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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좋은 긴장을 느끼며, 좋은 마음을 생각하며, ‘물안에서’ ‘우리의 하루’ 하성국
이유채 사진 오계옥 2023-12-21

최근 3년간의 홍상수 감독 영화를 따라 보아온 관객에게 배우 하성국은 낯익은 존재다. <도망친 여자>를 시작으로 <인트로덕션> <당신얼굴 앞에서> <소설가의 영화>에도 연달아 얼굴을 비추더니 올해 개봉한 <물안에서>와 <우리의 하루>에서는 비중이 더욱 높아져 홍상수 세계의 어엿한 등장인물로 자리 잡았다. <물안에서>에서는 영화를 찍으려는 동기 성모(신석호)를 돕기 위해 함께 제주도로 날아온 친구 상국을, <우리의 하루>에서는 인생의 조언을 구하고자 각광받는 시인을 찾아가는 배우 지망생 재원을 연기한 그는 미세한 엇박자의 리듬으로 대사를 구사하고 몸을 씀으로써 맡은 인물을 궁금하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인물에게 생겼던 호기심은 자연히 배우에게로 옮겨가 그가 궁금해졌다. 생각을 빼곡히 적은 노트의 새 장 위에 볼펜을 갖다 대는 것으로 말할 준비를 마친 하성국과 마주 앉아 ‘귀여운’ 대화를 나눴다.

- 건국대학교 영화과 출신으로, 재학 당시 홍상수 감독이 교수님이었다. 사제지간이었는데 어떻게 처음 감독과 배우로 연을 맺게 됐나.

= 전화가 왔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며 안부를 먼저 물으시고는 젊은 시인 역할을 할 배우를 수소문하다가 네 생각이 났다며 내일 아침 6시까지 북촌으로 와 출연해줘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지방에 있었는데 당연히 바로 갔다. 그 연락이 데뷔작 <도망친 여자>의 시작이었다. <물안에서> 때는 며칠간 제주에서 촬영하는데 같이 가자고 전화를 주셨다. 선후배 셋이 영화를 찍으러 간다는 내용도 모르고 그냥 갔다. (웃음) 재밌는 게 제안하시는 코멘트가 매번 조금씩 다르다. 몇 작품 같이하면서 느낀 바로는 홍 감독님께선 영화 준비 과정부터 개봉 과정까지 다 다르게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

- 촬영 당일 대본이 주어지는 독특한 작업 방식에는 적응됐는지.

= 대본을 받자마자 대사를 외우고 리허설을 철저히 하는 시스템에는 조금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뭘 찍을 줄 몰라 마냥 불안해했다면 이제는 또 새로운 걸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좋은 긴장 상태가 된다.

- <물안에서>를 2022년에 찍었으니 시간이 꽤 흘렀다. 촬영 당시가 어떤 이미지로 각인돼 있나.

= 제주 촬영 장소 일대를 부지런히 산책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캐릭터 준비를 미리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현장이다 보니 남는 시간이 많기도 했고 어쨌든 긴장 상태이니 마냥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많이 움직였다. 걸으면서 감독님은 어떤 좋은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어나가시는 걸까, 하는 생각을 주로 했다. 그 좋은 마음에 집중한 시간이 나중에 가서야 선명해지는 현장을 이해하고 정보 없는 캐릭터를 완성해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

- 아웃포커싱된 얼굴을 보았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들었나.

= 얼굴이 잘 안 보여 서운하거나 아쉽거나 하는 감정은 전혀 없었다. 이목구비가 다 지워진 채로 스크린에 뜨니 오히려 익숙한 내 얼굴에서 새로운 걸 발견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이런 식으로 얼굴을 흐릿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인 것 같아 뭉클해지기도 했다.

- <우리의 하루>에서 재원은 홍의주 시인(기주봉)에게 삶은, 사랑은, 진리는 무엇인지 묻는다. 이런 큰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해보기도 했나.

= 답은 이미 20대 때 ‘알 수 없다’로 결론을 냈다. (웃음) 그럼에도 언젠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항상 삶이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 평소 재원처럼 질문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는 편인가. 재원은 질문을 잘하는 하성국 배우가 반영된 캐릭터인지.

= 잘하는 질문이 따로 있다. 재원처럼 실제로 내 선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생각했음에도 해결이 안되는 문제에 관해서는 주변에 잘 묻는 편이다. 대신 “어제 뭐 했어? 오늘 뭐 먹었어?” 같은 가벼운 질문들은 잘 못한다. 인물에 배우를 곧잘 반영하는 홍 감독님이 재원을 만드실 때 이런 내 모습의 한 부분을 넣으셨을 수도 있겠다.

- <물안에서>와 <우리의 하루>를 다시 보고 나니 청각적인 임팩트가 큰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적인 발성, 타고난 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좋고 앞뒤로 붙는 대사의 표현 방식이 매번 미묘하게 달라 집중해서 듣게 된다.

= 평소 어떻게 하면 정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대사 표현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관객들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선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 한다. 말의 속도를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빠르게 갔다가 느리게도 가보고, 숨을 쉬는 타이밍을 바꿔보기도 한다. 문장 안에 있는 단어들의 강약을 각기 다르게 주기도 한다. 그런 한끗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 어릴 때부터 배우의 꿈이 있거나 영화 일을 하고 싶어서 영화과에 간 건가.

= 전혀. 딱 남들만큼만 극장에 갔고 영화를 봤다. 건국대 영화과에 간 아는 형이 우리 학교 와보면 어떻겠냐고 얘기한 적도 있고 입시를 치를 당시 건국대 영화과가 포트폴리오 제출 없이 성적만 봐서 큰뜻 없이 연출 전공으로 입학했다. 운이 정말 좋았다. 들어가서 배운 영화, 연극. 연기 모두 처음부터 재밌었고 나와 딱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내가 연출하고 내가 출연한 영화를 졸업 작품으로 내기도 했는데, 아주 먼 훗날, 하고 싶은 이야기가 확고해지면 내 영화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다.

- 영화 취향이 알려지지 않아 궁금하다. 올해 영화 베스트를 꼽는다면.

= 우선 <당나귀 EO>를 맨 위로 올리고, <이니셰린의 밴시> <파벨만스>, 최근에 본 <괴물>. 그리고 <오펜하이머>를 안 봤다고 말하면 취향이 드러나지 않을까.

내 인생의 명장면 - <도망친 여자>에서 젊은 시인(하성국)의 뒷모습 장면

“얼굴도 안 나오고 호감이 있는 여자 수영(송선미)에게 문전박대를 당해 좋은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카메라에 뒤를 보이고 서 있는 동안 내가 배우로서 처음 연기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만큼 내게는 소중한 뒷모습이다.”

필모그래피

2023 <미망> 2023 <우리의 하루> 2023 <물안에서> 2022 <소설가의 영화> 2021 <모퉁이> 2021 <기억 체험 극장> 2021 <당신 얼굴 앞에서> 2020 <인트로덕션> 2020 <달팽이> 2019 <도망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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