 초콜릿 연합의 음해에도 불구하고 런던에 무리 없이 녹아든다. 윌리는 뉴욕의 피터 파커 못지않은 런던의 친절한 이웃이다. 전 재산이 소버린 은화 12닢뿐이어도 혹한에 떠는 노숙인에게 주저 없이 적선하고, 살면서 초콜릿을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고아 누들(칼라 레인)과도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지음이 된다. 그는 무례를 범하지 않고도 생면부지의 동물원 기린 애비게일에게 젖을 내주길 요구할 수 있고 날아볼 생각이 없는 호숫가의 플라밍고들이 비행의 꿈을 꾸도록 이끈다. 오합지졸 약자간의 연대와 런던의 명소에서 펼쳐지는 하이스트 코미디 역시 폴 킹의 세계에서 빠질 수 없는 장치다. <패딩턴> 시리즈의 브라운 가족은 밀리센트(니콜 키드먼)에게 납치된 패딩턴을 구하기 위해 런던자연사박물관에 잠입했거나 교도소에 수감된 패딩턴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프림로즈 힐의 피닉스 뷰캐넌(휴 그랜트)의 집을 급습했다. <웡카>에서도 이와 같은 화소가 영화 후반부의 스릴을 책임진다.

<웡카>의 주요 빌런인 스크러빗 부인(올리비아 콜먼)은 자신의 여관에서 뜨내기 여행객들을 등쳐 먹는 협잡꾼이다. 그의 농간에 속아 여관에 구금된 윌리와 투숙객들은 지하 세탁소에 구금돼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 인종과 계급이 저마다 다른 이들은 무모한 계획일지라도 그저 “욕심쟁이가 가난뱅이를 이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각자의 장기를 발휘한 탈취극을 벌인다. 폴 킹의 이야기 속 타인과 다문화를 향한 관용은 늘 이유 없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민자로 곧잘 동치되는 작고 약한 존재들과 연대하며, 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소시민 혹은 사회적 소수자다.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다분히 공정한 이 설정을 교훈을 부여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도식화한 순진(naive)성 선택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웡카>의 이야기는 엄밀한 동화라는 점에서 이런 지적을 피해간다. 애초에 <웡카> 속 세상은 초콜릿이 정경유착의 근간이고 백일몽이 벌금 부과의 근거인 동화 나라다. 동화는 현실에 산재한 혐오를 적시할 의무가 없다. 폴 킹은 <패딩턴> 시리즈의 팝업북 연출에 이어 <웡카>에서도 종이 상자 만화경, 분필 일러스트 등을 동원해 이 이야기는 동화임을 분명히 한다. 극장 밖 세상에선 낯선 타인을 배척할지라도 폴 킹의 동화에서만큼은 선의를 믿는 사람들이 끝내 세상을 바꾸고 차별이나 혐오 없이 타자와 공존할 방도를 꿈꾼다.

티모테 샬라메의 재능

티모테 샬라메는 제임스 딘과 리버 피닉스의 후예라 비견된다. 우수에 찬 눈빛과 퇴폐적 분위기를 견지하며 할리우드에서 동세대 청춘의 표상으로 자리한다는 이유에서다. 폴 킹 감독은 샬라메에게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를 비롯한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들을 윌리 웡카의 레퍼런스로 제시했다고 한다. 제임스 스튜어트나 진 아서가 카프라의 영화에서 분한, “거대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미약한 사내들이 윌리와 꼭 닮았다 여겼”기 때문이다. 한편 샬라메가 표현하는 윌리 웡카가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고전기 할리우드 스타는 진 켈리다. 샬라메는 켈리의 시그니처인 스윙 리듬의 넘버와 탭댄스를 그럴듯하게 흉내내며(소화 여부는 관객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향수를 스크린에 불어넣는다.

<웡카> 속 윌리 웡카는 영화 밖 티모테 샬라메의 찬란한 스타성을 아낌없이 캐릭터의 속성으로 끌어온다. “마술사이자 발명가이며 쇼콜라티에”인 윌리 웡카의 정체성은 천변만화한 매력을 스크린 안팎에서 뽐내는 ‘셀러브리티’ 티모테 샬라메와 닮았다. 윌리의 넘버 <You’ ve Never Had Chocolate Like This>가 대표적이다. 이 뮤지컬 시퀀스에서 윌리는 셀린풍의 웨이터복, 웨스 앤더슨풍의 버스 역무원 유니폼, 그리고 이발사의 멀끔한 흰 셔츠를 입고 춤추며 노래한다. 하이더 아커만, 니콜라 제스키에르 등의 패션업계 최전선의 디자이너와 우정을 쌓으며 레드카펫마다 화제성을 독점하는 패셔니스타 샬라메의 카리스마를 한껏 활용한 사례다. 레드카펫 위 샬라메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건 그의 타고난 쇼맨십이다. 윌리가 런던에 당도한 다음날 달콤 백화점 앞에서 시민들을 호객 하 는 <You’ ve Never Had Chocolate Like This(Hoverchocs)> 시퀀스나, 기린 애비게일과 막힘없이 대화하는 <For a Moment> 신 등은 샬라메가 아니면 좀처럼 성립이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윌리의 기세는 짧은 경력 안에 세계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는 데 이어 명감독들의 러브콜까지 꾸준히 받는 샬라메의 재능과 무관하지 않다.

윌리의 천진함 또한 티모테 샬라메가 꾸준히 보여준 무해한 소년성으로부터 완성된다. 성인 남성인 윌리와 미성년 소녀인 누들의 우정은 샬라메를 경유하며 별스럽지 않게 보인다. 런던에 오자마자 “내일 이 시간이면 부자가 되어 있을 거”라 믿는 윌리의 대책 없는 낭만도 샬라메가 아니었다면 쉬이 납득되지 않았을 것이다. 교사의 상처를 이해하는 <미스 스티븐스>의 연극반 학생 빌리, 1800년대 후반에도 또래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작은 아씨들>의 로리, 프랑스 68혁명의 한가운데에서 자유를 갈망하던 <프렌치 디스패치>의 제피렐리 등 샬라메가 전작에서 분한 조숙한 소년들이 언뜻 윌리의 곱슬머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