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이자 모더니스트. 척박한 산업적 토양과 검열 속에서 혹독한 시기를 견뎌온 영화감독에게 이같은 수식어가 공존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갯마을> <산불> <안개> <야행> <중광의 허튼소리> 등의 영화로 한국영화의 시대정신, 그리고 스타일을 아로새긴 김수용 감독이 지난 12월3일 서울대병원에서 향년 94살로 영면했다. 1929년생인 고인은 1958년 영화 <공처가>로 데뷔해 유작 <침향>까지 109편의 영화를 남겼다. 장례는 이장호·정지영 감독, 배우 안성기·장미희, 아들 김석화씨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아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12월5일 영결식 현장에서 동료 영화인들이 남긴 추도사, 정일성 촬영감독, 박찬욱·김성수 감독이 <씨네21>에 전한 추모의 말을 전한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선임연구원이 분석한 김수용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글은 한국영화를 현대화한 선구자이자 전통의 지평을 확장한 고인의 남다른 족적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표작 필모그래피
<굴비>(1963) <혈맥>(1963) <갯마을>(1965)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산불>(1967) <사격장의 아이들>(1967) <안개>(1967) <야행>(1977) <화려한 외출>(1978) <도시로 간 처녀>(1981) <만추>(1982) <저 하늘에도 슬픔이>(1984) <중광의 허튼소리>(1986) <사랑의 묵시록>(1995) <침향>(1999)
“김수용 감독님께서 연출하신 작품은 극영화 109편, 문화영화 12편으로 총 121편입니다.” 김수용 감독 현장에서 연출부로 영화계 경력을 시작한 <부러진 화살> <소년들>의 정지영 감독이 고인의 약력을 읊는 것으로 고 김수용 감독의 영결식이 시작되었다. 사회는 배우 강석우가 맡았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 영상은 소설 <무진기행>을 각색한 김수용 감독의 문예영화 <안개>에 삽입된 정훈희의 곡 <안개>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영상 속에서 초로의 김수용은 말한다. “내게도 실패작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실패작, 안타깝게 여기는 영화들 때문에 내가 분발할 수 있었다. 그러니 109편의 영화가 내게는 모두 대표작이다.”
이장호 감독은 “각별히 떠오르는 기억은 <야행> <도시로 간 처녀> <중광의 허튼소리> 등 당대의 검열에 맞서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감독님의 소신이다. 1980년대에 ‘검열 앞에 더이상의 창작 활동은 없다’며 은퇴를 선언했던 감독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을, 온몸으로 직접 보여준 가르침”이라고 회고했다. 오랜 동료인 제작자 황기성은 김수용 감독의 타계가 갖는 세대적 의미를 짚었다. “이제 신상옥, 김기영, 이만희, 유현목, 하길종 감독님같이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감독님들을 두루 만나셔서 크게 웃으며 즐겁게 한잔들 하시지요.” 그의 목소리엔 김수용 감독의 부고가 곧 유신 시대를 통과했던 한 세대와의 영원한 작별을 뜻한다는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의 빈자리에서 침향을 느낍니다.” 공동장례 위원장 장미희 배우가 김수용 감독의 대표작 제목들을 엮은 헌시를 대표로 낭독했다.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서울예술대학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특임교수를 역임하고 영상물등급위원장과 영화감독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맡은 이력에 관해 배우 장미희는 “영화인, 교육인, 사회인이라는 세 역할을 모두 훌륭히 해내신 김수용 감독님은 배우로서 내 지향점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영화계의 꽃과 꿀만 따르는 배우가 아니라 공동체에 기여함으로써 대중의 사랑에 대한 보답을 실천할 수 있음을 그분의 봉사정신을 통해 배웠다”며 고인의 행적을 기렸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영결식 현장스케치와 김수용감독의 작품세계에 대한 기사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