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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블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더 마블스>를 중심으로 살펴본 마블 하락세의 원인
임수연 2023-11-24

<이터널스>

<더 마블스>가 MCU 역사상 가장 낮은 오프닝 성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실 관람객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시네마스코어 역시 다른 마블 영화보다 현저히 낮은 B등급을 기록하면서 입소문을 통한 반등도 요원하다. <캡틴 마블> 시리즈만의 실패는 아니다. 뉴 페이스들을 성공적으로 마블 브랜드에 안착시켰어야 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기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았고, <이터널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극장 관객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실패했다. 편당 제작비가 2500만달러로 추정되는 디즈니+ <변호사 쉬헐크>가 시장에서 미지근한 평가를 받는 등 과도한 예산 집행이 지적되자 최근 마블 스튜디오는 준비 중인 프로젝트를 보류하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2025년 개봉 예정인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대대적인 재촬영을 앞두고 있고 감독과 시나리오작가가 여러 번 교체됐던 <블레이드> 리부트는 제작비 1억달러 규모로 제작될 예정이다. 설상가상으로 타노스의 뒤를 이어 새로운 페이즈의 메인 빌런으로 소개됐던 ‘정복자 캉’ 역의 배우 조너선 메이저스가 여성 폭행 혐의로 체포돼 11월 말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는 본격적으로 정복자 캉이 등장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흥행 성적이 부진한 점을 감안해 <어벤져스: 캉 다이너스티>(2025년 촬영, 2026년 개봉 예정)의 주인공 캐릭터를 아예 대체하는 방책을 강구하고 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스칼릿 조핸슨 등 원년 멤버들을 다시 마블 프랜차이즈로 복귀시킨다는 다소 황당한 시나리오도 흘러나오고 있다.

콘텐츠 과잉의 결과

<더 마블스>

영원한 강자는 없다.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전세계 박스오피스 역대 2위 기록을 세울 때만 해도 마블의 황금기는 최소 5년은 더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다만 차기 프로젝트의 안착이 관건이었다.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스칼릿 조핸슨) 등 원년 멤버들이 작별을 고하면서 마블은 인피니티 스톤을 중심으로 한 인피니티 사가처럼 확장성 있는 세계관과 차기어벤져스를 이룰 캐릭터들을 론칭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더불어 기존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그들을 계속 붙들어놓을 유인이 있어야 한다. 마블 스튜디오가 팬덤의 지속적인 몰입을 위해 선택한 전략은 극장과 디즈니+를 연계한 물량 공세였다. 최근 ‘마블의 위기’란 타이틀의 심층 분석 기사를 내놓은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2020년 마블 스튜디오는 디즈니+에 상호 연결된 마블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급하면서 디즈니의 주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의무를 부과받았다고 한다. 마블은 2021년 4편의 영화(<블랙 위도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터널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와 4편의 시리즈(<완다비전> <팔콘과 윈터 솔져> <로키> 시즌1 <호크아이>)를 공개했다. 2022년에는 이보다 적은 3편의 영화(<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와 3편의 시리즈(<문나이트> <미즈 마블> <변호사 쉬헐크>)가 릴리즈됐지만 두달에 한번꼴로 관객을 만난 셈이다. 그리고 올해 공개된 신작은 3편의 영화(<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더 마블스>)와 2편의 시리즈(<시크릿 인베이젼> <로키> 시즌2)다.

문제는 스튜디오의 공격적인 투자가 오히려 대중의 피로도를 높이고 관객이 마블 영화를 극장에서 즐겨야만 하는 이유를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디즈니를 담당하는 월스트리트 분석가 에릭 핸들러는 “마블은 너무 많은 콘텐츠를 쏟아내서 사람들이 슈퍼히어로물을 더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라고 진단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반드시 극장에서 경험해야 할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지금 관객은 너무 자주 찾아오는 마블의 신작을 꼭 챙겨야 할 이벤트로 여기지 않는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OTT로 영화를 보는 습관을 체화하게 된 까닭에 극장에 가는 대신 신작이 스트리밍 플랫폼에 풀리기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제품 수가 증가할수록 품질 관리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 역시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마블 영화 및 시리즈의 제작 편수가 늘어지면서 집중과 주의력이 떨어졌다”고 인정한 바 있다. 지난 8월 마블의 VFX 파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 대비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노동조합 결성에 찬성표를 던졌다. 최근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를 비롯한 마블 프랜차이즈의 VFX 완성도가 계속 도마 위에 올랐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작 편수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마블은 과잉을 지향했다. 기성 히어로와 그의 상징성을 물려받을 새로운 히어로를 나란히 내세운 2인 구도는 페이즈4의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다. 여기에 멀티버스 사가의 시작을 알리면서 후속작을 위한 예고 역할도 해야 한다. 한편 영화와 시리즈, 게임과 코믹스가 밀접하게 연계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관객의 몰입감을 높일 수 있지만 이들을 감상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디즈니+ <완다비전>을 보지 않으면 이야기와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장벽이 생기는 영화다. 디즈니+ <미즈 마블>을 모른다면 <더 마블스> 초반부터 활약하는 카말라 칸/미즈 마블(이만 벨라니)의 모습을 보며 낯을 가릴 수밖에 없다.

안일한 계획, 애매한 결과물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2016년 <VOX>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개봉 당시 MCU의 전략을 “6개월 간격으로 시청하는 거대한 TV쇼”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표현은 최근 더 빠른 간격으로 신작을 내놓는 MCU의 호흡에 더 어울린다. 특히 근래 개봉한 영화는 내용만 놓고 보면 TV시리즈의 단일 에피소드에 가깝다. 올해 개봉한 세편의 영화는 모두 속편에 해당하며(<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더 마블스>) 인피니트 사가의 중간 단계를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완결된 이야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후속작을 봐야 하는데, 이 일련의 작품들은 전체의 일부로 기능하며 비슷한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마블 스튜디오는 회당 제작비가 1억~2억원 규모인 시리즈를 극장에서 공개하는 것과 같은 비효율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 관객 입장에선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고 제작사 입장에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그렇다고 극장 영화를 포기하고 앞으로 나올 MCU 작품들을 전부 시리즈로 전환하는 쪽이 합리적일까? 지속적인 구독자 이탈로 위기설에 직면했던 디즈니+는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고 당분간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리즈 중 하나로 꼽히는 <HBO>의 <왕좌의 게임>보다 높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디즈니+ 시리즈들은 결코 회사에 큰 수익을 안겨줄 만한 아이템이 아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극장 관객과 OTT 구독자를 합치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믿은 마블 스튜디오의 근시안적 접근은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충수가 됐다. A와 B를 합친다고 그 결과가 A+B가 되진 않는다. A와 B가 만났을 때 서로에게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를 단순 합산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한 최근의 기획과도 무관하지 않다. 여성, 성소수자, 비백인 캐릭터를 내세우는 ‘정치적 공정성’ (Political Correctness)에 집착하다가 마블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안티 페미니스트와 차별주의자들의 앵무새 같은 주장은 사실 마블이 진짜 놓치고 있는 본질을 흐리게 한다. 문제는 ‘PC’가 아니라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면 여성 관객층을 흡수할 수 있고 동양인 배우가 나오면 중국과 한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고 단순 계산하는 안일함에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후반부, 여성 영웅들이 한 프레임 안에 맥락 없이 모이던 액션 시퀀스를 기억하는가. 이 정도면 됐다고 안주하는 태도가 눈에 보이면 오히려 그들이 포섭하고자 했던 관객층을 격렬하게 실망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MCU의 무리한 물량 공세가 개별 콘텐츠의 완성도를 떨어뜨린 것은,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사 결정은 기존 팬층과 잠재적 유입자 모두를 이탈시킨다. 슈퍼히어로물이 넘쳐나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더 보이즈>는 마블과 DC를 ‘모두 까기’하는 과감함을 선보이며 소니픽처스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가 획기적인 매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시장에서 단지 나와 같은 인종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만족할 관객이 얼마나 있을까.

슈퍼히어로들의 솔로 무비를 차례로 공개한 후 이들이 한데 모이는 <어벤져스> 시리즈 같은 팀업 무비가 나왔을 때 이는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그리고 다시 제작되는 속편까지 낙수 효과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마블 스튜디오의 행보는 자신들의 성공 요인을 팀을 이루는 개별 요소가 아닌 합친다는 행위에만 주목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 만큼 납작한 전략을 보여준다. 라이벌 스튜디오들이 고전하고 영원히 적수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마블의 독주는 그들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하면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그렇게 또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팔콘과 윈터솔져>

2019년 7월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 케빈 파이기가 발표했던 MCU 페이스4 계획은 지금과 달랐다. 원래대로라면 마블 스튜디오는 2020년 영화 2편(<블랙 위도우> <이터널스>)과 시리즈 1편(<팔콘과 윈터 솔져>), 2021년 영화 3편(<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토르: 러브 앤 썬더>)과 시리즈 3편(<완다비전> <로키> <호크아이>)을 공개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주기적으로 극장 개봉을 하던 마블의 공백을 만든 동시에 그들이 기존 계획보다 더 빠른 텀으로 신작을 내놓게 만들었다.

MCU 흥행의 역사

김현수 영화칼럼니스트

※자료 출처: 박스오피스 모조,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멀티버스 사가’로 진입을 시작한 MCU 페이즈4 이후의 영화들이 전세계 극장가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 정리했다. 관객들은 여전히 마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대형 이벤트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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